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약혼하셨어요"?

 

하고 건영의 곁에 앉은 계집애가,

 

"나는 멋도 모르고 짝사랑야."

 

하고 팔을 들어 건영의 목을 안았다.

 

"약혼 아니요."

 

하고 건영은 힘없이 말하였다.

 

"대관절 웬 일이오"?

 

하고 갑진은 아주 점잖게 건영을 바라보며 동정있는 음성으로,

 

"그래, 정말 약혼을 아니했단 말요"?

 

하고 묻는다.

 

"아니했어요."

 

하는 건영의 음성은 비창했다. 두 친구와 계집애들의 시선은 건영에게로 옮겨갔다. 다들 이상하구나 하는 듯하였다.

 

"그럼, 오쟁일 졌구려"?

 

하고 갑진의 눈은 빛났다.

 

건영은 픽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웃었다.

 

"압다, 그러면 오쟁이 진 위로로 건배, 자, 다들 이 박사의 오쟁이 진 위로로 잔을 들어, 하하하."

 

하고 갑진은 위스키를 쭉 들이켰다.

 

다른 사람들도 들이켰다.

 

건영만 가만히 앉아 있다.

 

"이건 사내가…."

 

하고 갑진은 건영의 잔을 들어 건영의 입에다가 대며,

 

"사내가 오쟁이를 졌다고 여상고비하게 기운이 죽어서야 쓰나. 자, 벌떡벌떡 들이켜 보우. 세상에 계집애가 그애 하나밖에 없나. 수두룩한데 무슨 걱정야. 자, 이년아, 이건 무얼 하고 있어? 자, 이 양반 입을 벌리고 이 술을 좀 흘려 넣어!"

 

하고 건영의 곁에 앉은 시즈꼬라는 계집애를 향하여 눈을 흘긴다. 시즈꼬라는 계집애는 물론 조선 계집애지마는 다른 카페 계집애들 모양으로 일본식 이름을 지었다. 시즈꼬는 한편 눈이 좀 작은 듯하지마는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이라든지, 통통한 몸매라든지, 꽤 어여쁜 편이요, 또 천태도 적은 편이었다. 건영은 그 손이 순례의 손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아, 잡수세요!"

 

하고 시즈꼬는 건영의 목을 껴안고 갑진에게서 받은 위스키를 건영의 입에 부어 넘겼다. 술은 건영의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한 잔, 두 잔, 독한 위스키는 사람들의 양심이라는, 알콜에는 심히 약한 매균을 소독하여버렸다. 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동물성을 폭로하였다. 계집애들을 껴안고 음담을 하고 못 만질 데를 만지고 입을 맞추고…

 

"원체 혼인이란 것이 시대 착오거든-약혼이란 것은 시대 착오의 자승이고. 안 그런가, 이 사람들아."

 

하고 갑진이가 또 화제를 꺼낸다.

 

"암, 그렇고말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문학사다. 눈이 가늘고 입이 좀 빼뚜름한, 약간 간사기가 있을 듯한 사람이다.

 

"혼인은 해서 무얼 하나. 천하의 여성을 다 아내로 삼으면 고만이지. 오늘은 시즈꼬, 내일은 야스꼬, 안 그러냐 요것아."

 

하고 문학사는 시즈꼬의 허리를 껴안는다. 그는 시즈꼬를 못 잊는 모양이었다.

 

"왜 이래"?

 

하고 시즈꼬는 문학사의 팔을 뿌리치며,

 

"나는 이 양반하구 약혼할 테야. 이 박사하고-무슨 박사, 김 박사? 아니, 이를 어째, 용서하셔요, 응. 이 박사, 나하구 약혼하세요, 응? 혼인은 말구 약혼만 해, 응"?

 

"얘, 시이짱. 너는 대관절 몇 번이나 약혼을 하니"?

 

하고 의학사가 묻는다.

 

"나요? 이 양반과는 첫번이지."

 

하고 시이짱이라는 시즈꼬는 의학사인 거무스름한, 건강한 키 작은 사람을 향하여 눈을 흘긴다.

 

"요것도 오쟁이를 졌다나."

 

하고 문학사는 시이짱의 뺨을 손가락으로 찌른다.

 

"여자도 오쟁이를 지우"?

 

하고 시이짱은,

 

"사내한테 오쟁이를 지우지."

 

"요것이."

 

"왜 사람더러 요것이라우? 난 이 박사가 좋아. 우리 약혼해요. 응, 자, 이 술잔 드세요. 반만 잡숫고 날 주셔야지."

 

하고 시이짱은 건영의 입에 술잔을 대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