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〇군 나는 이 집을 팔았소. 북한산 밑에 육년 전에 지은 그 집 말이오. 오늘이 집 값 끝전을 받는 날이오.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우오. 날은 좀 흐렸는데도 무성한 감잎사귀들은 솔솔 부는 하지 바람에 번뜩이고 있소. 오늘이 음력으로 오월 삼일、모레면 수리(단오)라고 이웃집 계집애들이 아카시아 나무에 그네를 매고 재깔대고 있소. 모레가 하지. 벌써 금년도 반이 되고 양기는 고개에 올랐소. 잠자리가 난 지는 ── 벌써 오래지마는 수일 내로는 메뚜기들이 칠칠 날고、밤이면 풀 속에 벌레 소리들이 들리오. 아이들이 여치를 잡으러 다니오.

 

이 편지를 쓰고 앉았을 때에 어디서 청개구리가 개굴개굴 소리를 지르오.

 

저것이 울면 비가 온다고 하니 한 소나기 흠씬 쏟아졌으면 좋겠소. 모두들 모를 못 내어서 걱정이라는데、뜰에 화초 포기들도 수분이 부족하여서 축축 늘어진 꼴이 가엾소.

 

지금이 오전 아홉 시、 아마 이 집을 산 사람이 돈을 가지고 조금만 더 있으면 올 것이오. 내가 그 돈을 받고 나면 이 집은 아주 그 사람의 집이 되고 마는 것이오. 엿장수 가위 소리가 뻐꾸기 소리에 반주를 하는 모양으로 들려오오. 내가 이 집에 있으면서 엿을 잘 사 먹기 때문에 엿장수들이 나 들으라고 저렇게 가위를 딱딱거리는 것이오.

 

엿장수가 지금 우리 대문 밖에 와서 자꾸 가위 소리를 내이오. 아마 내가 낮잠이 들었다 하더라도 깨라는 뜻인가 보오. 그러나 나는 오늘 엿을 살 생각이 없소. 흥이 나지 아니하오. 엿장수는 최후로 서너 번 크게 가위 소리를 내이고는 가버리고 말았소.

 

어디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오. 앞 개천에 빨랫방망이 소리도 들리오.

 

담 밖에 밤꽃 냄새가 풍기오.

 

내가 이 집을 지은 것이 금년까지 육 년째요. 육년이 잠깐이지마는 내 지나간 사십 팔년의 육분지 일이라고 하면 결코 짧은 동안은 아니오. 게다가 마흔 세 살부터 마흔 여덟 살 되는 여름까지라면、내 일생의 상당히 중요한 시기를 이 집에서 보낸 셈이오. 그동안 줄곧 이 집에 산 것은 물론 아니오. 일년 동안 문 안에서 살았고、또 일년 남짓은 감옥과 병원에서 살았으니、실상 이 집에 내 몸을 담아서 산 것은 사 년밖에 안 되는 것이오. 그러나 평생 집이라고 가져본 뒤로부터 이 집이 가장 내가 사랑하는 집이었다 할 수 있는 곳에、이 집에 대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이오.

 

내가 이 집을 짓던 해는 내 평생에 가장 암흑한 시기 중에 하나였소. 내 어린것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나、내가 평생을 바쳐 보려던 사업이 모두 실패에 돌아간 것이 이 해였소. 그뿐 아니라, 나는 정신적으로 모든 희망을 잃어버려서 이제 내가 인생에 아무것도 바라는 것도 없고、할 것도 없으니、이것이 내가 죽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도록 나는 막막한 심경에 빠져 있었소. 내가 사랑하고 믿던 이들까지도 다 나를 뿌리치고 가버린 듯 하여서 나는 음침한 죽음의 근로에 혼자 버림이 된 혼령과 같이 붙일 곳이 없었소. 

 

이런 심경에서 나는 아주 세상을 떠나버릴 생각을 하였던 것은 그대도 잘 아는 일이 아니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산에 들어 일생을 마칠 결심으로 금강산으로 달아났던 것 아니오? 나는 거기서 며칠 지나서는 오대산으로 가려 하였었소. 오대산에를 간다고 방한암 같은 이를 찾아서 도를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그저 깊이깊이 산을 들어가서 세상을 잊고 또 세상에서 잊어버림이 되자는 것이오. 그때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하면 제 죄를 뉘우치는 생활을 하여서 내가 평생에 해를 끼친 여러 중생、은혜를 진 여러 중생을 위하여서 복을 빌자는 것뿐이었소.

 

그러나 내 인연은 아내와 어린것들의 손을 빌어서 나를 도로 이 세상으로 끌어오게 하였소. 이 모양으로 끌려 와서 시작을 한 것이 이 집을 짓는 일이었소.

 

이 집 역사를 할 때에 내 생각은 여기서 평생을 보내리라 하는 것이었소.

 

변변치 못하나마 문필로 먹을 것을 벌어서 이 집에서 죽는 날까지 살자 하는 것이었소. 그래서 나는 애초에 초가집을 짓고、감밭을 장만하려 하였소. 내 원고가 밥이 안 되는 경우면 감 농사로 살아가자는 것이오. 그리고 내 아내는 닭을 치기로 하여 양계하는 책을 두서너 권이나 사들여서 열심으로 양계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 모양으로 세상에 나가 다닐 생각을 끊고 숨어서 살자 하는 것이 이 집을 지으려는 동기였었소.

 

그랬던 것이 어떤 협잡군 청부업자를 만나서 싸게 지어 준다는 바람에 초가집 계획을 버리고 기와집을 짓게 된 것이데、 이것이 잘못이야. 예산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서、감밭을 사고 양계장을 마련할 돈이 없어졌을 뿐더러、이 집이 기와집이기 때문에 탐내는 이가 많아서 마침내 이 집을 팔게 되었단 말이오. 만일 이 집이 조그마한 초갓집이더면 이번에 이 집을 산 이도 살 생각을 아니 내었을 것이니、 작자 없는 동안 이 집은 내 집으로 남았을 것이 아니오? 우스운 말 같으나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정이고 사실이오.

 

어찌 하였으나 나는 이제 기껏 버티어야 앞으로 이 주일 밖에는 이 집에서 살 수는 없이 되었소.

 

육 년간 추억 많은 이 집을 떠나게 되매 지나간 동안이 새로와져서 그대에게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