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내 말씀을 들으세요. 사건의 진상이 어찌 된고 하니, 황기수가 유순이라는 열아홉 살 되는 처녀의 손목을 잡아끄는 것을 그 여자가 항거한다고 해서, 황기수가 그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 사건의 시초외다. 서장은 물론 조선 사정을 잘 아시겠지마는 조선서는 남의 부녀에게 모욕을 하거나 손을 대는 것이 용서할 수 없는 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한갑이라는 청년이 황기수의 팔을 붙들고 제지를 했는데, 황기수가 맹한갑의 면상을 세 대나 때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맹한갑은 폭력을 쓰지 않고 말로만 승강이를 하다가 황기수가 주먹으로 맹한갑의 면상을 질러서 코피가 쏟아질 때에 맹한갑은 비로소 황기수를 넘어뜨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오는 위해를 면하려는 정당방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일곱 사람은 두 사람이 마주 붙은 것을 뜯어 말리려고 모여 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 증거로는 첫째, 황기수의 양복 저고리 등에 밖으로 묻은 피가 있다는데 이것이 맹한갑의 코에서 흐른 피요, 그것이 등에 떨어진 것은 맹한갑이가 황기수 뒷통수를 눌러 황기수의 손이 다시 자기의 낯에 오지 못하게 한 것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믿습니다.
또 만일 맹한갑이나 다른 일곱 사람이 황기수를 모진 매를 쳤다고 하면 황기수가 제 발로 뛰어 달아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에 말한 사실로 보아서 맹한갑 등 여덟 사람은 벌할 만한 죄가 없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맹한갑 등 여덟 사람은 그날 벌어서 그날 먹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오래 집을 떠난다는 것은 그 가족들의 굶어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현저한 죄상이 있으면야 그야 무가내하지마는, 사실 이 사건의 책임은 전혀 황기수에게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서장께서는 이러한 점을 밝히셔서 이 동정할 만한, 제 속에 있는 말도 다 할 줄 모르는 가련한 사람들을 하루라도 바삐 청천백일의 몸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내가 서장께 간곡하게 청하는 바입니다."
"황기수의 말은 그와는 좀 다른데."
하고 서장은 책상 위에 있는 초인종을 누른다.
그 소리에 응하여 들어오던 순사(기실 순사부장)는 숭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것은 일전 살여울에서 숭의 따귀를 때리던 사람이다. 숭도 한번 눈을 크게 떴다.
"그 황기수, 구타, 공무집행 방해 사건 어찌 되었나. 아직 자백들을 아니하였나."
하고 서장은 부장에게 물었다.
"네, 다른 놈은 다 자백했는데 한 놈이 아직도 아니합니다. 맹한갑이 한 놈이, 그 놈은 아주 흉악한 놈입니다. 자기는 먼저 맞았노라고, 자기는 절대로 정조식하라는 명령에 반항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허지만 오늘 안으로는 끝을 내겠습니다."
하고 자신 있는 듯이 말한다.
"배후에 선동자는 없나"?
하는 서장의 물음에 부장은,
"선동은 맹한갑이가 한 모양이고, 맹한갑이를 누가 선동했는지는 도무지 자백을 하지 아니합니다. 맹한갑은 보통학교를 졸업했을 뿐이니까 무산 대중이니 부르조아 제국주의 정부니 하는 말을 할 지식이 없겠는데, 황기수의 증언을 보면 그런 계급적 투쟁적 언사를 하고 부르조아 제국주의의 주구인 관리를 타도하라고 하더라니, 필시 지식계급에 있는 불량배의 선동이 있는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하고 부장은 허 변호사를 곁눈으로 미움과 악의가 가득한 눈으로 힐끗 보며,
"요새 서울 가서 전문학교깨나 댕긴 조선 사람들은 모두 건방지고 불온사상을 가지니까요."
하고 말한다.
"신 참사는 뭐라나."
하는 서장의 말에 부장은,
"황기수의 고솟장과 증인을 보장합디다."
"응, 알았네, 가게."
하여 부장을 내어보내고 서장은 눈에 가득한 승리의 웃음을 보이며,
"농민들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요? 당신도 목격한 것은 아니니까."
하고 인제는 허 변호사에게 대하여 볼일은 다 보았다는 듯이 서류를 보기 시작한다.
"검찰 당국에서 어련히 하시겠어요마는 한 말씀만 참고로 드리렵니다."
하고 숭은 서장의 주의를 끌고 나서,
"만일 황기수라는 사람이 자기의 허물을 싸기 위하여 허위의 증언을 하였다면 어찌 될까요"?
하고 물었다. 서장은 잠깐 불쾌한 듯이 허숭을 바라보더니,
"증거가 있지요, 황기수는 옆구리에 타박상이 있어 치료 이 주간을 요한다는 의사의, 공의의 진단서가 있지요."
하고 숭을 본다.
"황기수의 저고리 등과 맹한갑의 옷에 묻은 피는 증거가 아닐까요? 또 그 격투가 일어난 원인이 황기수가 유순이라는 여자에 대한 폭행이라는 것과 정조식 장려의 공무집행 방해라는 것과는 죄의 구성에 큰 차이가 있다고 믿거니와, 거기 대한 증거는 어떠합니까."
하고 반문할 때는 서장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당신은 변호사니까 후일 법정에나 서서 그런 이론을 하시는 것이 좋겠지요. 경찰이나 검사정에서는 변호사의 변론은 없는 법이외다."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감정으로 하실 말씀이 아니외다. 나도 변호사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요, 다만 피의자들이 내 동네 사람이요, 따라서 그들의 평소의 성격이며, 이번 사건의 진상을 잘 안다고 믿기 때문에 아무쪼록 이 사건이 간단하게 해결이 되기를 바라며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 말이 당신의 감정을 해하였다면 심히 유감됩니다."
그러나 숭의 이 푸는 말은 서장에게는 아무러한 효과도 주지 못하였다.
"당신이 그 농민들을 잘 아느니 만큼, 나는 황기수, 신 참사 같은 사람들을 잘 압니다."
하고 서장은 어디까지든지 공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