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생은 퍽 수척하였다. 광대뼈가 나오고 볼은 들어갔다. 약간 벗어진 머리는 반 넘어 희었다. 오직 그 눈만이 힘있게 빛난다. 본래는 건장한 체격이던 것은 그의 골격에만 남았다. 그는 일생의 고생-가난의 고생, 방랑의 고생, 감옥의 고생, 노심초사의 고생, 교사 노릇의 고생, 청년과 담화하는 데 고생으로 몸은 수척하고, 용모에는 약간 피곤한 빛을 띠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와 일생을 같이한 부인도 일찍 그가 낙심하거나 화를 내거나 성을 내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는 언제나 태연하고 천연하였다. 그는 도무지 감정을 움직이는 빛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는 야멸치거나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딸을 사랑하고, 친구와 후배를 사랑하였다. 더구나 그는 조선이란 것을 뜨겁게 사랑하였다. 그의 책상머리 벽에는 조선 지도가 붙고, 책상 위에는 언제든지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같은 조선의 역사나 또는 조선사람의 문집을 놓고 있었다.
그는 매일 반드시 단 한 페이지라도 조선에 관한 무엇을 읽는 것으로 규칙을 삼고 있었다.
손님들이 모이기를 시작하였다. 손님은 다 학생들이다. 맨 처음 온 이가 경성대학 문과에 다니는 김상철(金相哲)이다. 그는 키가 작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사람이었다. 이어서 경성의전, 세브란스의전, 보성전문, 고등상업, 고등공업 정모와 정복을 입은 학생들이 오고, 이화전문의 여학생이 둘이 왔다. 한 여학생은 미인이라고 할 만하였으나, 한 여학생은 체조 선생이라고 할 만하게 다부지게 생긴 여자였다. 그들은 심순례(沈順禮), 정서분(鄭西芬)이라는 이름이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시계 바늘이 여섯시를 가리킬 때에 세비로 입은 두 청년이 왔다. 하나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혈색이 좋은, 눈이 어글어글한 서양식 하이칼라 신사요, 하나는 키가 작고 몸이 가냘프고 눈만 몹시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건영(李健永) 박사와 윤명섭이라는 발명가였다.
곰국을 끓이고 갈비와 염통을 굽고 뱅어저냐까지도 부쳐놓았다. 정란은 수놓은 앞치마를 입고 얌전하게 주인 노릇을 하였다.
"자, 변변지 않지마는 다들 자시오."
하고 한 선생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오래간만에 조선 디너를 먹습니다."
하고 미국으로부터 십여 년 만에 새로 돌아온 이건영은 극히 감격한 모양으로 감사하는 인사를 하였다.
"미국 계실 때에도 조선음식을 잡수실 기회가 있었어요"?
하고 체조 교사같이 생긴 정서분이가 입을 열었다.
"예스, 프롬 타임 투 타임(예, 이따금)."
하고 이 박사는 분명한 액센트의 영어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조선말로,
"서방(캘리포니아 등지)에 있을 때에는 우리 동포 가정에서 조선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있습니다. 김치도, 그렇지마는 이렇게 김치 맛이 안 나요. 선생님 댁 김치 맛납니다."
하면서 김칫국을 떠서 맛나게 먹는다.
"김치 맛이 아마 조선음식에 있어서는 가장 조선정신이 있지요."
하고 대학 문과에서 조선극을 전공하는 김상철이 유모러스한 말을 한다.
"브라보우!"
하고 이 박사가 영어로 외치고,
"참 그렇습니다. 김치는 음식 중에 내셔널 스피리트(민족정신)란 말씀이야요."
하고 그 지혜를 칭찬한다는 듯 이 상철을 보고 눈을 끔쩍한다. 상철은 픽 웃고 갈비를 뜯는다.
"갈비는 조선음식의 특색이지요."
하고 어떤 학생이,
"갈비를 구워서 뜯는 기운이 조선사람에게 남은 유일한 기운이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응, 그런 말이 있지."
하고 한 선생이 갈비를 뜯던 손을 쉬며,
"영국사람은 피 흐르는 비프스테익 먹는 기운으로 산다고."
하고 웃는다.
"딴은 음식에도 각각 국민성이 드러나는 모양이지요."
하고 또 한 학생이,
"일본요리의 대표는 사시미(어회)지요. 청요리의 대표는 만두, 양요리의 대표는 암만해도 토스티드 치킨(닭고기 구운 것)이지요."
"여기는 토스티드 하트(염통 구운 것)가 있습니다. 하하."
하고 이건영 박사는 염통 구운 것 한 점을 집어먹으며, 서분과 순례 두 여자를 본다.
순례의 입에는 눈에 띌 듯 말 듯 적은 웃음이 피었다가 번개같이 스러진다.
"김군. 어째 오늘 그렇게 얌전하오"?
하고 한 선생이 김갑진을 바라본다.
"제야 언제는 얌전하지 않습니까"?
하고 커다란 배추김치를 입에 넣고 버적버적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씹는다.
"이 사람은 변덕장이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하고 어느 동창이 웃는다.
다들 따라 웃는다. 사람들-더구나 처음 보는 두 손님의 시선이 갑진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하고 갑진은 입에 물었던 밥을 김칫국과 아울러 삼키며,
"그런데 미국 유학생들은 왜들 다 쑥이야요? 그놈들 영어 한마디 변변히 하는 놈도 없으니 웬일야요"?
하고 아주 천연스럽게 이 박사를 본다. 이 박사는 하도 의외의 말에 눈이 둥그레지고 순례는 제가 창피한 꼴이나 당하는 듯이 고개를 폭 수그린다. 다른 학생들은 픽픽 웃는다.
"이 사람아."
하고 허숭이가 갑진의 옆구리를 찌른다.
"선생님, 제 말이 잘못되었어요? 이 사람들이 픽픽 웃으니."
하고 갑진은 더욱 천연스럽다.
"그야 미국 유학생이라고 다 공부를 잘하겠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하고 한 선생도 빙그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