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주전자를 들어 놋잔(옛날 것으로 굽 높은 잔대에 받친)에 노란 청주를 따라서 이 의사에게 권하였다.

 

"영감 먼저 드시지."

 

하고 이 의사는 숭에게 한번 사양하고 받아 마신다.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짭짭 다시고, 두 모금 마시고 짭짭 다시고는 비위에 맞는 듯이 죽 들이킨다.

 

"거 술 좋은데-정종보다도 나은데."

 

하고 이 의사가 칭찬한다.

 

"시지나 않습니까."

 

하고 유 초시가 만족한 듯이 묻는다.

 

"참 좋습니다. 이런 술 처음 먹어봅니다. 이거 어디서 파는 술입니까."

 

하고 입에 침이 없다.

 

"어제 저녁이 내 왕고 집의공 기일이지요. 세사가 빈한하니까 양조 허가를 낼 수도 없고, 그저 한 해에 한번 이날에만 가양으로 조금 빚지요."

 

하고 유 초시는 눈을 감는다.

 

"따님이 당혼이 되셨군요."

 

하고 술을 석 잔이나 먹은 뒤에 이 의사는 순에 관한 문제를 제출하였다.

 

"머, 아직 어린애지요."

 

하고 유 초시는 눈앞에 귀여운 막내딸을 그려 본다. 머리가 아픈 듯이 양미간을 찌푸렸다.

 

"따님이 아주 준수하신데요."

 

하고 이 의사는 마당으로 눈을 굴려서 순을 찾는다. 순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배운 게 있소"?

 

하고 유 초시는 기침을 하고 담을 꿀꺽 삼킨다. 불쑥 내민 멱살이 올라갔다 내려온다.

 

"따님을 내게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머, 잘이야 하겠습니까마는 간대로 고생은 아니 시킬 작정입니다."

 

하고 이 의사는 마침내 불을 내 놓았다. 너무 당돌해 염려도 있었지마는 이 노인이 내일까지 살아 있을지도 염려가 되기 때문에 유여할 새가 없었다.

 

이 의사의 말에 유 초시는 눈을 떠서 한참이나 이 의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과연 내 사윗감이 될 사람인가를 검사나 하는 듯이.

 

유 초시는 <꺾> 하고 이 의사 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애를 쓰다가 실패하고 그대로,

 

"아직 혼인을 아니하였던가요"?

 

하고 묻는다.

 

"하기는 했지요."

 

"그러면 상배를 하였던가요"?

 

"그런 것도 아닙니다마는 상배나 다름이 없지요."

 

"그럼 이혼을 하셨소"?

 

하고 유 초시의 눈은 더욱 커진다.

 

"아직 이혼도 아니했습니다마는 적당한 혼처만 있으면 이혼을 해도 좋지요. 이혼을 아니한다손 치더라도 딴 살림이니까 무슨 상관 있습니까."

 

하고 이 의사는 수줍은 듯이 웃는다.

 

"아니, 그럼 내 딸을 당신이 첩으로 달라는 말이요"?

 

하고 유 초시의 어성은 높고 떨렸다.

 

"장가처지, 첩 될 거 있나요? 그러면 영감께도 야속치 않게는 해 드리지요. 일시금으로든지, 매삭 얼마씩이라든지, 그것은 원하시는 대로, 또…"

 

유 초시는 어디서 난 기운인지, 이 의사의 말을 다 듣지도 아니하고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이놈, 이 고이얀 놈 같으니. 그래 날더러 내 딸을 네 첩으로 팔아먹으란 말이야. 어, 이놈. 냉큼 일어나 나가거라. 죽일 놈 같으니!"

 

하고 호령을 뺀다.

 

유 초시는 잠깐 숨이 막혔다가,

 

"요놈, 요 방자한 놈 같으니. 내 딸이 네놈과 네 계집년을 종으로 사다가 부리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야 죽을테다. 이 발측한 놈 같으니."

 

하고 베개를 집어 던지려고 베개를 향하고 뼈만 남은 손가락을 어물거린다.

 

"이놈 저놈이라니? 누구더러 이놈 저놈이래!"

 

하고 이 의사는 벌떡 일어나면서,

 

"늙은 것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앓지만 아니하면 당장에 잡아다가 콩밥을 먹이겠다마는."

 

하고 발악을 한다.

 

"웬 말버릇이야"?

 

하고 숭은 이 의사의 팔을 꽉 붙들어 마루 밖으로 내어 둘렀다.

 

"노인을 보고 원 그런 말법이 어디 있소"?

 

하고 숭은 쓰러지려는 이 의사를 다시 붙들어서 바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