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은 터덜거리는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잠깐 바라보고는,

 

"내가 기다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적막한 한숨을 쉬고는, 오래 한눈을 팔고 섰는 것이 여자의 도리답지 아니하다고 생각하고 남들은 여전히 차를 바라보며 지루한 일에 새로운 자극을 얻은 것을 기뻐하는 듯이 지껄일 때에 유순은 다시 허리를 구부리고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이거 모를 안 내고 무엇들 하고 있어"?

 

하는 소리가 뒤로 들려왔다. 그것은 그 논 임자 신 참사의 음성이었다. 이 사람들은 남자 삼십 전, 여자는 이십 전씩 하루에 삯돈을 받고 신 참사 집 논에 모를 내는 것이었다.

 

"허, 잠깐만 아니 보면 이 모양이어든."

 

하고 신 참사는 노기가 등등하여 단장을 내어두르고 잠자리날개 같은 모시 두루마기를 펄렁거리며 달려온다. 그 뒤에 따라오는 양복 입고 키 작은 사람은 농업 기수다. 정조식 감독하러 다니는 관원이다.

 

"천상 어쩔 수 없는 것들이로군."

 

하고 신 참사는 돼지 모가지같이 기름지고 밭은 모가지를 돌려 농업 기수를 돌아본다. 참 할수없는 놈들이라고 모내는 사람들을 비평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쉴 새도 없이 모를 내고 있다. 그들은 지금 내는 모가 신 참사의 것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들은 단군 이래로 제가 심은 것은 제가 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온 버릇이 있으므로 제가 심는 모가 남의 모라고는 생각하기가 서툴렀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오륙 년 전만 해도 대개는 제 땅에 제 모를 내었다. 비록 제 땅이 없더라도 지주에게 반을 갈라 주더라도 그래도 반은 제가 먹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오 년래로는 점점 지주들이 소작인에게 땅을 주지 아니하고, 사람을 품을 사서 농사짓는 버릇이 생겼다. 품이란 한량없이 있는 것이었다. 하루에 이십 전, 삼십 전만 내어 던지면 미처 응할 수가 없으리만큼 품꾼이 모여들었다.

 

이십 년래로 돈이란 것이 나와 돌아다니면서 차란 것이 다니면서,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고 전에 없던 것이 생기면서 어찌 되는 심을 모르는 동안에 저마다 있던 땅마지기는 차차 차차 한두 부자에게로 모이고, 예전 땅의 주인은 소작인이 되었다가 또 근래에는 소작인도 되어 먹기가 어려워서 혹은 두벌 소작인(한 사람이 지주에게 땅을 많이 얻어서, 그것을 또 소작인에게 빌려주고 저는 그 중간에 작인의 등을 쳐먹는 것, 마름도 이 종류지마는 마름 아니고도 이런 것이 생긴다)이 되고 최근에 와서는 세력없는 농부는 소작인도 될 수가 없어서 순전히 품팔이만 해먹게 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지주들이 모두 평양이니 서울이니 하고 살기 좋은 곳에 가 살고보니, 누가 귀찮게시리 일일이 성명도 없는 소작인과 낱낱이 응대를 할 수가 있나. 제가 믿는 놈 하나에게 맡겨버리고 받아들일만큼 해마다 받아만 들인다면 그런 고소한 일이 어디 있으랴.

 

신 참사는 아직 큰 부자는 못 되어서 기껏 읍내에 가서 살지마는, 그 까닭에 이 사람은 자기의 소유 토지를 직영을 하여서, 소작 문제니 농량 문제니 하는 귀찮은 문제를 해결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신 참사 한 사람이 자기의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 살여울에 밥줄 떼운 가족이 이십여 호나 된다.

 

"글쎄, 이 사람들아."

 

하고 신 참사는 사람들이 모를 심는 줄에 가까이 와서 단장으로 논두렁을 두드리며,

 

"저러니까 일생에 입에 밥이 아니 들어가지. 모를 내면 모를 낼게지 왜들 우두머니 서서 기차 지나가는 것을 보아. 그 따위로 내 눈을 속이다가는 내일부터는 일을 아니 줄걸. 내가 일을 아니 주면 흙이나 집어먹고 살 텐가. 흙은 누가 주나. 산은 국유지요, 논 밭은 임자가 있는걸. 괜히시리 그 따위로 하다가는 다들 밥 굶어 죽을걸. 개들 사는 집터도 내 땅야. 굶어 죽더라도 내 땅에서는 못 죽을걸. 허 고얀 사람들 같으니, 아 그래 하루 종일 낸 것이 겨우 요거야.

 

이런 여편네 계집애들은 일도 못하고 방해만 하거든. 젊은 녀석들이 계집애들 사타구니만 들여다보느라고 어디 일을 하겠나. 내일부터는 계집애와 여편네는 다 몰아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따로 일을 시켜야겠군. 여보게 문보, 자네는 무얼하느라고 이것들이 핀둥핀둥 놀고 있어도 말 한마디 아니하나? 내가 돈이 많아서 자네를 삯돈 세 갑절이나 주는 줄 아나. 허, 고얀 손 다 보겠군."

 

신 참사의 말은 갈수록 더 사람들의 분노감을 일으킨다. 제 것 남의 것을 잊고, 다만 흙을 사랑하고 볏모를 사랑하는 단군 할아버지 적부터의 정신으로 버릇으로 일하던 이 농부들은, 아아 우리는 종이로구나 하는 불쾌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모를 내는 사람들은 갑자기 흥이 깨어지고 일하는 것이 힘이 들게 되었다. 물에서 오르는 진흙 냄새 섞인 김, 볏모의 향긋한 냄새, 발과 손에 닿는 흙의 보드라움, 이마로부터 흘러내려서 눈과 입으로 들어오는 찝찔한 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제 땀 냄새, 남의 땀 냄새, 쉬지근한 냄새, 굵은 베옷을 새어서 살을 지지는 햇볕, 배고픔에서 오는 명치 끝의 쓰림, 오래 구부리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허리 아픔조차도 즐거운 것이건마는, 신 참사의 말 한마디에 이런 것도 다 괴로움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