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숭과 윤 참판의 딸 정선과의 약혼은 성립되었다. 정선으로 말하면 원래 숭을 사랑한 것이 아닐 뿐더러 집에 와서 심부름하던 시골사람을 제 남편으로 삼으려는 아버지의 처사가 불쾌하기조차 하였다. 그렇지마는 정선은 아버지의 뜻이 곧 제 뜻인 것을 안다. 딸은 혼인지사에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라는 조선의 딸의 전통적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는 이에 반항하려는 생각은 없고 도리어 숭을 사랑하려고 힘을 썼다. 숭의 좋은 점을 종합해 보았다.

 

숭의 건강, 도저히 서울 양반계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차라리 야만적이라고 할 만한 건강, 그의 남성적인 행동, 힘있게 다문 입, 보기에는 좀 흉하지마는 억센 손, 어깨, 가슴통, 그의 재주, 그의 아첨하는 빛 없는 솔직한 표정과 음성, 여자에 대하여 심히 범연한 듯한 것, 그의 거무스름한 살빛, 좀 과히 많은 듯한 눈썹, 두툼한 입술, 얼른 보기에는 둔하다고 할 만하도록 체격과 태도가 무거운 것,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정선은 숭을 남성적이요, 영웅적인 남편을 만들었다.

 

숭의 깊이있는 눈과 힘있게 뻗은 코는 더구나 정선에게 인상이 깊었다. 다만 꺼리는 것은 그가 고래로 천대받던 시골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외국사람과 같은 생각을 주었다. 시골사람이면 물장수, 기름장수, 마름, 산소 주인, 이런 것밖에 더 상상할 수 없는, 해라나 하게 이상으로 말할 사람이 없는 듯한 그런 관념을 가진 정선이, 더우기나 그의 어머니가 문벌 낮은 시골여자라는 것을 일가간에서도 수군거리는 것을 아는 정선이에는 이것이 고통이 아니 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위로되는 것은 윤씨 집에서 가장 존경 받는 어른인 한은 선생이 그 딸들을 모조리 시골사람에게 시집보낸 것이었다. 한 사위는 함경도, 한 사위는 평안도, 한 사위는 황해도, 그리고 한은 선생이 가장 사랑하는 손녀 은경도 시골 사람에게 시집보낸다고 늘 말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한은 선생은 계급 타파, 지방 감정 타파를 위하여서도 이러한 혼인 정책을 쓰지마는, 또 한 가지는 강건한 혈통을 끌어 들이려는 것도 한 까닭이었다.

 

이 모양으로 정선은 그 아버지의 자기 혼인에 대한 처분을 순복하였다.

 

정선보다도 이 약혼에 타격을 받은 이는 갑진이었다. 갑진은 떼논 당상으로 정선은 자기의 아내로 생각하였고, 또 윤 참판집 재산의 반분은 의례히 제게로 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리하던 것이 그는 고문 시험에 불합격이 되고(이것은 갑진의 변명에 의하면 자기가 치른 행정과 시험이, 숭이가 치른 사법과 시험보다 어렵다는 것과, 또 자기는 원래 학자 되기를 지원하기 때문에 시험을 도무지 중대시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제 또 그것이 이유가 되어 (갑진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름다운 정선과 그 재산을 허숭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사실상 숭이라는 경쟁자가 아니 나섰던들 정선은 갑진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숭이가 고문 시험에 합격을 못하였더라도 아마 그러하였을 것이다.

 

"이놈아, 구구로 있지, 백지 네까짓놈이 고문 시험을 치르어"?

 

하고 동경 가는 찻속에서 뽐내던 갑진의 코가 납작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배에서 삼백 원에 산 계집애도 동경에 있는 동안에 숭보다 갑진을 따랐다. 그래서 마침내 갑진의 것이 되어 버렸다. 이 계집애는 지금 밀양 제 친정에 있거니와 불원에 갑진의 혈육을 낳을 것이다. 갑진이가 울고 불고 안 떨어진다는 이 여자를 밀양으로 쫓아보내고 서울로 온 것은 이 말이 윤 참판의 귀에 들어갈 것을 두려워함이다.

 

허숭과 윤정선과의 약혼이 발표된 후로 갑진은 윤 참판 집에서 발을 끊어버렸다.

 

혼인 날은 시월 보름이었다. 시월 보름은 공교하게도 음력으로는 구월 보름이었다. 시월 십 오일 오후 세시, 정동 예배당에서 허숭과 윤정선은 만인이 다 부러워하는 혼인식을 하기로 되어 시월 초승에 벌써 청첩이 발송되었다. 허숭측 주혼자로는 숭의 청에 의하여 한민교의 이름을 썼다.

 

한 선생은 속으로 숭의 이 혼인에 반대의 생각을 가졌으나, 이왕 약혼이 된 것을 보고는 오직 내외 일생에 행복되기를 빌었다.

 

"허군."

 

하고 한 선생은,

 

"그리되면 서울서 변호사 생활을 하시오."

 

하고 약혼했다는 보고를 듣던 날, 숭에게 질문의 뜻을 품은 권고를 하였다.

 

숭은 한 선생의 이 간단한, 평범한 말이 심히 가슴을 찌름을 깨달았다. 마치 한 선생이 자기의 비루한 속을 꿰뚫어 보고 조롱하는 것 같이도 생각하였다.

 

"농촌으로 갑니다."

 

하고 숭은 대답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있나. 서울서 생장한 부인이 농촌 생활을 견디오? 또 농촌 사업만이 사업의 전체는 아니니까, 변호사 생활을 하는 것도 민족 봉사가 되지요. 돈벌기 위한 변호사가 되지 말고 백성의 원통한 것을 풀어주는 변호사가 된다면 그것도 민족 봉사지요. 또 변호사란 사람을 많이 접촉하는 직업이니까 좋은 사람을 많이 고를 기회도 있겠지요. 링컨도 변호사 아니오"?

 

하고 한 선생은 숭의 마음을 안정케 하였다.

 

숭은 마치 연기가 자욱하여 숨이 막힐 듯한 방에 갇혀 있다가 환하고 시원한 바깥으로 나아갈 문을 찾은 듯하였다. 한 선생의 이 말은 숭 자기의 맘을 안정시키는 말임을 잘 안다. 그러하기 때문에 숭은 한 선생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발등을 눈물로 씻고 싶도록 고마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