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한 선생이라면 배재학당 계통과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에게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내 중등 이상 학교 학생간에는 아는 이가 많았다. 그는 본래 배재고보에 영어 교사로 있다가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와 있게 된 그러면서도 여전히 배재와 이화에 영작문 시간을 맡아보는 한 오십 된 사람이다. 그는 계통적으로 공부한 학력이 없기 때문에 전문학교에도 교수가 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어니와 고등보통학교에서도 교원 자격이 없다. 그래서 월급이 싸다.

 

한 선생의 이름은 민교(民敎)다. 그는 한민교(韓民敎)라는 그 이름이 표시하는 대로, 조선 청년의 교육 지도로 일생의 사업을 삼는 이다. 그는 일찍 동경에서 중학교를 마치고는 정칙영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역사, 정치, 철학 이러한 책을 탐독하였다. 그리고 조선에 와서는 그러한 조선사람이 밟는 경로를 밟아 감옥에도 들어가고, 만주에도 가고, 교사도 되고, 예수교인도 되었다. 그가 줄곧 교사 노릇을 하기는 최근 십년간이다.

 

한 선생의 집은 익선동 꼬불꼬불한 뒷골목에 있는 조그마한 초가집이다. 대문이 한 간, 행랑 겸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한 간, 안방이 간 반, 건넌방이 한 간, 그런데 웬일인지 마루만은 넓어서 삼 간, 그리고는 광이라고 할 만한 것이 뒷간 아울러 두 간, 그리고 장독대, 손바닥만한 마당, 부엌이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익선동 조그만 초가집이라면 한 선생 집이다.

 

방이 좁고 내객은 많으니까 턱없이 넓은 삼 간 마루에는 당치도 아니한 유리분합을 드렸다. 이 방을 놀러 다니는 학생들은 한 선생네 양실이라고 일컫는다. 딴은 양실이다. 조선식 방은 아니니까 양실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하나씩 기부한 교의가 너덧 개 있다. 혹은 졸업하고 가면서 제가 앉던 교의, 혹은 초전골 고물전에서 사온 교의, 그러니까 둘도 같은 것은 없고 형형색색이다. 나무만으로 된 놈, 무늬 있는 헝겊을 씌운 놈, 가죽으로 된 놈, 그 중의 한 개는 아주 빨간 우단으로 싼 놈까지 있다.

 

선생의 부인은 벌써 백발이 다 된 할머니다. 선생보다 사오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가족이라고는 내외밖에는 금년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딸 하나가 있을 뿐이요, 아들은 기미년에 의전에 다니다가 해외로 달아나서 이따금 편지가 있을 뿐이었다.

 

허숭도 물론 이 집에 다니는 학생 중의 하나다. 김갑진도 배재 시대 관계로 가끔 놀러 온다. 이화의 여학생들도 간혹 놀러 온다.

 

하루는 한 선생 집에 만찬회가 열려서 학생이 십여 명이나 모였다. 눈 오는 어느 날, 한 선생네 양실에는 방울만한 난로가 석탄불에 달아서 방이 우럭우럭하고, 난로 뚜껑 위에 놓인 주전자에서 하얀 김이 소리를 지르고 올랐다.

 

부엌에서는 한 선생의 부인이 이웃집 행랑어멈을 임시로 청하여다가 음식을 만들고, 한 선생의 딸 정란(廷蘭)은 들며 나며 심부름을 하고 있다.

 

이때에,

 

"문 열어라."

 

하는 이는 한 선생이다.

 

"아버지."

 

하고 정란은 앞치마로 손을 씻으며 뛰어나간다.

 

"아이, 아버지 외투에 눈 봐요."

 

하고 정란은 하얀 조그만 손으로 한 선생의 외투 가슴과 어깨에 앉은 눈을 떤다.

 

"아직 아무도 안 오셨니"?

 

하고 한 선생은 쿵쿵하고 발에 묻은 눈을 떤다.

 

"어느새에."

 

하고 정란은 아버지의 모자를 받고 신 끈을 끄른다.

 

"내 끄르마."

 

"아녜요. 내 끄를께요."

 

한 선생은 양실에 들어가서 외투를 벗어 정란에게 주고, 정란이가 오늘 손님을 위하여 애써 차려놓은 방을 둘러보고 만족한 듯이 웃었다.

 

정란은 아버지의 책상과 이 양실을 아버지의 뜻에 맞도록 차려놓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알았다. 분합문의 문장은 정란이가 손수 자수한 것이었다. 아직 솜씨가 서투르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 정성을 담은 것이다. 한 선생은 딸의 그 정성을 잘 알아줄 만한 아버지였다.

 

또 정란은 나무때기 교의에는 수놓은 방석을 만들어 깔았고, 테이블에는 테이블보를 수놓아 깔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책상(이것은 또 집에 어울리지 않게 큰 서양식 데스크였다)에는 잉크병 놓는 쿠션, 팔 짚는 쿠션, 필통 놓는 쿠션, 벼루 놓는 쿠션 등, 큰 것, 작은 것, 귀찮을이만치 많은 쿠션이 있었다. 정란의 생각에는 난로 뚜껑에까지 무엇을 짜서 깔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무지한 난로는 정란이가 정성들여 만든 예술품을 탐내어 집어먹었을 것이다.

 

한 선생은 정란이가 아버지를 위해서 난로 앞에 놓은, 나무때기 팔 놓는 의자에 앉았다. 수척한 한 선생에게는 바깥 날이 추웠던 것이다.

 

"과히 덥지 아니하냐."

 

하고 한 선생은 난로 문을 열어보며, 안방에서 아버지의 조선옷을 내어 아랫목에 깔고 있는 정란에게 물었다.

 

"아녜요. 바로 아까 육십 오 도던데."

 

하고 양실로 뛰어나와서 아버지 책상 위에 놓은 한란계를 본다.

 

"칠십 도야."

 

하고 정란은 웃는다.

 

"건넌방 문을 좀 열어놓아요"?

 

하고 아버지 뜻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