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이가 시골서 병이 나서, 그래서 의사를 청해 가지고 갑니다."
하고 정선은 남편한테 간다는 것이 맘에 흡족하였다.
"그이? 미스터 허가"?
하고 이 박사는 한번 더 놀란다.
"네. 농촌사업 한다고 시골 가 있었지요. 변호사는 다 집어치우고."
하고 정선은 유순의 편지에서 얻은 지식을 이 기회에 자기의 남편이 자기를 떠난 까닭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것이 기뻤다. 실상 세상에는 허숭이가 종적을 감춘데 대하여 여러 가지 불미한 풍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도 가장 정선의 귀에 듣기 싫은 풍설은 허숭이가 정선을 버리고 달아난 것은 정선과 김갑진과의 추한 관계를 안 때문이라는 것이다.
"네, 농촌사업, 좋지요."
하고 이건영은 자기도 일찍 농민운동을 하기를 결심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오늘날 죽도 밥도 못된 것을 생각하고 감개가 없지 아니하였다. 사실상 이건영은 귀국한 지 근 일년에 계집애들의 궁둥이를 따르고 살맛과 입술맛을 따른 것 외에 그러하노라고 다른 일은 한 것이 없었다. 인제는 교회에서도 신용을 잃고 교육계에서도 신용을 잃어서, 아직 아무 데도 취직도 못하였지마는 그래도 닥터 리를 따르는 그에게 몸을 만지우고 입을 맞추이는 여자는 자취를 끊지 아니하였다.
예수교회 계통의 여자들 중에는 이 박사는 색마라는 평판이 났지마는, 그래도 그 예쁘장한 얼굴, 좋은 허위대, 말솜씨, 박사 칭호에 홀려지고 싶은 여자가 노상 없는 것이 아니요, 더구나 교회 이외의 여자들에게는 이 박사는 전혀 온전한 새 사람이었다. 미스 최는 그 중에 가장 재산이 있고 얼굴도 얌전한 여자였다. 이 박사는 조선에서 월급생활로는 도저히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독신인 것을 밑천으로 부자집 딸에게 장가를 들어 처가덕으로 거드럭거려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심순례를 사랑한 것은 그건 상인의 딸이라는 것이요, 그를 차버린 것은 순례의 집에 재산이 없음을 안 까닭이었다. 미인이요 부자인 여자-이것이야말로 이건영 박사의 부인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 교회 안에는 이러한 자격을 구비한 이가 드물었다. 그는 욕먹는 귀족의 딸이라도, 부자집 딸이면 얼굴과 살이 밉지만 아니하면 장가를 들고 싶었다.
"돈이 제일이다. 욕을 먹으면 어떠냐. 돈이 제일이다."
하는 것이 요새의 이 박사의 철학이 되고 말았다. 미스 최는 어떤 술 회사 하는 도 평의원의 딸이었다. 미스 최라는 여자 자신은 맑은 정신 가진 이 박사가 탐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가 상관 있소? 본인만 보면 고만이지."
하고 이 박사는 미스 최와의 교제에 반대하는 옛 친구에게 장담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보는 것은 미스 최 본인보다도 그의 아버지의 돈이었다.
싫다는 곽 박사를 침대차로 들여보내고 정선은 혼자 좌석에 앉아 있었다. 젊은 여자가 혼자 침대에 들어가는 것은, 하물며 다른 남자와 함께 침대로 들어가는 것은 마땅치 아니하게 생각한 까닭이었다.
정선이가 바라보니 이 박사는 미스 최를 침대로 가자고 유인하나 최도 정선과 같은 이유로 거절하는 모양이었다. 이 박사는 무안한 듯이 혼자 세면소에 가서 세수하고 머리에 빗질을 하고 돌아와 앉는 양이 보였다.
정선은 잠깐 졸다가 정거하는 고요함에 깨었다. 유순의 편지를 받은 후로 하루 종일 흥분되었던 까닭에 몸이 몹시 피곤하였다. 이건영 박사가 빨간 넥타이를 펄럭거리며 왔다갔다하는 양이 보였다. 개성이다. 개성이면 알 사람도 많으리라 하고 차창으로 내다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짐을 들고 왔다갔다하였다.
"굿바이."
하는 서양 여자의 소리, 그도 귀익은 소리에 정선은 고개를 안으로 돌렸다. 그것은 오래 이화에 있다가 지금은 평양에 교장으로 가 있는 홀 부인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그를 홀 부인이라고 부르지마는 기실은 그는 아직 시집가 본 일도 없는 미스 홀이었다. 그는 문에서 들어온 첫창 앞에 서서 전송 나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