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숭에게 <당신 무엇이요?>하던 순사가 수첩을 꺼내어 들고,

 

"성명이 무어"?

 

하고 신문하는 구조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아니어든, 왜 까닭없는 사람더러 불공하게 말을 하오"?

 

하고 숭은 뻗대었다.

 

"아마 이놈이 동네 농민들을 선동을 하여서 농업 기수에게 폭행을 시켰나 보오. 이놈부터 묶읍시다."

 

하고 한 순사가 일본말로 하였다.

 

숭은 어찌 된 영문을 몰라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러나 이 순사들은 자기를 따라온 것이 아니요, 이 동네 농민과 기수 사이에 무슨 갈등이 생겨서 농민들을 잡으러 오는 것임을 짐작하였다. 그리고는 일변은 변호사인 직업의식으로, 또 일변은 자기가 일생을 위해서 바치려는 살여울 동네 농민에게 무슨 중대 사건이 생겼다 하는 의식으로 이 자리에서 쓸데없는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옳지 아니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늘 아침 차로 서울서 내려온 사람이요. 지금 내 고향인 살여울로 가는 길이요."

 

하고 역시 일본말로 냉정하게 대답하였다.

 

숭의 유창하고 점잖은 일본말과 또 냉정한 어조에 수첩을 내어든 순사는 좀 태도를 고쳤다.

 

"오늘 차에서 내렸소"?

 

하고 일본말로 좀 순하게 물었다.

 

"그렇소."

 

"그랬으면 자네네들 이 사람 보았겠지"?

 

하고 두 조선 순사를 돌아보았다.

 

두 순사는 물끄러미 숭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응, 본 것 같소."

 

하고 싱겁게 대답하였다.

 

이리해서 급하던 풍운은 지나갔다. 더구나 변호사라는 명함을 보고는 경관들은 좀더 태도를 고쳤다. 숭의 따귀를 때린 순사는 약간 머쓱하기까지 하였다. 숭은 불쾌한 생각이 용이히 가라앉지 않지마는, 이것은 시골에 의례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꿀떡 참았다-아니 참기로 별 수가 있으랴마는.

 

숭은 짐을 들고 순사들의 뒤를 따라갔다.

 

동네 개들이 요란하게 짖었다.

 

목적한 범인 여덟 사람은 반 시간이 못 되어서 다 묶이었다. 그들은 반항도 아니하고 변명도 아니하고 어디 구경가는 사람 모양으로 열을 지어서 묶이어 섰다. 다만 아들을, 남편을 잡혀 보내는 부인네들이 문 앞에 서서 울 따름이었다.

 

이 사건의 주범되는 맹한갑은 잡힐 때에 매를 맞고 발길로 채어서 그러한 자리가 있었다.

 

숭은 우두커니 서서 이 광경을 보았다.

 

경관대는 담배 한 대씩을 피우고는 범인 여덟 명을 끌고 읍으로 향하였다.

 

허숭은 와 있기를 바라는 일가집을 다 제치고 한갑의 집으로 갔다. 이전에는 쓴 외 보듯 하던 일가 사람들도 숭이가 변호사로 부자집 사위로 훌륭한 옷을 입고 돌아온 것을 보고는 다투어서 환영하였다.

 

"네가 귀히 되어 왔구나."

 

하고 할머니 아주머니뻘 되는 부인네들까지도 환영을 하였다.

 

"아이, 올케가 썩 미인이라더구나."

 

하고 누이 항렬 되는 여자들도 대환영이었다. 그러나 숭은 이러한 환영도 다 뿌리치고, 이 동리에서 제일 작고 가난한 한갑이네 집을 택하였다. 한갑 어머니는,

 

"아이, 자네같이 귀한 사람이 어떻게 우리집에 있나."

 

하고 걱정하였다.

 

"쌀이 없는데, 반찬이 없는데."

 

하고 한갑 어머니가 애를 썼다.

 

"자제 먹던 대로만 해 주세요."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에게 안심을 주었다.

 

한갑 어머니는 잡혀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올까 하고 부엌에서 숭을 위하여 밥을 짓는 동안에도 몇번이나 나와서 숭에게 물었다.

 

"기애가 글쎄, 그놈을 때렸다네 그려. 순이 손목을 그 놈이 잡고 또 순이의 뺨을 때렸다구, 기애가 글쎄, 그런 애가 아닌가. 학교에 다닐 적에도 남의 일에 참견을 노상 하지 않었나. 글쎄, 어쩌자고 관인(관리라는 받든 말)을 때리나. 그런 철없는 녀석이 어디 있어? 아이, 그 녀석이 이 늙은 에미 속을 이렇게 아프게 하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들락날락하며, 어떤 때에는 부엌에서 머리만 내밀고 또 어떤 때에는 부지깽이를 들고 몸까지 내놓고, 어떤 때에는 소리만 나왔다.

 

"왜 한갑군이 잘못했습니까"?

 

하고 숭은 진정으로 한갑의 행동에 감격하여서,

 

"그럼, 남의 여자 팔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놈을 가만두어요-두들겨 주지요."

 

"그야 그렇지."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의 칭찬에 만족하는 듯이, 부엌 문 밖에 나와서 허리를 펴며,

 

"그렇지만두, 요새 세상에 농부나 해먹는 놈이야 어디 사람인가. 귀 밑에 피도 아니 마른 애들이 무슨 서깁시요, 무슨 나립시요, 하고 제 애비 할애비뻘 되는 어른들을 이놈, 저놈하고 개 어르는 듯하지. 걸핏하면 따귀를 붙이고. 글쎄, 일전에도 전매국인가 어디선가 온 사람이 담배가 어쨌다나 해서."

 

하고 마나님은 비밀의 말이나 되는 듯이 소리를 낮추며,

 

"저, 회나뭇댁 참봉 영감을 구둣발로 차서 까무러쳤다가 피어는 났지마는 아직도 오줌 출입도 못한다오. 그 양반이 지금 환갑 진갑 다 지내고 일흔이 넘은 어른이 아니신가. 말 말어. 그나 그 뿐인가. 그놈의 청결 검사, 담배 적간, 술 적간, 농회비, 무엇이니 하고 읍내서 나오는 날이면 어디 맘을 펴 보나. 글쎄, 남의 집 안방, 부엌 할 것 없이 시퍼렇게 젊은 놈들이 막 뛰어들어와 가지고 젊은 아낙네까지 붙들고 힐거를 하는 수가 있으니, 요새 법은 다 그런가, 서울도 그런가, 나라 법이야 어디 그럴 수가 있나.

 

이래서야 어디 백성들이 살아 먹을 수가 있나. 또 그놈의 신작로는 웬걸 그리 많이 닦는지, 부역을 나와라, 조약돌을 져 오너라, 밭갈 때나 김맬 때나 나오라면 나가야지, 아니 나갔다가는 큰일 아닌가. 우리 같은 것도 그래도 한 집을 잡고 산다고 남 하는 것 다 하라네그려. 이거 원 어디 살 수가 있나. 서울도 그런가. 우리 면장이 몹쓸어서 그런가, 구장이 몹쓸어서 그런가, 나라 법이야 어디 그럴 수가 있나."

 

하고 마나님은 길게 한숨을 지며,

 

"아무려나 우리 한갑이나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지마는, 그 녀석이 왜 글쎄, 관인을 때려! 망할 녀석!"

 

하고 눈물을 떨어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