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원, 어떡한단 말인고."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신 삼던 손을 쉬고 호박잎 담배를 담으면서,

 

"그날 벌어 그날 먹던 사람들이 저렇게 오래 붙들려 가 있으면 거 원, 어떡한단 말인고."

 

이 노인은 아직도 상투가 있다. 몸은 늙은 소나무와 같다.

 

"무얼 어떡해요? 징역이나 지면 상팔자지,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요. 콩밥이라도 굶는 것보다 안 날라고."

 

하고 병 있는 듯한 젊은이가 역시 병 있는 듯한 젖먹이를 기어 나가지 못하게 붙들면서 웃는다.

 

"집안 식구들은 다 어떡하고"?

 

하고 이남박 깁던 이가 무릎을 들고 칼을 찾는다.

 

"집에 있으면 별수 있던가요. 빚에나 졸렸지. 이왕 잡아다 가둘 것이면 집안 식구를 다 가두어 주었으면 좋지."

 

하고 병 있는 듯한 이는 자기의 의견을 고집한다.

 

"그래도 집이 좋지, 비럭질을 해먹어도 집이 좋지."

 

하고 아직도 스무남은 살밖에 아니된 얼굴 검은 청년이 언권을 청한다. 마치 어른들 말참견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듯한 수줍은 태도로,

 

"응, 너도 좀 고생을 해봐라. 집도 먹구야 집이지 배때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데 집은 다 무에야"?

 

하고 병 있는 이가 선배인 체한다.

 

"얼마나들 있으면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고 숭은 화제를 돌리려 하였다.

 

<걱정없이 살아 간다>는 말에 사람들은 귀가 번쩍 뜨였다.

 

"그게야 식구 나름이지."

 

하고 이남박 깁던 이가 지혜 있는 양을 보인다.

 

"식구는 댓 식구 잡고."

 

하고 숭이 말을 첨부하였다.

 

"다섯 식구도 식구 나름이지마는, 일할 어른이 둘만 있으면야 글쎄, 논 닷 마지기, 밭 이틀갈이, 한 부엌 땔 산 한 조각이면야 거드럭거리구 살지."

 

하는 이남박 영감의 말에,

 

"논 닷 마지기만 있으면야 밭 이틀갈이 다 가지군들-하루 갈이만 가지군들." 하고 짚세기 노인이 수정을 한다.

 

"그러믄요, 논 닷 마지기만 있으면야 부자 부럽지 않지그려."

 

하고 여태껏 아무 말도 아니하고 치룽 결던 중늙은이가 한몫 든다.

 

"그리구두 벼름이 적어야. 요새처럼 벼름이 많아서야 농사나 해 가지고야 평생 빚지기 알맞지요."

 

하고 병든 이가 불평한다.

 

"그래도 논 닷 마지기, 밭 이틀갈이면 살아, 나뭇갓 있고."

 

하고 이남박 영감님이 자기의 주장을 보증한다.

 

"그야 그럼 그렇지요." 하고 대개 의견이 일치하였다.

 

"내가 모르겠나."

 

하고 이남박 영감님이 자기의 의견이 선 것을 만족하게 여긴다.

 

숭은 생각하였다. 논이 닷 마지기면 두 섬 내기 잡고 오팔은 사십 사백 원. 밭이 이틀갈이면 육백 원, 나무 값 백 원, 도합 일천 백 원, 천 원 돈이면 다섯 식구가 일생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뜯어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논 닷 마지기, 밭 이틀갈이."

 

하고 입속으로 외면서 숭은 집으로(한갑 어머니 집으로)돌아왔다.

 

"인제 오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어둠속에서 소리를 내었다. 그가 빠는 곰방대에서 호박잎 불이 번쩍한다.

 

한갑 어머니는 숭을 위하여 <웃간>이라는 방(건넌방에 비길 것이다)에 모기를 다 내어쫓고 문을 꼭꼭 닫아 놓았다. 숭은 방에 들어가 손으로 더듬어서 자리 있는 곳을 찾고 베개 있는 곳을 찾아서 드러누웠다. 몸이 대단히 곤하다.

 

"아이, 더워!"

 

하고 숭은 제일 먼저 더위를 깨달았다. 말만한 방에 문을 꼭꼭 닫아 놓았으니 이 복염에 아니 더울 리가 없다. 숭의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숭의 눈에는 서울 정동 집에 앞뒷문 활짝 열어 놓고도 선풍기를 틀어 놓던 것을 생각하였다.

 

숭은 더위를 참고 잘 생각을 하고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갑자기 이 변한 환경은 숭의 마음을 도무지 편안치 못하게 하였다.

 

"집을 버리고 아내를 버리고-"

 

하는 생각은 그리 유쾌한 생각은 아니었다. 비록 아내가 숭의 뜻을 몰라 주고 또 숭에게 대하여 현숙한 아내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내를 버리고 나온 것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뿐인가, 싸울 때에는 원수같이 밉더라도 애정은 그만큼 깊었다. 애정이 너무 깊기 때문에 싸움이 심한 것이 아닐까.

 

"내가 잘못하더라도 왜 참지를 못하우? 내가 잘못하는 것까지도 왜 사랑해 주지를 못하우? 어머니도 없이 자란 년이 남편 앞에서나 응석을 부리지 어디서 부리우"?

 

하고 싸우고 난 끝에 울며 하던 아내의 말을 생각하면 뼈가 저리도록 아내가 불쌍해진다.

 

"내가 악인은 아니유. 내가 당신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유. 당신이 내게 소중하고 소중한 남편이지만두, 내가 철이 없으니깐 그렇게 당신을 못 견디게 굴지. 그걸 좀 용서하고 참아 주지 못하우? 그래두 내 정선이 하고 귀애 주지 못허우"?

 

하고 정선은 싸우던 끝에 가끔 숭의 품에 안겨서 원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