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는 손님들이 찾아오셔서 더 못 썼소. 화성이 벌겋게 북악 가슴패기로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잤소. 직녀성이 파란빛을 발하고 있는 것도 보았소. 스코르피온의 염통 별이 덜 붉다 하는 생각도 하였소.
아침에 일어나니 날은 흐리고 바람이 부오. 양자강의 저기압이 오나 보오.
천기 예보에 말하기를, 일간 한 장마가 오리라고, 와야 아니하겠소?
마루에 전등을 켜 놓고 잤더니, 나는 벌레들이 많이 들어와서 더러는 벽에 붙어서 자고, 더러는 마루에 떨어져서 죽었소. 조그만 놈, 큰 놈, 동글한 놈, 길죽한 놈, 옥색, 비취빛, 노랑이, 얼룩이, 참말 가지각색이어서 두 놈도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소. 그중에도 비취빛 나는 나비가 참 가련하오. 손을 대면 깜짝 놀라서 그 보드라운 날개를 팔락거리고 서너 걸음 날아가오. 그러나 밤새 번뇌에, 애욕의 기쁨과 설움에 지쳐서 기운들이 없는 모양이오.
마루에 죽어 떨어진 시체들은 비로 쓸어도 가만히 있는데, 그중에 어떤 나비는 아직도 생명이 조금 남아서 파딱파딱하다가 도로 쓰러지고, 어떤 놈은 기운을 내어서 날아가오. 그러나, 그들은 다 제가 할 일을 하고 이 몸을 벗어버리고 간 것이오.
나는 전장을 생각하였소. 그저께 수와 토우(汕頭[산두])가 점령이 되었는 데, 적국이 내어버린 시체가 육백, 우리 군사 죽은 이가 스물둘 상한 이가 사십 명이라오. 내 눈앞에는 피 흐르는 시체가 보이고, 붕대 동인 군사가 보이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그네를 위하여서 빌었소.
백합이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었소. 호박빛 백합이야. 꽃에 코를 대어 보았더니, 벌써 향기는 다 나갔어. 아마 해 뜨기 전에 피어서 벌써 그 향기를 바치는 아침 공양이 끝났나 보오. 나는 이 한 송이 꽃을 멀리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의 혼령께 바치노라 하였소.
백합이 또 한 송이는 아마 내일 아침에는 필 것 같소. 내일은 내가 이 집을 떠나는 날야. 백합 ─ 내가 여름내 물 주어 가꾼 백합이 내가 이 집을 떠나기 전에 피어 준 것이 고맙소. 장미는 거진 다 졌어.
금전화가 아마 내일 아침에는 서너 송이 필 것 같소. 그것이 알맞이 내일 아침에 피거든, 백합과 아울러서 아침 공양을 하고, 이 집을 떠나게 되겠소. 부처님께와 여러 신님께와 전장에서 죽은 여러 용사님께와, 이 집에 나와 함께 살았으리라고 생각키는 여러 중생들께와.
분에 심은 봉숭아 두 나무, 빨강이 하나, 흰 것 하나가 웬 일인지 어제 오후로부터 시들기 시작하여서 오늘 아침에도 깨어나지 못하고 아주 죽어버렸소 대단히 싱싱하였는데, 웬일일까. 잎사귀 겨드랑이마다 꽃봉오리를 달고 날마다 모락모락 자라더니, 고만 그 꽃을 못 피우고 말았소.
내가 아침마다 지팡이를 짚고 세검정 가게에 우유를 가지러 가는 것이 가엾던지, 어제부터 그 동네 아이가 우유를 갖다 주오. 고마운 일이오. 오늘 아침에 내가 세수하는 동안에 갖다가 놓고도 말도 없이 가버렸는데, 아마 그 아이겠지요. 말도 없이 가버린 것이 더욱 고맙소.
그저께는 개천가 집 영감님이 앵두 한 목판을 손수 들어다가 주셨소. 나는 여태껏 그 어른께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는데.
또 그 전날은 앞집 황이 아버지가 빈대떡을 부치고, 되비지(두부 빼지 아니한 비지)를 만들고, 술 한 병을 사가지고 와서 말 없이 나를 대접하였소.
아마 송별의 뜻이겠지요.
또 어저께는 삼철이 아버지가 일부러 오셔서,
"떠나시는 날, 짐 한 짐 져다 드리겠어요."
하고 가셨소. 허리가 아파서 요새에는 일도 잘 못 간다는 노인이. 나는 거절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고 황혼에 어리둥절하였소.
또 지난 공일날 밤에는 뒷집 숙희 아버지가 맥주 두 병을 사가지고 와서 나를 대접하였소. 그는 날마다 아침 여섯 시에 나가서 저녁 일곱 시에야 돌아 오는 이인데, 앞뒷집에 살면서도 한 달에 한 번 면대하기 어려운 이오.
섭섭하다고, 내가 떠나는 것이 섭섭하다고 수없이 섭섭하다는 말을 하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