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산 끊은 데를 지나고 산굽이를 돌아서, 게딱지 같은 농가들이 다닥다닥 붙은 촌락을 지나고, 역시 남녀가 바쁘게 모를 내는 논들을 바라보며 달아났다.

 

갑진도 숭의 말에 자극이 되어 그 대단히도 가난해 보이는 농가들과, 대단히도 힘들어 보이는 모심는 광경을 주목해 보았다. 갑진은 장안 생장으로 이러한 농촌의 광경은 마치 자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어떤 외국의 것과 같이 보였다.

 

갑진은 낯을 숭에게로 돌리며,

 

"그러니 저런 집에서 어떻게 하룬들 사나."

 

하고 탄식하였다.

 

"겉으로 보기보다 속에 들어가면 더하다네."

 

하고 숭은 갑진이 농가에 대하여 새로운 흥미를 느끼는 것이 신기한 듯이,

 

"저 집 속에를 들어가면 말야, 담벼락에는 빈대가 끓지, 방바닥에는 벼룩이 끓지, 땟국이 흐르는 옷이나 이불에는 이가 끓지, 여름이 되면 파리와 모기가 끓지, 게다가 먹을 것이나 있다던가. 호좁쌀 죽거리도 없어서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고 사네그려…."

 

하는 숭의 말을 다 듣지도 아니하고 갑진은,

 

"아따, 이 사람, 초근목피라는 옛말은 있다데마는, 설마 오늘날 풀뿌리, 나무껍질 먹는 사람이야 있겠나. 자네도 어지간히 풍을 치네그려, 하하."

 

하고 숭의 어깨를 아파라 하고 철썩 때린다.

 

숭은 깜짝 놀랐다. 어깨를 때리는 데 놀란 것이 아니라, 갑진이가 조선 사정을 모르는 데 놀란 것이었다.

 

숭은 이윽고 벙벙히 갑진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네 신문 잡지도 안 보네그려"?

 

하고 물었다.

 

"내가 신문을 왜 안 보아? 대판조일, 경성일보, 국가학회 잡지, 중앙공론, 개조, 다 보는데 안 보아? 신문 잡지를 아니 보아서야 사람이 고루해서 쓰겠나."

 

하고 갑진은 뽐내었다.

 

"그런 신문만 보고 있으니까 조선 농민이 요새에 풀 뿌리, 나무껍질 먹는 사정을 알 수가 있겠나? 자네는 조선 신문 잡지는 영 안 보네그려"?

 

하고 숭은 기가 막혀 하였다.

 

"조선 신문 잡지"?

 

하고 갑진은 도리어 놀라는 듯이,

 

"조선 신문 잡지는 무엇하러 보아. 무엇이 볼 게 있다고. 그까짓 조선 신문기자놈들, 잡지권이나 하는 놈들이 무얼 안다고. 그런 걸 보고 있어, 백주에 낮잠을 자지."

 

숭은 입을 딱 벌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갑진은 더욱 신이 나서,

 

"그 어디 조선 신문 잡지야 또 보기나 하겠든가. 요새에는 그 쑥들이 언문을 많이 쓴단말야. 언문만으로 쓴 것은 도무지 희랍말 보기나 마찬가지니, 그걸 누가 본단 말인가. 도서관에 가면, 일본문, 영문, 독일문의 신문, 잡지, 서적이 그득한데, 그까짓 조선문을 보고 있어? 그건 자네같이 어학힘이 부족한 놈들이나, 옳지 옳지! 저기 저 모심는 시골 농부놈들이나 볼 게지, 으하하."

 

하고 갑진은 유쾌한 듯이 좌우를 바라보며 웃는다.

 

"왜 자네네 대학에도 조선 문학과까지 있지 않은가"?

 

하고 숭은 아직도 갑진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 보려는 뜻을 버리지 아니하였다.

 

"응, 조선 문학과 있지, 나 그놈들 대관절 무얼 배우는지 몰라. 원체 우리네 눈으로 보면 문학이란 것이 도대체 싱거운 것이지마는 게다가 조선 문학을 배운다니, 좋은 대학에까지 들어와서 조선 문학을 배운다니, 딱한 작자들야. 저 상철이 놈으로 말하더라도 무엇이-춘향전이 어떻고, 시조가 어떻고, 산대도감이 어떻고 하데마는 참말 시조야. 미친 놈들."

 

하고 갑진은 가장 분개한 빛을 보인다.

 

"미치기로 말하면…"

 

하고 숭은 기가 막혀 몸을 흔들고 웃으면서,

 

"미치기로 말하면 자네가 단단히 미쳤네."

 

"누가 미쳤어"?

 

하고 갑진은 대들 듯이 눈을 부릅뜬다.

 

"자네 말야."

 

"자네가 누구야"?

 

"법학사 김갑진 선생이 단단히 미쳤단 말일세."

 

"어째서"?

 

"모든 것을 거꾸로 보니 미치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자네 눈에는 모든 것이 거꾸로 비친단 말야."

 

"무엇이"?

 

하고 갑진은 대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