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터를 다지는 날에는 온 동네가 떨려나왔다.

 

"동네에 집을 지으면서 삯돈을 받다니."

 

하고 삯을 받을 때마다 노상 말하던 동네 사람들은 이날에는 삯을 아니 받기로 거절하였다. 그래서 숭은 떡과 술과 참외를 많이 장만해서 동네 사람들을 먹였다.

 

"달구질은 저녁이 좋아."

 

하여 낮에는 터만 치고 달구질은 달밤에 하기로 하였다.

 

이날은 어느새에 칠월 백중 더위도 거의 다 지나고, 해만 지면 서늘한 바람이 돌았다. 이 동네에는, 달은 흰 하늘의 고개로 올랐다. 달이 오를 때쯤 하여 동네에서는 남녀노소가 숭의 새 집터로 모였다. 달빛은 달내강 물에 비치어 금가루를 뿌린 듯하였다.

 

"아하 어허 당달구야."

 

"어허 여차 당달구야."

 

달구 소리가 높이 울렸다. 달구 소리를 따라서 동아줄을 열 두 가닥이나 맨, 커다란 달굿돌이 달빛을 받으며 공중으로 올랐다가는 "쿵!"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이 집 한번 지은 뒤엔."

 

하고 한 사람이 먹이면,

 

"아하 어허 당달구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제히 받으면서 동아줄을 힘껏 당기었다. 그러면 달굿돌은 공중으로 솟아 올랐다.

 

"아들을 낳면 효자가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딸을 낳면 열녀가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닭을 치며는 봉황이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소를 치며는 기린이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안 노적에 밖 노적에."

 

"아하 어허 당달구야!"

 

"논 곡식 밭 곡식 썩어를 나고."

 

"아하 어허 당달구야."

 

"달냇벌에 쌓인 복은."

 

"아하 어허 당달구야!"

 

"이 집으로 모여 든다."

 

"아하 어허 당달구야!"

 

갈수록 사람들의 흥은 높아졌다. 배부른 것, 막걸리 먹은 것, 달 오른 것, 유쾌하게 일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합하여 사람들의 흥을 돋우었다.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잊게 하는 것 같았다.

 

숭은 유순이가 왔는가 하고 휘휘 훑어보았다. 이 집에는 유순이가 주인이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 같았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유순과 둘이 조그마한 가정을 지었으면, 숭은 이러한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숭은 무엇을 돌아보는 척하고 사람들 앞으로 다녀 보았다. 유순의 아버지 유 초시는 담배를 피우고 앉았는 양이 뵈었으나, 동네 처녀들도 더러 와 있는 것이 보였으나 유순의 모양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숭은 실망하였다. 유순이 없으면 하늘에 달도, 달이 비친 달내물도 빛이 없는 듯하였다.

 

숭은 슬그머니 빠져서 동네를 향하고 걸음을 걸었다.

 

동네에는 떠들만한 사람들은 다 숭의 집터 다지는 데로 나오고 조용하였다. 숭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는 순식간에 유순의 집 앞에 섰다.

 

유 초시 집은 반은 기와요, 반은 초가였다. 사랑도 있고 대문도 있었다. 예전에는 사랑문을 열어 놓고(오고 가는 손님을 접한다는 뜻) 살던 표가 있었다. 유 초시의 조부는 찰방도 지내고 집의까지도 지내어서 이 시골에서는 이름이 높았다. 유 집의의 시와 글을 모아 월천문집이라는 문집까지도 발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도 바뀌고 재산도 다 없어져서 유 지평의 제삿날,

 

<현고조 통정대부 행사헌부집의>

 

하는 축을 부를 때에만 유 초시는 맘이 흐뭇하였다.

 

옛날 같으면 관속이 나오더라도 사랑 뜰에서 허리를 굽혔지마는, 지금은 순사들이나, 전매국 관리들이나 유 집의댁을 알아볼 줄을 몰랐다. 유 초시도 처음에는 이것이 가슴이 아프도록 분하였지마는 지금은 그것조차 예사로 되고 말았다.

 

숭은 달빛이 가득 찬 마당에서 배회하였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지마는, 어려서는 무상 출입을 하였지마는 지금은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윽고 대문으로부터 순의 얼굴이 보였다. 숭은 처마곁에 선 늙은 오동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순은 대문을 나서서 높은 층층대(이 집은 터가 비탈에 있어서 대문 밖이 층층대가 되었다)로 사뿐사뿐 내려왔다. 그는 멀거니 달을 바라보더니 사뿐사뿐 걸어서 오동나무 곁으로 오다가 숭을 보고 깜짝 놀라 우뚝 섰다. 순의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오직 놀람뿐만 아니었다.

 

"내요, 숭이외다."

 

하고 숭은 나무 그늘에서 나섰다.

 

"네."

 

하고 순은 잠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집터 다지신다는데 어떻게 여기 와 계세요."

 

하고 순은 일전 우물가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반갑게 말하였다.

 

"동네 사람이 다 왔는데도 순씨가 아니 오셨길래 찾아왔지요."

 

하고 숭은 제 손을 만지면서 정성을 기울여,

 

"천하 사람이 다 있어도 순씨가 없으면 천지가 비인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하고 순은 한번 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주 이 동네에서 살려고, 일생을 이 동네에서 살려고 서울을 버리고 내려왔지요. 집을 짓는 것도 그 때문이요. 이 동네가 고향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고향이지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생각을 하면 이에서 신물이 도는 고장이지마는 이 동네에서 일생을 보내려고 작정한 것이 무슨 때문인지, 누구 때문인지 아셔요"?

 

하고 숭은 흥분한 눈으로 수그린 순의 오래 빗질도 아니한 머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