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도 녹용도 쓸데없이, 허숭이가 온 지 닷새 만의 새벽에 인선은 마침내 죽어버렸다. 인선이가 위태하단 말을 듣고 초저녁부터 친척들이 모여들어서 안팎이 웅성웅성하였다. 그 중에는 참판의 삼종형이요, 사회에 명망이 높은 한은(漢隱) 선생이라고 세상이 일컫는 이도 오고, 또 죽은 이의 재종 삼종 되는, 혹은 일본 유학도 하고, 혹은 구미 유학도 한 젊은이들도 오고, 또 숭이 알지 못하는 사내들과 부인들도 왔다.

 

또 허숭과는 고등보통학교 선배 동창이요, 지금 경성제대 법과에 다니는 김갑진(金甲鎭)이라는 학생도 왔다. 갑진은 칠조약 때에 관계 있어 남작을 받은 김남규(金南圭)의 아들로서 보통학교 시대부터 교만한 수재로 이름이 높았다. 다만 그 아버지 남규가 주색과 투기사업으로 돈을 다 깝살리고, 마침내는 파산을 당하고 또 사기로 몰려 불기소는 되었으나, 남작 예우는 정지되고 죽었기 때문에 갑진은 가난하고 또 습작(襲爵)도 못하였을 뿐이다. 그는 아버지와 윤 참판과 막역한 친구이던 인연으로 윤 참판이 학비를 대어서 지금까지 공부를 시키고, 그러한 까닭으로 마치 친척이나 다름없이 세배 때나 기타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윤 참판 집안에도 출입하였다.

 

인선이가 죽은 뒤로, 사람들의 시선-부러워하는 듯한 시선은 윤 참판의 딸 정선에게로 쏠렸다.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선의 모양은 더욱 아름다움을 더한 듯하였다.

 

정선은 윤 참판의 둘째 아내의 몸에서 난 딸이다. 정선의 어머니는 윤 참판이 전라감사로 갔을 때에 도내에 제일 부호라는 말을 듣던 남원 김 승지의 딸에게 장가들어 얻은 아내로, 인물이 아름답기로, 재산을 많이 가져오기로 유명한 부인이다. 그때 서울에서는 윤 참판이 돈을 탐내어서 시골 상놈의 딸에게 장가든 것이라고 비웃었거니와, 그 비웃음은 사실에 가까왔다.

 

이 김씨 부인은 만석을 가져왔다고도 하고, 오천 석을 가져왔다고도 하거니와, 어쨌든 윤 참판이 전라감사 이태에 약 만석의 재산이 붙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 중에는 뇌물 받은 것, 학정한 것도 있겠지마는, 적어도 그 중에 삼분지 이는 김씨 부인이 가지고 온 것이었다.

 

김씨 부인에게 장가를 듦으로, 또는 전라감사를 다녀옴으로부터 윤 참판은 일약 장안에서 부명을 듣게 되었고, 세상이 바뀌고 호남 철도가 개통됨으로부터는 곡가와 지가가 몇갑절을 올라서, 윤 참판의 재산은 무섭게 늘었다.

 

김씨 부인은 그러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놓고 아직 사십이 다 못되어서 죽었다. 아들은 얼마 아니하여 죽고, 그의 유일한 혈육으로 남은 것이 정선이다.

 

정선은 그 모습이 천연 그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키가 호리호리하고 살이 희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죽은 오라버니와 같이 허약한 빛이 없고, 부드러운 중에도 단단한 맛이 있었다. 코가 너무 오똑하고 눈에 젖은 빛을 띠어 여염집 처녀로는 너무 애교가 있는 것이 흠이면 흠이랄까.

 

정선은 숙명에서도 두어 번 수석을 한 일이 있고, 이화 전문학교 음악과에 들어간 뒤에도 미인, 수재의 평이 높다. 천만 장자요, 양반의 따님이었다, 미인이었다, 수재였다. 그 어머니가 친정에서 가지고 온 재산의, 적어도 한부분은 상속할 수 있다는 정론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들 가진 사람, 재주 있는 청년의 시선이 그리로 모일 것은 물론인데다가 이제 윤 참판의 맏아들 인선이 죽으니, 윤 참판의 평소의 성미로 보아서 이 딸의 남편이 될 사위가 윤 참판의 작은아들 예선이 자랄 때까지 윤 참판 집에 채를 잡을 것이 분명한 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정선의 몸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가 이러한 정선의 남편이 되는 행운의 제비를 뽑을 것인가-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이 중대 문제였다.

 

아들이 운명하는 것을 본 윤 참판은 사랑으로 뛰어나와서, 갓 쓴 의원이며 음양객들을 모두 몰아내었다.

 

"이놈들, 아무것도 모르고 내 아들 죽인 놈들!"

 

하고 호령하는 서슬에, 갓 쓴 무리들은 혼이 나서 쫓겨나갔다. 나가다가 한 사람이 돌아와서,

 

"집으로 갈 노자나 주시지요."

 

하고 애걸하였으나 윤 참판은,

 

"저놈들이 또 기어들어와! 네 저놈들 몰아내어라.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서, 저놈들 깡그리 묶어가게 하여라."

 

하는 바람에 다시 입도 벙끗 못하고 다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윤 참판은 화로에 놓인 약탕관을 집어 던졌다. 약탕관은 사랑 마당에 끓는 검은 물을 토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문 뒤에 붙어 섰던 허숭은 윤 참판의 성난 것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윤 참판의 앞에 나서며,

 

"무어라고 여쭐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조상하는 인사를 하였다.

 

"응, 인선이 죽었어."

 

하고 윤 참판은 허숭을 바라보았다.

 

허숭은 더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