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한 선생은,

 

"무엇이든 개인주의로, 이기주의로만 마시오. 허군 한 몸의 이해와 고락을 표준하는 생각을 말고 조선사람 전체를 위하여 하겠다는 일만 하시오. 그 생각으로만 가지면 서울에 있거나 시골에 있거나 또 무슨 일을 하거나 허물이 없을 것이오."

 

하였다.

 

이 말에 허숭의 가벼워졌던 몸은 다시 무거운 짐으로 눌리는 것 같다.

 

"과연 내 혼인이 조선사람 전체를 위하여 내 몸을 바치기에 가장 적당한 혼인일까"

 

하고 허숭은 생각하고 거기 대한 대답을 아니하기로 힘을 썼다.

 

허숭이 집에-윤 참판집에, 지금은 처가에 돌아왔을 때에는 양복집에서 와서 기다리는 지가 오래였다.

 

"글쎄 어디 갔다가 인제 오시우"?

 

하고 정선이가 숭을 대하여 눈을 흘겼다. 벌써 그만큼 친밀하여진 것이었다.

 

"왜 걱정하셨어요"?

 

하는 허숭의 말에,

 

"하셨어요? 다 무에야? 했소? 그러지. 그저 시골뜨기 티를 못 버리는구려."

 

하고 정선은 서양부인이 하는 모양으로 숭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했다. 허숭은 약혼한 뒤에도 정선에게 극존칭을 썼다. 말이 갑자기 고쳐지지를 아니한 것이다. 정선은 그럴 때마다 오금을 박았다. 정선은 아무도 다른 사람이 없을 때에는 숭에게 와서 안기기도 하고, 제 조그마한 손을 숭의 큼직한 손에다가 갖다 쥐어주기도 하였다.

 

"자, 겨냥해요. 감은 내가 골랐으니."

 

하고 정선은 숭의 저고리 단추를 끌렀다. 귀에 연필을 낀 젊은 양복장이는 권척을 들고 빙그레 웃으면서 사랑하는 두 남녀의 하는 양을 보았다.

 

"무슨 양복이오"?

 

하고 숭은 저고리를 벗으며 웃었다.

 

"아이, 참! 자, 어서!"

 

하고 정선도 기가 막히는 듯이 웃었다.

 

숭은 연미복과 모닝과 춘추복 한 벌, 동복 한 벌, 딴 바지 하나씩 껴서 춘추 외투 한 벌, 겨울 외투 한 벌을 마추고, 정선도 혼인식에 입을 드레스 기타 철 찾아 입을 양복 일습(一襲)을 마추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집에 있는 침모 외에 임시로 여러 침모들을 고용하여 신랑 신부의 의복 금침을 마련하고, 또 서양식 장농과 조선식 장농과 침대 같은 것도 마련하였다. 그것뿐 아니라 윤 참판은 허숭이가 장차 변호사를 개업할 것을 고려하여 재판소도 가깝고 조용도 한 정동에 한 사십 간 되는 집을 사서, 일변 수리도 하고 일변 도배하고 살림 제구를 준비하였다. 살림 제구뿐 아니라 남녀 하인들까지도 준비하였다.

 

"너희들이 살 집이니 너희들 맘대로 꾸며라."

 

하여 윤 참판은 숭과 정선에게 집을 수리하는 전권을 주었다.

 

정선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 하여서는, 숭이 미국 영사관 모퉁이에서 기다리다가 둘이 나란히 새 집으로 들어가서,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하고 도배장이와 하인들에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리고는 장차 어떻게 할 것까지도 의논을 하였다. 그 계획은 거의 날마다 변하는 것이었다.

 

정선은 이 집이 친정집만 못한 것이 불평이었다. 더구나 양실이 없는 것과 넓은 정원이 없는 것이 불평이었다.

 

"이 집이 협착해서 어떻게 살어!"

 

하고 정선은 가끔 가다가 짜증을 내었다. 그럴 때에는 숭은 놀랐다. 사십 간 집, 이렇게 좋은 집이 협착하다는 정선을 어떻게 섬겨가나 한 것이었다.

 

"가만 있으우, 내 변호사 노릇 해서 돈벌어서 저 석조전만한 집을 하나 지어 드리리다."

 

하고 웃었다. 그러나 이 말을 한 끝에는 숭은 스스로 놀랐다. "어느 새에 나는 내 집만을 크게 꾸미려는 생각이 났는가, 이것이 과연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아니요, 조선 전체를 생각함인가"하고.

둘째로 정선이가 이 집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은 대문이 평대문인 것과, 바로 대문 앞까지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숭은 변호사로 돈을 벌어서 해결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