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의 불이 신기루 모양으로 보였다. 오륙도 작은 섬들도 물결 틈에 앉은 갈매기와 같았다. 동으로 보면 망망대해다. 어디까지 닿았는지 모르는 물과 물결.

 

숭도 가슴에 막혔던 것이 쏟아져 나온 것같이 가벼워짐을 깨달았다.

 

"참 바다는 좋네그려. 밤 바다는 더욱 좋은데."

 

하는 갑진의 긴 머리카락도 기쁨에 넘치는 듯이 춤을 추었다.

 

"바다에 나와 보면 우주도 꽤 크이."

 

하고 숭은 맘 없는 대꾸를 하였다.

 

두 사람은 가지런히 서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선실에서 보던 모든 무거운 생각을 해풍에 날려보내고 잠시 신선이나 되려는 듯이.

 

이 때에 뒤에서,

 

"여보세요!"

 

하는 여자의 말이 들렸다.

 

숭과 갑진이는 깜짝 놀라서 돌아섰다. 눈앞에는 머리를 땋아 늘인 십 오륙 세나 되었을까 한 여자가 서 있다. 달빛에 비친 그 얼굴은 마치 시체와 같이 창백하였다. 바람에 펄렁거리는 그 여자의 치마는 분명 남 인조견이었다.

 

숭과 갑진은 대답할 바를 모르고 멍멍히 섰다.

 

"저를 살려 주세요."

 

하고 여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속삭였다. 어느 사람에게 의지할 것인가 하는 듯하였다.

여자는 사람의 눈을 피하는 듯이 염치 불고하고 두 사람이 섰는 틈에 들어와 끼어 섰다. 숭은 두어 걸음 물러나서 여자의 설 자리를 비켜 주었다.

 

갑진은 곧 놀란 것을 진정하고 그 여자와 가지런히 서서 갑진의 특색인 쾌활하고 익숙한 어조로,

 

"웬일이요"?

 

하고 물었다.

 

여자는 또 한번 좌우를 돌아보았다. 숭은 여자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큰 갑판에서 바라보이는 곳을 막아섰다. 여자는 그제야 안심하는 듯이,

 

"저는 밀양 삽니다."

 

하고 여자는 억양 있는 경상도 말로 시작하였다.

 

"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의 빚을 져서 빚 값에 저를 팔았어요. 아버지는 일본으로 시집을 간다고 속이지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까 갈보로 팔려가는 거래요."

 

하고 말이 아주 분명하였다.

 

"빚은 얼마나 되오"?

 

하고 갑진이가 묻는다.

 

"촌에 농사하는 사람치고 빚 없는 사람 어디 있나요? 울아버지 빚은 일백 오십 원이랍니다. 소를 한 마리 사느라고 오십 원을 꾼 것이 자꾸만 이자는 늘고, 농사는 안 되고 해서 그렇게 많아진 거래요. 소는 빼앗기고도 일백 오십 원이랍니다. 그러니 죽으면 죽었지 일백 오십 원을 어떻게 갚습니까. 그래서 저를 빚 값에 팔았읍데다. 오십 원 더 받고…"

 

하고 부끄러운 듯이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갑진의 맘에 이만하면 갈보로 살 생각이 나겠다 하리만큼 그 여자는 이쁘장하였다.

 

"학교에 다녔소"?

 

하고 숭이가 물었다.

 

"네. 우리게 보통학교 졸업했습니다."

 

갑진과 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만하기에 말이 이렇게 조리가 있는 것이다 하였다.

 

"대관절, 그럼 어떡허란 말요"?

 

하고 갑진은 성급한 듯이 결론을 물었다.

 

여자는 어린 듯이, 또 애원하는 듯이 갑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그럼 날더러 이백 원을 내어서 물러 달란 말요"?

 

하고 갑진은 또 물었다.

 

"네."

 

하고 여자는 더욱 고개를 숙이면서,

 

"선생님 댁에 가서 무엇이든지 시키는 일은 다 해 드릴께 저를 물러 주세요. 밥도 질 줄 알고 방도 치울 줄 압니다. 갈보 되긴 싫어요!"

 

하고 여자는 울기를 시작했다.

 

"어, 이거 큰일났군."

 

하고 갑진은 숭을 돌아보며 기막힌 웃음을 하였다.

 

이 때에 웬 작자가 무르팍 바지를 입고 허둥거리며 오는 것이 달빛에 보였다. 그 작자는 분명 무슨 소중한 것을 찾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야요, 저 사람야요."

 

하고 여자는 두 주먹을 가슴에 꼭 대고 갑진의 곁에 바싹 다가선다. 마치 무서운 것을 보고 숨는 어린애 모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