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는 그 부모에게 한 선생 말을 하였다.
"아주 점잖으시고, 엄하시고, 친절하시고, 잘 가르치시고, 또 사회에 명망도 높대."
이것이 순례가 그 부모에게 한 한 선생에 대한 보고였다. 그 부모는 교육계나 사회에 나와 다니는 인물을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딸 순례를 믿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한번 순례의 아버지가 한 선생을 찾아가서 딸의 장래를 부탁하였다.
"저야 장사나 해먹는 놈이 무얼 압니까. 그저 공부가 좋다니, 자식이라고 그것 하나밖에 없구 해서, 학교에를 보냅지요."
하고 순례의 아버지는 한 선생에게 말을 붙였다. 그는 얼굴이 둥그레하고 눈이 크고 턱이 둥글고, 아래와 위에 조선식 수염이 나고, 골격이 크고 뚱뚱하다고, 할 만한 조선사람 타이프의 신사였다.
한 선생도 순례아버지의 꾸밈없는, 순 조선식인 성격에 많이 호감을 가졌다. 조선식 겸손, 조선식 위엄, 조선식 대범, 조선식 자존심, 조선식 점잖음(태연하기 산 같은 것)-이런 것은 근래에 바깥바람 쐰 젊은 사람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 선생은 생각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청년 남녀들의 일본 도금, 서양 도금의 경망하고 조급하고, 감정의 움직임이 양철 남비식이요, 저만 알고, 잔소리 많고, 위신없는 양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순례의 아버지의 이 간단한 말속에는, 순례가 학교에 있는 동안 잘 감독하고 훈육할 것과, 또 부모에게는 특히-옛날 조선식 부모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가 되는 혼인까지도 맡아서 해달라는 뜻이 품겨 있었다.
한 선생은 순례아버지의 청을 쾌히 받았다.
며칠 뒤에 순례아버지는 한 선생 집에 강원도에서 온 것이라 하여 꿀 한 항아리를 보내었다. 한 선생이 담배도 아니 먹고 술도 아니 먹는다는 말을 들은 순례아버지는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로 꿀을 보낸 것이었다. 오늘 이 박사와 윤명섭을 주빈으로 이 만찬회를 베푼 데는 순례의 신랑 될 이를 고르는 뜻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한 선생의 심중에 있는 후보자는 누구던가. 그것은 이건영 박사였다. 한 선생은 순례를 지극히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자기가 지극히 믿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시집보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건영은 배재에 있을 때에 가장 재주있고 얌전하기로 한 선생의 사랑을 받은 학생이요, 또 서양 간 뒤에도 몇 대학에 있는 동안에 항상 뛰어나는 성적을 가졌을 뿐더러 일찍 남녀간에든지 무엇에든지 좋지 못한 풍문을 낸 일이 없었다. 또 그 학식이나 표현 능력으로 말하면 그곳 일류 신문과 잡지에 여러번 게재되어 칭찬을 받을 정도였었다. 그래서 한 선생은 이 박사를 일변 보전이나 연전이나, 이전의 교수로 추천하는 동시에 순례의 남편을 삼았으면 하고 내심에 생각한 것이었다.
며칠 후 한 선생은 건영과 단둘이 만나서 순례에게 대한 인상을 물었다. 건영은 백 퍼센트로 좋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리고 건영의 청으로 순례는 건영과 십여 차나 만나서 단둘이서 이야기할 기회도 얻었다. 이삼 차는 단둘이서 호텔에서 저녁도 같이 먹고, 극장에서 활동사진도 보았다.
순례는 그리 뛰어난 미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아버지와 같이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눈이 조선식으로 인자하고 유순함을 보이고, 피부가 희고 윤택하고, 사지가 어울리고, 특히 손과 코가 아름다왔다. 건영의 말을 듣건댄 그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좋고, 그보다도 맘이 가장 아름다왔다.
순례는 일찍 누구와 다툰 일이 없고, 큰소리 한 일이 없고, 많이 웃지도 아니 하고, 우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조선의 선인들과 같이 좀처럼 희로애락을 낯색에 나타내지 아니하고 마치 부처의 모양과 같이 항상 빙그레 웃는 낯이었다. 그의 말은,
"네."
"아니오."
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옛날 조선의 딸이었다.
"순례의 값과 아름다움은 아는 사람만 알지."
하는 한 선생의 말에 건영은,
"참 그렇습니다. 이건영이 하나만 압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