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기수를 따라 가려고도 아니하고, 볼 일 다 보았다는 듯이 논에 들어서서 여전히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분함과 무서운 광경에 덜덜 떨고 섰던 부인네들도 일을 쉬었다가는 삯을 못 받을 것을 생각하고, 그 청년의 뒤를 따라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그렇지마는 어느 사람의 맘에나 무서운 후환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유순도 자기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을 생각하고는 심히 미안하였다.

 

신 참사는 그 청년이 기수를 더 때리지 아니한 것, 자기까지도 때리지 아니한 것만 다행으로 알고 아무 말도 아니하고 씨근벌떡거리며 기수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들이 손에 오르지도 아니하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을 때에 끝이 없는 듯하던 여름 해도 독장이라는 산마루에 올라앉게 되었다.

 

오늘 할 일은 다 되었다. 사람들은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집을 향하여 무거운 다리를 끌었다. 배는 고프고 허리가 아파서 몸이 앞으로 굽혀지려고 하고 눈알 힘줄이 늘어나서 눈알은 쏟아질 듯이 달리고, 다리는 남의 것과 같았다. 입을 다시어 마른 입술을 축이려 하나 침도 나올 것이 없었다. 순사가 나올 텐데, 하고 연해 읍으로 뚫린 길을 돌아보고는 그 청년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직 순사가 오는 모양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살여울 동네 앞에 일행이 가까이 왔을 때에는 다른 논에서 모를 내던 사람들도 들어오는 것을 만나고, 소를 먹여 가지고 타고 오는 아이들이며, 주인을 따라나오는 개들도 만났다. 모두 배가 고프고 피곤하여 마치 상여를 따라가는 사람들과 같이 고개를 폭 숙이고 도무지 말이 없었다. 어린애들까지도 뛰고 지껄일 기운이 없었다. 개들도 얻어 먹지를 못하여 뼈다귀가 엉성하였다. <주린 무리>, <기쁨 없는 무리>-이렇게밖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집들에서는 그래도 저녁 연기가 올랐다.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 여남은 살밖에 못된 계집애들의 발은 말할 것도 없고, 치마도 웃통도 다 벗고 땟국을 흘리며 부엌에서 먹을 것을 끓였다. 찐 조밥이면 상등이다. 만주 좁쌀 한 줌에 풀 잎사귀 한 줌, 물 한 사발을 두고, 젖은 나뭇개비를 때어서 불이라는 것보다도 썩은 연기로 끓인 것이 그들의 먹을 것이다.

 

구더기 움질거리는 된장도 집집마다 있는 것이 못된다. 모래알 같은 호렴도 집집마다 있는 것은 못된다. 이렇게 참혹한 것을 먹고 나서 어슬어슬하여 오면 모기가 아우성을 치며 나오고, 곤한 몸을 방바닥에 뉘어 잠이 들 만하면 빈대와 벼룩이 침질을 한다. 문을 닫자니 찌고, 열자니 모기가 덤비지 않느냐. 아아 지옥 같은 농촌의 밤이여. 쑥을 피워 눈물이 쏟아지도록 연기를 피우면 모기는 아니 덤비지마는, 쑥이 꺼지기만 하면 우와 하고 총공격을 하지 않느냐. 아아 지옥 같은 농촌의 밤이여!

 

"그래도 옛날에는…"

 

하고 노인들은 한탄할 것이다.

 

"그래도 옛날에는 제 집에, 제 땅에, 제 낙도 있더니만."

 

하고 집도 땅도 낙도 모두 잃어버린 노인들은 한탄할 것이다.

 

"옛날에는 늙은이, 계집애들은 논밭일 아니하고도 배는 곯지 아니하였건마는"

 

이렇게 배고픈 노인은 과년한 유순이 같은 처녀를 사내들 틈에 섞이어 삯모 내러 보내지 아니치 못하는 유순의 아버지는 한탄할 것이다.

 

"배만 부르면야 모기 빈대가 좀 뜯기로니"

 

"논과 밭이 내것이면야 허리가 아프기로니-내 곡식이 모락모락 자라는 것만 보아도 귀한 자식 자라는 것을 보는 것같이 기뻤건마는. 내가 심어 내가 거두어 내가 먹는 그러한 날을 한번 더 보고 죽었으면"

 

모길래, 빈댈래, 빚 근심일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늙은 농부들은 지나간 날을 생각하고 하룻밤에도 몇번씩 이러한 한탄을 할 것이다.

 

"어찌하다가 우리는 땅을 잃고 집을 잃고 낙도 잃었을까"

 

이렇게 늙은 농부는 유시호 자기네가 가난하게 된 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에는 이 문제를 설명할 만한 지식이 없다.

 

"별로 전보다 더 잘못한 일도 없건마는-술을 더 먹은 것도 아니요, 담배를 더 피운 것도 아니요, 도적을 맞은 것도 아니요, 무엇에 쓴 데도 없건마는-여전히 부지런히 일하고 아끼고 하였건마는, 새 거름 새 종자로 수입도 더 많건마는"

 

이렇게 땅을 잃은 농부는 자탄한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서 애를 쓴다.

 

"비싸진 구실, 비싸진 옷값, 비싸진 교육비, 비싸진 술값, 담배값"

 

그는 이러한 생각도 해본다. 채마 한편 귀퉁이에다가 담배포기나 심으면 일 년 먹을 담배는 되었다. 보릿말이나 누룩을 잡아, 쌀되나 삭히면 술이 되어 사오 명절이나, 제삿날에는 동리 사람 술잔이나 먹였다. 그렇지마는 지금은 담배도 사 먹어야, 술도 사 먹어야 한다. 내 손으로 만든 누에고치도 내 맘대로 팔지를 못한다. 그는 이러한 생각도 해본다.

 

넓게 뚫린 신작로, 그리로 달리는 자동차, 철도, 전선, 은행, 회사, 관청 등의 큰 집들, 수없는 양복 입고 월급 많이 타고 호강하는 사람들, 이런 모든 것과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나 하고 생각도 하여 본다. 그렇지마는 이 모든 것이 다 이 늙은 자기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는 해득하지 못한다.

 

"다 제 팔자지, 세상이 변해서 그렇지."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단념한다. 그에게는 자기의 처지를 스스로 설명할 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장래를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을 계획할 힘도 없다. 그는 모를 내고 김을 매고 거두고 빚에 졸리고, 모기 빈대에게 뜯기고, 근심 많은 일생을 보내기에 정력을 다 소모해 버리고, 다른 생각이나 일을 할 기력이 없다. 마치 늙은 부모가 오직 젊은 자녀들을 믿는 모양으로, 그는 어디서 누가 잘 살게 해 주려니 하고 희미하게 믿고 있다. 그에게는 원망이 없다. 그것은 조선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