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역에 내린 때에는 숭은 꿈에서 깬 것 같았다. 바쁜 택시의 떼, 미친년 같은 버스, 장난감 같은 인력거, 얼음 가루를 팔팔 날리는 싸늘한 사람들.
숭은 전차를 타고 삼청동 윤 참판의 집으로 들어왔다. 방에 짐을 놓고 큰사랑에 가니, 윤 참판은 없고 웬 갓 쓴 사람만이 이삼 인이 앉았다. 작은사랑에 가니 윤 참판의 맏아들 인선(仁善)도 없다. 돌아나오다가 찌개 뚝배기를 든 어멈을 하나 만났다.
"학생 서방님 오셨어요"?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맏서방님이 대단히 편찮으시답니다. 영감마님도 안에 계세요."
한다.
원체 일개 가정교사, 시골 학생 하나가 다녀왔기로 윤 참판집에 대하여서는 이웃집 고양이 하나 들어온 이상의 중요성이 있지 아니할 것이다. 더구나 맏아들 인선이 중병으로 죽을 지 살 지 모르는 이 판에, 온 집안이 난가가 된 이 판에 허숭이 따위가 왔대야 아랑곳할 사람은 밥 갖다주는 어멈 하나밖에 없다.
허숭은 어멈을 통하여 인선의 병 증상을 대개 들었다. 원래 인선은 체질이 허약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인선이가 난 지 몇달이 아니되어서 폐병으로 죽었다. 본래 폐병이 있는 이가 아이를 낳고는 죽은 것이었다. 인선은 그 어머니의 체질을 받아 살빛이 희고, 피부가 엷고, 여자같이 부드럽고, 가슴이 좁고, 몸이 가늘고 길었다. 미남자는 미남자이지마는 퍽 약하였다. 그러나 재주는 있어서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았다.
인선과는 반대로, 그 아내는 몸이 건강하고 또 육감적인 여자였다. 숭도 가끔 그를 보았거니와 눈웃음을 치고 교태가 있는 여자였다. 인선의 친구들은 인선이가 아내 때문에 몸이 늘 허약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던 것이 인선이가 금년에 석왕사에 피서를 갔다가 설사병을 얻어가지고 돌아와서부터는 신열이 나고, 소화 불량이 되고 잠을 못 잤다. 윤 참판은 이것을 성화하여 의사도 불러대고 한방의도 불러대었으나 병은 낫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약 일주일 전에 어느 유명하다는(지리산에서 이십 년 공부했다는) 한방의를 불러다가 보인 결과, 녹용과 무슨 뽕나무 뿌리 같은 약과를 달여 먹였다. 이것을 먹고 병자는 전신이 뻘겋게 달고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고 웃고 날뛰었다. 그러기를 일주야나 한 뒤에 의사가 와서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서 잠이 들었으나, 그로부터 영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다고 한다.
지금도 사랑에는 갓 쓰고 때묻은 두루마기 입은 무슨 진사, 무슨 사과 하는 한방의가 이삼 인이나 모여앉아서, 서로 금목수화토 오행을 토론하고 갑을병정의 육갑을 주장하여 병인 머리 둘 방향을 날을 따라 고치고, 약 달이는 물을, 혹은 동쪽에서, 혹은 서쪽에서 방위를 가리어 길어오게 하고, 혹은 약물을 붓는 시간을 묘시니 진시니 하여 큰 문제나 되는 듯이 논쟁을 하였다.
약을 달일 때에도 제가 처방한 것은 제가 지키고 앉아서 달이고, 그 곁에는 심부름하는 계집애 종이 시중들고 섰었다. 갓 쓴 의원은 그 계집애더러 담배를 붙여들이라고 연해 명령하였다.
인선은 윤 참판의 맏아들일 뿐더러 어려서 어미 잃은 아들이요, 또 허약한 아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맘에 늘 두었다. 더구나 윤 참판이 나이 환갑을 지나면서부터는 재산에 관한 사무, 가사에 관한 사무를 거의 다 인선에게 맡기고, 자기는 다만 최고 권위자로 비토권만 가지고 있었다. 인선도 다른 부자집 아들 모양으로 허랑방탕하지 않고 적어도 돈 아낄 줄을 알았다. 윤 참판에게는 그 아들의 돈 아낄 줄 아는 것이 가장 기쁘고 믿음성 있는 일이었다.
이러하던 인선이가 앓는 것을 보고는, 윤 참판은 화를 내어 조석도 잘 아니 먹고 담배와 술만 마시었다.
허숭이가 돌아온 이튿날 아침에, 큰사랑에 가서 윤 참판을 만나 절을 하였다. 윤 참판은,
"오, 댕겨왔냐."
한마디를 하고는 돌아앉은 갓 쓴 의원들에게,
"어디 그 약이 효험이 있나."
하고 화를 내었다.
또 의원들간에는 상초가 어떻고 하초가 어떻고, 명문이 어떻고 수기니 화기니 하는, 말하는 자기들도 잘 알지 못하는 토론이 시작되었다.
마루의 약탕관에서는 꼬르륵꼬르륵하는 소리가 나고, 덮은 종이를 통하여 야릇한 향기를 가진 김이 올랐다. 날은 맑고 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