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갑 어머니는 속으로 무한한 슬픔과 불안을 가지면서도, 도회 여자 모양으로 그것을 말이나 몸짓으로 발표하지는 아니하였다. 그에게는 조선의 어머니의 자제력이 있었다.
그러나 숭을 위하여 밥상을 들고 나오는 한갑 어머니의 모양은 차마 바로 볼 수 없도록 초췌하였다. 나이는 아직 육십이 다 못되었건마는 이가 거의 다 빠져서 볼과 입술이 오그라지고, 눈은 움쑥 들어가고, 몸에 살이 없어서 치마 허리 위로 드러난 명치 끝 근방은 온통 뼈다귀에다가 꼬깃꼬깃 꾸겨진 유지를 발라 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굳은 살과 뼈만 남은 손-그것은 일생에 쉬임 없는 노동과 근심과 영양불량으로 살아온 표적이었다.
숭은 일어나서 밥상을 받아 놓고, 서울서 보던 몸 피둥피둥하고 머리 반드르한 마님네를 연상하였다. 그네들에게는 일생에 하인들에게 잔소리 하는 고생밖에 노동이라는 것이 없었고, 그리고도 고량진미에 영양은 남고도 남아서 먹은 것이 미처 다 흡수될 수가 없어서, 끄륵끄륵 소화불량이 되어 보약입시요, 약물입시요, 하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밥상! 숭의 밥상은 몇 백년째나 한갑의 집에서 대대로 물려오는 팔모반이었다. 본래는 칠하였던 것이 벗어지는 동안이 반 세기, 벗어지는 한편으로 다시 때와 먼지로 칠하기 시작하여 완전히 칠해지기까지 반 세기, 가장자리를 두른 여덟 개 어슬 장식 언저리 중에는 겨우 세 개가 남았을 뿐이다. 이 소반은 그래도 한갑의 집이 옛날에는 점잖게 살던 집인 것을 표시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한갑 어머니는 지금도 자기 집 가장의 밥상이, 비록 은반상, 고기 반찬은 못 오를망정 모반(네모난 소반)이 아니요, 팔모반인 것을 큰 자랑으로 알고 있다. 이 소반은 한갑할머니가 한갑의 할아버지에게 시집 올 때에, 그 시조부의 밥상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 전에는 몇 대를 전하여 왔는지 모르지마는, 그 후에 한갑의 조부, 그 후에는 한갑의 아버지, 그리고는 한갑의 밥상이 된 것이었다. 이 밥상은 이 집 가장 이외에는 받지 못하는 거룩한 가보였다. 이 상에 밥을 주는 것이 숭에게 대한 더할 수 없는 큰 대접이었다.
상만 아니라 대접과 주발도 옛날 것이었다. 대접은 여러 대 이 집 가장이 써 오는 동안 밑이 닳아져서-그 두꺼운 밑이 닳아져서 뽕하고 구멍이 뚫려서 여기서 사십 리나 되는 유기전에 가서 기워 왔다.
"요새에는 이런 좋은 쇠는 없소."
하고 유기점 사람이 말하였다는 것은 결코 이 고물을 빈정댄 것만이 아니었다. 사실상 옛날 조선 유기는 요새 것보다 쇠도 좋고 살도 있고 모양도 점잖아서 요새 것 모양으로 작고 되바라지지를 아니하였었다. 숭은 이 비록 다 닳아진 것이나마, 그 후덕스럽고 여유있는 바탕과 모양을 가진 기명과 한갑 어머니와를 비겨보고, 옛날 조선 사람과 오늘날 조선 사람과의 정신과 기상과를 비교해 보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렇지마는 그 그릇에 담은 밥은 불면 날아갈 찐 호좁쌀이요, 반찬이라고는 냉수에 간장을 치고 파 한 줄기를 썰어서 띄운 것 한 그릇(이것이 유기점에서 기워 온 고물 대접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는 호박잎 줄거리의 껍질과 실을 벗기고 숭숭 썰어서 된장에 섞어서 호박 잎사귀에 담아서 화로불에, 글쎄 굽는달까 찐달까 한 찌개 한 그릇뿐이었다. 이 호박잎 찌개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찌개를 찔 그릇이 없는 것, 또 하나는 호박잎을 찌느라면, 된장에 있던 구더기가 뜨거운 것을 피해서 잎사귀 가장자리로 기어나오기 때문에 구더기를 모두 집어 낼 수 있는 편리가 있는 것이었다.
조밥 한 그릇 듬뿍 꾹꾹 눌러서 한 그릇, 파 찬국 늠실늠실 넘게 한 그릇, 그리고 구더기 없는 된장 호박잎 찌개 한 그릇-이것이 숭이가 농촌에 돌아온 후 첫 밥상이었다.
"아주머니 안 잡수셔요"?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서 먹게. 나 먹을 건 부엌에 있지."
하고 한갑 어머니는 마른 호박잎을 쓱쓱 손바닥에 비벼서, 아마 한갑이와 공동으로 쓰는 것인 듯한 곰방대에 담아서 화로에 대고 빤다. 이것이 호박잎 담배라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콩잎 담배가 생기거니와, 그 때까지는 호박잎 담배로 산다. 정말 담배를 사 먹는 사람이 이 동네에 몇 집이나 될까, 얻어만 먹어도, 대접으로 한 줌을 주기만 하여도 죄가 되는 이 세상이거든 한갑이가 짚세기를 삼아서 장에 내다 팔아서 장수연 한 봉지를 사다가 주면 어머니는
"돈 없는데 이건 왜 사왔니"?
하고 걱정을 하면서도 맛나게 피웠다.
숭은 목이 메어서 밥이 넘어가지를 아니하였다. 그것은 찐 호좁쌀밥이 되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찬국의 장맛이 써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된장 찌개에 구더기 기어나던 생각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갑 어머니의 말이 하도 참담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갑 어머니라는 비참한 존재, 그를 보는 것,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목이 메었던 것이다.
그래도 숭은 이 밥을 맛나게 먹어 보이는 것이 이 불쌍한 노인에게 대한 유일한 위로로 알고 냉수에 밥을 말아서 아무 감각도 없이 반 그릇이나 남아 퍼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숭이 숟가락을 놓을 때에 한갑 어머니는 곰방대를 놓고 일어나면서,
"어디 건건이가 있어야 먹지. 그래도 물에 다 놓지 않고, 자 한 술만 더 뜨게."
하고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서 밥을 물에 떠 넣으려고 한다.
"아이구, 그렇게 못 먹습니다."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의 팔을 붙들었다.
"이걸 원 어떡하나. 서울서 호강만 하던 손님을 쓴 된장에 호좁쌀밥을 대접하니 이거 어디 되겠나. 죽은 목숨야 죽은 목숨."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이가 남긴 밥에 물을 부어 그 자리에서 된장 찌개 아울러 먹기를 시작한다.
숭은 한번 놀랐다.
"이 노인이 밥을 한 그릇만 지어서 내가 남기면 먹고 아니 남기면 자기는 굶을 작정이었고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