나는 지금까지에 한 집에서 십년을 살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오. 한 집은커녕 한 고장에서 십년을 살아본 일도 없소. 내가 처음 나서부터 우리 아버지가 나를 끌고 내가 열 한 살 되기까지에 네 번이나 이사를 하셨고, 열한 살에 부모를 여읜 뒤로는 나는 금일동 명일서((今日東 明日西, 오늘은 동쪽에 내일은 서쪽에란 뜻으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양)로 표랑 생활을 한 것이오. 서울에 엉덩이를 붙이고 사는지 우금 십구 년에도 집을 옮기기 무려 열 번이나 되오. 그동안에 여기서 일평생을 살자 하고 집을 짓기가 세 번이데, 이제 둘째 집을 파는 것이오.

 

발둥에 핏줄이 호형으로 돌아가면 한 자리에 오래 붙어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 내 발등이 그래. 그리고 사주를 보이거나 손금을 보이거나 고향에 붙어 있지는 못할 팔자래.

 

그러고 보니 이것이 모두 전생의 업보요.

 

사람으로 집을 옮기는 것이 대개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가 하오. 빚을 지거나 기타 밖에서 오는 이유로 부득이 떠나게 되는 것이 첫째, 그리고 더 좋은 데를 찾아서 떠나는 것이 둘째, 부득이한 이유로 떠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더 좋은 데를 찾아서 떠난다는 것도 벌써 그 사람의 팔자가 상팔자는 못 되는 표이오. 나는 두 가지 이유를 다 가지고 집 떠나기를 하여 온 것이오.

 

한 번은 내가 병이 중하여서 피접 나는 모양으로 집을 떠났고, 한 번은 일 평생 살아갈 집이라고 지어 놓고 옮아갔으니, 이것이 이를테면 내게는 가장 행복된 이사였고, 또 한 번은 아들을 좋은 소학교에 넣기 위하여서 그 일 평생 산다던 집을 팔고 떠났으니, 이것은 좋은 편이고, 한 번은 아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려다가 죽어서 차마 그 집에 살 수 없다고 하여서 집을 떠났고, 한 번은 이제는 세상에서 숨어서 일평생을 산다하여 새로 집을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어저께 집 값 끝전을 받은 이 집이오.

 

그리고는 아내가 의학공부를 더 한다고 하여서 동경으로 집을 옮겼으니 이것도 상당히 칭찬할 만한 일이었고, 그리고는 아내의 병원을 짓고 큰 사업을 하자고 큰 집을 지었으니, 이것은 제법 사회봉사의 의미를 가진 매우 중요성 있는 이사였소. 나는 이 이사가 크게 축복을 받아서 아내의 사업이 크게 흥왕하기를 바라오.

 

그런데 지금 팔려 넘어간 북한산 밑에 있는 집은 내가 홀로 숨어 있어서 일생을 보내리라는 생각을 바로 한 달 전까지도 가지고 있었으나, 행인지 불행인지 사자는 사람이 나서서 이것을 팔아버리게 된 것이오.

 

"그저 작자 없는 동안이 내 것이야."

 

하던 어떤 친구의 말이 명담이오.

 

나는 이제 와서는 이런 핑계를 하오. 이 집이 내 별장으로는 너무 과해.

 

육천 원짜리 별장이 내게 당한가. 한 오륙백 원으로 초갓집을 꼭 삼 간만 짓고 살리라 - 이렇게.

 

아직도 나는 더 나은 데, 더 좋은 데 하고 찾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니 딱 한 사람이오.

 

'吉人住處是明堂(길인주처시명당)' 좋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명당이오.

 

그것이 산골짜기거나 벌판이거나 시의 빈민굴이거나 움막이거나, 저만 도를 얻어 덕이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 사는 곳은 다 명당이란 말이오. 이것은 내가 이 집을 팔고 어디로 가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얻은 글귀오.

 

'天地皆向我 無事不太平(천지개향아 무사부태평).  이것은 일전 꿈에 얻은 글인데, 천지도 다 나로 말미암아 있으니 무엇은 태평이 아니랴, 그런 소리인가 보오. 두 글귀가 다 내게는 큰 교훈이 되오. 하필 경치 좋은 곳을 찾을 것은 있느냐? 하필 새로 집을 지을 것은 있느냐? 어디든지 내 분에 오는 대로 이 몸을 담아 두면 그만이 아니냐 ─ 이 뜻이겠으나, 진실로 이런 심경을 가지고 살게 된다면야 제법이지요. 닥치는대로 먹고, 입고, 닥치는대로 자고, 그리고 마음이 늘 화평하여서 아무 근심이 없다면야 벌써 성인지경 아니오? 그러나, 그것은 내 따위로는 엄두도 못낼 일이오. 어떤 중의 글에,

 

'오랜 옛날부터 육도 두루 돌았으나, 좋은 것 하나 없고, 걱정 소리 뿐일러라.' 하는 말이 있소.

 

이것은 내 생명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동안에 천상, 인간, 아수라, 지옥, 아귀, 축생 여섯 가지 세계에 아니 가 본 데가 없지마는, 어디를 가 보아도 모두 근심 걱정 뿐이요, 살기 좋은 데는 없더라 하여 중생에게 염불을 권하는 글이오. 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데를 찾기로니 좋은 데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나 가야 비로소 좋은 데를 보리라는 뜻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