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이가 배만은 이등을 타자고 하는 것을 숭은 삼등을 주장하여 뒷 갑판 밑 삼등실로 내려갔다.

삼등실에서는 후끈하는 김이 올랐다. 구역나는 냄새가 올랐다. 벌써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객들-그 중에 반수 이상은 조선 노동자였다-은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담요 조각을 깔고 드러누웠다. 뒤에 들어가는 사람은 먼저 들어간 사람이 잡은 자리의 한 부분을 얻어서 궁둥이를 붙였다.

 

숭도 한편 구석에 자리를 잡았으나, 갑진은 아무리 하여도 여기는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숭은 갑진의 가방을 빼앗아다가 제 가방 곁에다가 놓고, 갑진의 팔을 잡아 잡은 자리로 끌어다가 어깨를 눌러서 앉혔다.

 

갑진은 숭이가 하는 대로 복종하였다.

 

사람은 많건마는 다들 떠들지는 아니하였다. 마치 앞날의 알 수 없는 운명을 바라보는 듯이, 또 두고 온 고향의 산천과 이웃-그것은 그다지 유쾌한 기억을 자아낼 재료도 못 되련마는-을 생각하는 듯이 눈을 껌벅껌벅하고 앉았을 뿐이었다.

 

"자, 이 사람."

 

하고 숭은 갑진의 모자를 벗겨서 가방 위에 놓으며,

 

"오늘은 자네 평생에 처음 조선 대중과 함께 하는 날일세. 저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나 영양불량인지, 얼마나 무식한지, 또 얼마나 더러운지, 또 무엇을 생각하는지, 또 어찌하여 고향을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떠나는지, 저 사람들의 장래가 무엇인지 좀 알아보게."

 

하고 웃었다.

 

갑진은 끄덕끄덕하였다.

 

삼등 선실은 찌는 듯이 더웠다-무더웠다. 배가 떠나기도 전에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배를 타 보는 모양인 노동자들과, 그 중에도 여자들은 멀미나기 전에 잠이 들려고 베개에다가 이마를 박고 애를 쓰지마는, 애를 쓰면 쓸수록 잠이 들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전전반측하는 불안의 상태는 그들 자신의 생명의 불안, 그 물건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젖먹이가 어미의 젖에 매달려서 보채는 양이 실내의 공기를 더욱 암담하게 하였다. 반백이나 된 늙은이가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고 앉았는 양도 갑진에겐 무겁게 내려누르는 무엇이 느껴졌다.

 

쿵쿵쿵쿵 하고 배는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쇠사슬 마찰되는 소리가 울려왔다. 가만히 앉아서도 배가 방향을 돌리는 것이 감각되었다. 여러 번 이 뱃길을 다녀본 듯한, 이들 중에는 개화꾼인 듯한 젊은패 몇 사람이 일본사람 식으로 다리를 꼬고, 두 팔로 무릎을 짚고 앉아서 서투른 일본말로 떠드는 것만이 있고는 모두 고요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갑판에 올라가서 해풍을 ?6.59.5쐬다든지, 또는 멀어가는 고향 산천을 바라본다든지 할 마음의 여유도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나를 어디나 편안히 살 곳으로 실어다 주오. 그저 살려주오. 못 살 데로 데려다 주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소"

 

하는 것 같았다.

 

"나가세, 좀 밖으로 나가세."

 

하고 갑진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몸의 더움에, 맘의 압박에 견딜 수가 없었다.

 

숭도 갑진을 따라 갑판으로 나왔다. 갑판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에이, 시원하다."

 

하고 갑진은 체조할 때 모양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시원한 해풍은 그의 명주 와이샤쓰를 보기 좋게 팔랑거렸다.

 

검푸른 바다, 밝은 달, 시원한 바람, 드문드문 반짝거리는 하늘의 별과 바다의 어선, 때때로 보이는 하얀 물결의 머리.

 

"어, 시원해."

 

하고 갑진은 구조정 밑, 조용한 난간에 가슴을 기대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