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생은 이윽히 이건영을 바라보며 그의 얼굴과 눈에 나타난 양심의 말을 읽으려는 듯이 가만히 생각하고 있더니 비장하다고 할 만한 어조로,
"나도 이 박사를 지사로 믿고 또 친구로 사랑하오. 그러니까 나는 이 박사에게 생각하는 바를 꺼리지 아니하고 말하오마는, 이 박사의 이번 일은 크게 잘못된 일이오. 이 박사는 자기의 인격의 약점을 부모에게 대한 의리라는, 듣기에 매우 노블한 말로 꾸미려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아니하오."
"선생님, 그것은 저를 너무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고 이건영은 분개하였다.
"내가 이 박사를 크게 믿던 바와 어그러지니까 하는 말이오."
하고 한 선생은 이건영을 책망하는 눈으로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제가 부모에게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을 어찌해서 이해하시지 아니합니까"?
하고 이건영은 자못 강경한 어조로 항의하였다.
"이 박사는 그러면 심순례라는 여자가 부모께서 반대하시는 바와 같이 이 박사의 배필이 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오"?
하고 한 선생은 다시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저는 심양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모가 반대하시니까, 자식이 되어서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까지 제가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어찌해서 옳지 아니합니까. 저는 요새 청년들이 연애는 자유라고 해서 부모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에 반감을 가집니다. 자식된 자는 혼인 같은 중대사에 있어서는 부모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고 건영은 뽐내었다.
"이 박사의 말씀이 대단히 옳소이다."
하고 한민교 선생은 앉은 자세를 고치어 몸을 교의에 기대고,
"허지마는, 이 박사에게는 두 가지 과실이 있소이다. 첫째는 만일 그렇게 부모의 의사를 존중한다 하면 심순례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부모의 의향을 듣지 아니한 것이외다. 둘째는 이 박사가 부모의 받으실 타격과 심순례라는 여자가 받을 타격과의 경중을 잘못 판단한 것이외다. 만일에 이 박사가 부모께서 반대하심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심순례와 혼인을 하신다면, 부모께서는 응당 불쾌하심을 가지실 터이니 그만한 정도의 타격을 받으실 것이외다.
그러나 이제 이 박사가 심순례와 혼인을 아니 하신다면, 심순례는 여자의 일생에 그 이상이라고 할 것이 없는 대타격을 받을 것이외다. 혹 그 여자는 자살을 할는지도 모르고, 혹 그 여자는 일생을 혼인을 아니하고 혼자서 불행한 생활을 할는지도 모를 것이외다. 그렇다 하면 부모께서 받으실 타격은 가벼운 타격, 스러질 수 있는 타격이지마는, 심순례가 받을 타격은 회복할 수 없는 무거운 타격일 것이외다."
하고 한 선생은 어조를 고치어,
"그뿐 아니라 원래 의리란 사회 존립을 중심으로 보면 가까운 데보다 먼 데 더 무거울 것이외다. 가령 채무로 본다하면, 형제간에 또는 친우간에 갚을 빚보다도 서투른 이에게 갚을 빚이 더 무거운 빚이외다. 왜 그런고 하면 가까운 이는 여러 가지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지마는, 서투른 남은 그러할 수가 없는 것이외다. 원래 도덕이란 나와 및 내게 속한 이를 위하여 나 이외 사람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것이 본의니까, 윤리학을 연구하신 이 박사는 나보다도 그 점을 잘 아실 줄 압니다."
하고 한 선생은 한층 소리를 높이고 한층 힘을 더하여,
"별로 이유도 없는<부모께서는 심순례라는 여자를 모르시니까 심순례 개인에 관한 무슨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오>, 부모의 반대를 이유로 혼인을 믿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한 뒤에 그 여자를 차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칭찬할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지 아니하시오"?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아니합니다. 행복될 가망이 없는 혼인은 미리 아니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이건영은 대항하는 어조였다.
"이 박사는 조선의 지도자가 되려거든 그 개인주의 행복설의 도덕관을 버리시오!"
하고 한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선생은 일어나서 마루 끝에 서서 남산을 바라보면서도 가끔 고개를 돌려 이건영을 엿보았다. 그는 이건영의 입에서,
"제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하는 말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한 선생은 이미 누구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한은 선생이 이건영으로 그 손녀 은경의 사위를 삼으려 한다는 말이었다. 한은 선생은 그 집에 이건영을 청하여 만찬을 대접하고 그 석상에서 그 부인 이하 모든 가족을 이건영에게 소개하였고, 그 자리에서 은경도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