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까운 집을, 그렇게 애써 지은 집을 왜 파우?"

 

하고 이웃 사람이나 친구들이 다 말하지마는, 인제는 팔 때가 되니까 파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믿소. 그리고 이 집에 그렇게 애착도 가지지 아니하오.

 

만나는 자는 떠날 자가 아니오? 떠날 때에 애착을 가시면 무엇하오? 가는 구름같이, 흐르는 물과 같이, 구름 가듯이 물 흐르듯이 걸리는 데 없이 슬슬 살아 가는 것이 인생의 바른 길이라고 나는 믿소.

 

이 집을 팔고나서 앞으로 어떠한 집을 몇 번 가지게 될는지 내가 아오? 누구는 아오? 몰라! 내일 일도, 다음 순간 일도 나는 몰라!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오 ─ 내가 게으르거나 허랑방탕만 아니하면 죽을 때까지 방 한 간 차지는 되리라, 또 내가 내 양심에 어그러지는 일만 아니하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 신세 이하로는 아니 되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정성껏 대접하면 나도 남의 괄시는 받지 아니하리라 ─ 이것만은 확실하지마는, 그 이상은 도저히 내가 알 바가 아니오.

 

앞 개천에서 빨래질 소리가 들리오. 세검정 빨래란 자고로 유명하다고 하오. 날이나 밝은 아침이면 밥솥과 장작과 빨래 보퉁이와 빨래 삶을 양철통과를 사내가 걸머지고, 여편네는 잔뜩 한 짐이고 코 흘리는 아이를 데리고 자하문으로 주렁주렁 넘어오는 것이 봄부터 가을에 걸쳐서 이 고장의 한 풍경이오. 그들은 개천가 빨래하기 좋은 목에다가 진을 치고 점심을 지어 먹어가며 빨래질을 하는 것이오. 저 보시오. 개천가에는 홑이불, 욧잇, 치마, 모두 널어 말리고 있소. 남편은 아내를 도와서 방망이질을 하다가 버드나무 그늘에서 젖먹이를 안아 재우고 있소.

 

그들은 다 문안 잘 사는 집들의 행랑 사람들이오. 그들이 빠는 것은 물론 제 것은 별로 없고, 주인 나리, 아씨, 도련님, 아가씨네의 의복들이오, 좋지야 않소? 그들이 남이 입어서 더럽힌 옷을 빨아 줌으로써 내생의 공덕을 쌓고 있는 것이오. 아마 다음 생에는 더러는 지위가 바뀌어서 지금 빨래하고 있는 '행랑것'이 주인 아씨나 서방님이 되고, 지금 빨래를 시키고 놀고 앉았는 서방님이나 아씨가 무거운 빨래를 지고 지하 문턱을 넘게 되겠지요. 한 편은 전에 하여 놓은 저금을 찾아 먹는 패, 한 편은 새로 저금을 하는 패가 아니겠소? 요새에 저 자고난 자리도, 저 밥 먹은 상도 아니 치우려는 신여성들은 필시 다음 세상에는 행랑어멈이나 애보개로 태어날 것이오.

 

그래서 온 집안 식구가 먹은 밥상을 혼자 서릊고, 남이 낳은 아이를 잔등이 물도록 업고 다닐 것이오. 그래야 공평한 것이 아니오?

 

나는 이 세상이 지극히 공평하다고 믿소. 천지의 법칙이 어디 사람의 법률에만 대일 거요? 추호불차라고 믿소. 빈부귀천이 없는 것이 공평이 아니라, 있는 것이 공평이란 말요. 공덕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똑같이 잘나고 똑같이 잘 산대서야 그야말로 불공평이 아니오? 이런 말을 다른 사람들은 아니 믿더라도 그대야 믿어줄 것 아니오.

 

저 빨래하는 행랑 사람들이 아마 금생에는 도저히 이 댁 서방님 아씨와 지위를 바꾸기는 어려우리라. 아마 안댁 서방님 아씨가 남의 빨래 짐을 지고 자하문 턱을 넘을 날은 있기도 하지마는, 저 아범과 어멈이 서방님 아씨가 되기는 졸연치 아니하리다. 굴러 떨어지기는 쉬워도 기어 오르기는 어려운 이치 아니오?

 

그대나 내나 다 행복된 사람은 아니지요. 첫째 건강이 없고, 둘째 돈이 없고, 세째 얼굴이 잘나지를 못하고, 네째 마음에 번뇌가 많고, 늘 불평 불안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그런 주제에 눈은 높고 뜻은 하늘 위에 있단 말요.

 

그러나 그대여, 그것이 다 공평입니다. 아니 공평보다 한층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 값 이상의 삯을 받고 있습니다.

 

그대여, 내가 이 집을 판다고 아깝다고 그러지 마시오. 그것은 대단히 황송한 생각이오. 어떻게 생각해야 옳은고 하니, 이만한 풍경 이만한 집에 육 년이나 살게 된 것이 고마워라, 또 그것을 육천 원이나 되는 큰 돈을 받고 팔게 된 것이 고마워라, 그 돈으로 오래 못 갚던 빚을 갚게 된 것이 고마워라, 이 집을 팔고도 내가 몸담아 살 집이 있으니 고마워라, 크신 은혜 고마우셔라 ─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요.

 

나는 아까 마당에 풀을 뽑고 화초에 물을 주었소. 모레 글피면 떠날 집인지라 그리하였소. 나는 새 주인의 손에 이 집을 내어맡길 때까지 이 집을 사랑하고 잘 거두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오. 아니, 어디 그런 법이 있단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이 허하지를 아니하단 말요.

 

조선 풍속에(지나 풍속도 그럽디다) 떠나는 집을 반자와 창과 도배를 모두 찢어 놓고 어지러 놓는 대로 치우지도 아니하고 간다는데, 이것은 복이 따라오지 않고, 그 집에 떨어져 있는가 보아서 그러는 것이라오. 그러나 그 복이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모르나, 만일 내가 복일 양이면 그렇게 뒤에 올 사람의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위인은 따라가려다가도 고만 두겠소.

 

이 집 뜰에 심은 화초를 파갈 생각을 하였으나, 새로 오는 주인이 적막할 것을 생각하매 차마 못하여서, 여러 포기 있는 것만 한 포기씩 몇 가지를 뽑아서 분에 담아 놓았는데, 그것도 탐욕 같고, 내 뒤에 오는 이에게 대한 무정 같아서 부끄러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