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을 마치고 돌아온 허숭(許崇)은 두 팔을 깍지를 껴서 베개 삼아 베고 행리에 기대어서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가만히 누워 있느라면, 모기들이 앵앵하고 모깃불 연기를 피하여 돌아가는 소리가 멀었다 가까왔다 하는 것이 들린다. 인제는 음력으로 칠월에도 백중을 지나서, 밤만 들면 바람결이 선들선들하는 맛이 난다.

 

이태 동안이나 서울 장안에만 있어서 모기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허숭은 고향에서 모기 소리를 다시 듣는 것도 대단히 반가왔다.

 

"어쩌면 유순이가 그렇게 크고 어여뻐졌을까."

 

하고 숭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럴 때에 숭의 앞에는 유순(兪順)의 모양이 나타났다. 그는 통통하다고 할 만하게 몸이 실한 여자였다. 낯은 자외선 강한 산 지방의 볕에 그을러서 가무스름한 빛이 도나 눈과 코와 입이 다 분명하고, 그리고도 부드러운 맛을 잃지 아니한 처녀다. 달빛에 볼 때에는 그 얼굴이 달빛 그것인 것같이 아름다왔다.

 

흠을 잡자면 그의 손이 거치른 것이겠다. 김을 매고 물일을 하니, 도회여자의 손과 같이 옥가루로 빚은 듯한 맛은 있을 수 없다. 뻣뻣한 베 치마에 베 적삼, 그 여자는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그는 맨발이었다. 발등이 까맣게 볕에 그을렀다. 그의 손도, 팔목도, 목도, 짧은 고쟁이와, 더 짧은 치마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도 다 볕에 그을렀다. 마치 여름의 햇볕이 그의 아름답고 건장한 살을 탐내어, 빈틈만 있으면 가서 입을 맞추려는 것 같았다.

 

허숭은 유순을 정선(貞善)과 비겨 보았다. 정선은 숭이가 가정교사로 있는 윤 참판집 딸이다. 정선은 몸이 갸날프고 살이 투명할 듯이 희고, 더구나 손은 쥐면 으스러져 버릴 것같이 작고 말랑말랑한 여자다. 그는 숙명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미인이었다.

 

물론 정선은 숭에게는 달 가운데 사는 항아(姮娥)다. 시골, 부모도 재산도 없는 가난뱅이 청년인 숭, 윤 참판집 줄행랑에 한 방을 얻어서 보통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숭으로서는 정선 같은 양반집, 부자집, 미인 외딸은 우러러보기에도 벅찬 처지였다.

 

그러나 유순이 같은 여자면 숭의 손에 들 수도 있다. 지금 처지로는 유순의 부모도 숭이에게 딸을 주기를 주저할 것이지마는, 그래도 학교나 졸업하고 나면 혹시 숭을 사윗감으로 자격을 붙일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자기 신세를 생각하여 한숨을 쉬었다.

 

숭은 이 동네에서는 잘 산다는 말을 듣던 집이었다. 숭의 아버지 겸(謙)은 옛날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 출신으로 신민회 사건이니, 북간도 사건이니, 서간도 사건이니, 만세 사건이니 하는 형사 사건에는 빼놓지 않고 걸려들어서, 헌병대 시절부터, 경무총감부 시절부터 붙들려 다니기를 시작하여 징역을 진 것만이 전후 팔 년, 경찰서와 검사국에 들어 있던 날짜를 모두 합하면 십여 년이나 죄수 생활을 하였다.

 

이렇게 기나긴 세월에 옥바라지를 하고 나니, 가산이 말이 못되어 숭의 학비커녕 집을 보존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겸은 남은 논마지기, 밭날갈이를 온통 금융조합에 갖다 바치고, 평생에 해보지도 못한 장사를 한다고 돌아다니다가 저당한 토지만 잃어버리고, 홧김에 술만 먹다가 어디서 장질부사를 묻혀서 자기도 죽고 아내도 죽고 숭의 누이동생 하나도 죽고, 숭이 한 몸뚱이만 댕그렇게 남은 것이다.

 

현재의 숭에게는 집 한간 없다. 지금 숭이 잠시 와서 머무는 집은 숭의 당숙 성(誠)의 집이다.

 

유순의 집은 이 집에서 등성이 하나 넘어가서 있다. 순의 부모는 순전한 농부다. 순의 아버지 진희(鎭?)는 아직도 젊었거니와 그 늙은 조부 유 초시는 글을 공부하여 초시까지 한 사람이다. 원래 이 동네는 수백 년래로 허씨가 살고, 등성이 너머 동네에는 유씨가 살았는데, 허씨나 유씨가 다 이 시골에서는 과거장이나 하고 기와집 간이나 쓰고 살아왔다. 그러나 유 초시의 말을 빌면,

 

"갑오경장 이후에야 글이나 양반이 다 쓸데 있나"

 

하여 이 두 동네도 점점 쇠퇴하여서, 용감한 사람들은 모두 관을 벗어버리고 수건을 동이고, 책과 붓대를 집어던지고 호미를 들고 들로 나갔다. 그러나 그 중에는 여전히 옛 영화를 생각하여 관을 쓰고 꿇어앉는 이도 한둘은 있고, 또 숭의 아버지 모양으로 <개화에 나서서>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다니다가 옥살이를 하는 이도 이삼 인은 있었다. 이를테면 유순의 집은 약아서 제 실속을 하는 패의 대표요, 허숭의 집은 세상 일을 합네, 학교를 다닙네 하고 날뛰는 패의 대표였다.

 

예정한 일주일의 야학이 끝나고 내일은 허숭이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마지막 날 야학에, 허숭은 더욱 정성을 다하여 남은 교재를 가르치고, 또 강연 비슷하게 여러 가지 권유를 하였다.

 

야학은 부인반과 남자반 둘로 갈렸었다. 부인반에는 숭의 아주머니, 할머니뻘 되는 사람도 있고, 숭의 누이뻘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숭이가 설명하는 위생 이야기, 땅이 둥글다는 이야기, 해가 도는 게 아니라 땅이 돌아간다는 이야기, 비행기, 전기등 이야기, 무엇이 비가 되고 무엇이 눈이 되는 이야기 같은 것을 다 신기하게 들었다.

 

"그 원 그럴까."

 

하고 혹 의심내는 이도 있었으나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남자반은 이와 달라서 질문하는 이도 있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대관절 어째서 차차 세상이 살아가기가 어려워만 지나."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요새는 대학교 조립(졸업)을 하고도 직업을 못 얻는대."

 

하는 세상 소식 잘 아는 이도 있었다.

 

"너도 그만큼 공부했으면 인제는 장가도 들고 살림을 시작해야지, 공부만 하면 무엇하니"?

 

하고 할아버지뻘, 아저씨뻘 되는 이가 말을 듣다 말고 교사인 숭에게 뚱딴지 훈계를 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허씨들인 중에 간혹 등 너머 유씨들도 와서 섞였다. 여자반에도 그러하여서 유순이도 이렇게 와 섞인 이 중의 하나였다.

 

유순이는 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마는 야학에 출석하였다. 그는 가장 정성있게 듣는 이 중의 하나였다.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허숭은 자연 서운한 맘이 생겼다. 숭은 이야기하는 중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순을 바라보았다. 순의 눈도 숭의 눈과 가끔 마주쳤다. 숭은 이야기를 끝내기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