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남편에게 대해서 시골에 있으마고 말은 해놓았으나 도무지 서울이 잊히지를 아니하였다. 서울은 정선에게는 잔뼈가 굵은 데일 뿐더러, 수십 대 살아오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예산이 집이라고 하지마는 벼슬하는 조상들은 만년에나 예산에서 한 일월을 보냈을 뿐이요 일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산 것이다.
게다가 정선은 시골 생활이라고는 삼방, 석왕사의 피서지 생활밖에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시골은 외국 같았다. 외국이라 하더라도 야만인이 사는 외국, 도무지 서울사람이 살 수 없는 오랑캐 나라와 같았다. 그 발벗고 다니는 촌 여편네들, 시꺼먼 다리를 내놓고 남의 집을 막 드나드는 사내들, 걸핏하면 무엇을 집어가는 아이놈들, 이 무지하고 상스러운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무지스럽소 사람들이. 어디 그리 순박이나 하우? 애들은 모두 도적질이 일수고, 그 사람들이 오면 무시무시해. 그 사람들 속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났소? 호호, 노여지 말아요. 당신은 시골 숭을 보면 노엽데다, 호호."
하고 정선은 앓고 난 남편을 괴롭게나 하지 아니하였는가 하여 숭의 기색을 엿보았다.
"그야."
하고 숭은 점잖게,
"농촌사람의 성격 중에는 우리보다 나은 점도 있지마는 못한 점도 있지요. 바탕은 좋지마는 원체 오랫동안 웃계급에 시달려 지냈거든. 게다가 근년에는 먹을 것조차 없으니 인심이 몹시 박해졌지요. 그걸 누가 다 그렇게 만든지 아시오"?
하고 숭은 정선의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몸매를 들여다보았다.
"누가 그랬을까"?
하고 정선은 어리광하듯 생각하는 양을 보였다.
"양반들, 서울양반들, 시골양반들, 조선은 모두 양반들이 망쳐놓았지요."
"또 양반 공격이로구려."
하고 정선은 새뜩하는 양을 보인다.
"당신네 양반은 큰 양반이지. 내 조상 같은 양반은 적은 양반이고. 죄야 큰 양반 적은 양반 같이 졌지요."
하고 숭은 말을 좀 눅였다.
"그야 양반이란 것들이 나라 정사를 잘못해서, 이를테면 국민을 바로 지도하지 못해서 조선을 망쳐버린 것이야 사실이겠죠. 그렇지만 백성들은 왜 남 모양으로 혁명을 못 일으키우? 그놈의 양반 계급을 다 때려부수고 왜 상놈 정치를 해보지 못했소"?
하고 정선은 상놈 공격을 시작한다.
"도무지 교육을 안 주었거든. 그리고 유교, 그 중에도 노예주의인 주자학만 숭상해서 그 생각만 무지한 백성들에게 집어넣었거든. 그래서 양반, 중인, 상놈을 금을 그어 가지고는 벼슬은 양반만 해먹고 중인은 역학이나, 이학이나, 수학 같은 기술 방면에 밖에 못 나가고 나머지 상놈계급은 자자손손이 아전 노릇이 아니면 농, 상, 공업밖에 못해 먹고- 농, 상, 공업이 천한 것이 아니겠지마는 조선 양반들은 그것을 천한 것으로 작정을 해 놓았거든.
그리고는 나라 일은 양반들만 맡아두고 했는데, 그 나라 일이란 무엇인고 하니 나라 일이 아니라 기실은 자기네 집안이 잘 살 길, 요새 말로 하면 제 지위와 재산을 마련하는 데 이용을 해먹었단 말이오. 그분들이 농사개량을 했겠소, 상공업 발전을 생각했겠소, 국방을 생각했겠소? 생각이라고는 어떡허면 높은 벼슬을 많이 하고 어떡허면 돈을 많이 벌까 하는 것뿐이었소. 그 중에는 정말 나라를 위한 사람도 있겠지마는 근대에는 그런 사람은 별로 없었지요. 그러니까 말이오. 양반들이 죄를 지어서 농촌을 저 모양을 만들었으니 양반이 그 죄를 속해야 하지 않겠소. 어디 당신 양반을 대표해서 한번 농민 봉사를 해보구려."
하고 숭은 웃었다.
"난 큰 양반 대표고, 당신은 적은 양반 대표로!"
하고 정선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