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실은 이 노인은 끼니마다 밥 한 그릇 지어서는 아들을 주고 아들이 먹다가 남기면 자기가 먹고 아니 남기면 숭늉만 마시었다. 아들이 혹,
"어머니 잡술 것 없소"?
하고 물으면 그는,
"없긴 왜? 부엌에 담아 놓았지. 지금 먹기가 싫어서 있다가 먹으려고 그런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모양으로 한갑 어머니는 춘궁기가 되어서부터는 햇곡식이 날 때까지 하루에 한 끼도 먹고 반 끼도 먹고 살아간다. 밖에 나가서 힘드는 일을 하는 아들만 든든히 먹여 놓으면 집에 가만히 있는 자기는 굶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이 늙은 부인은 피부 밑에 있어야 할 기름을 다 소모해버리고, 아마 내장과 뼈속에 있는 기름도 다 소모해버리고 오직 뼈와 껍질만이 남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은 흐리고 입술은 검푸르다. 피가 부족한 것이다. 피 될 것이 없는 것이다.-이렇게 허숭은 생각했다.
한갑 어머니는 그 밥과 된장과 찬국을 하나 아니 남기고 다 먹어버린 뒤에 상을 들어 옮겨 놓으며,
"그런데 베노사 벼슬을 해서 귀히 되었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왔나. 이 더운데? 그래도 고향이 그리워서 왔지? 얼마나 있다 가려나? 오늘 밤차로는 아니 가겠지."
하고는 늙은 부인은 불현듯 한갑이를 생각하고,
"어떻게 우리 한갑이 무사하게 해주게. 이 늙은 년이 그놈을 잃구야 어떻게 사나. 하느님이 도우셔서 베노사가 오게 했지."
하고 혀를 끌끌 찬다.
"서울 안 갑니다. 여기 살러 왔어요."
하고 숭은 귀머거리에게 말하는 높은 음성으로 힘있게 말하였다. 한갑 어머니가 귀가 먹은 것은 아니지마는, 그 초췌한 모양이 보통 음성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이 보인 것이었다.
"여기서 살다니? 베노사같이 귀한 사람이 무얼 하러 이런 데 사나. 죽지를 못해서 이런 시골 구석에 살지. 쌀밥을 먹어보나. 대관절 담배 한 대를 맘대로 먹을 수가 없단 말야. 그도 옛날 같으면야 이따금 떡도 해먹고 술도 해먹고 돼지도 잡아먹고 한 집에서 하면 여러 집에서 노나도 먹고 하지마는, 요새야 밥을 땅땅 굶고, 노나먹다니 인심이 박해져서 없네 없어. 또 쌀독에 인심이 난다고 어디 노나먹을 것이나 있다든가. 웬일인지 우리 동리도 요새에는 다 가난해졌거든.
신구상계나 하고 농량이나 아니 떨어지는 집이 우리 동리에 초시네 집하고 구장네 집하고나 될까. 다 못살게 되었지. 글쎄, 유 초시네 순이가 삯김을 매네그려, 말할 거 있나. 그 순이가 어떻게 귀엽게 자라난 아가씬데. 다들 못살게 되었단 말야. 글쎄, 베노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데서 사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의 농담을 믿은 것이 부끄러운 듯이 싱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연기와 같이 희미하고 연기와 같이 힘없이 스러지고 만다.
"정말입니다."
하고 숭은,
"여기 살러 왔습니다. 어디 집이나 한 간 짓고 농사나 지어 먹고 살러 왔습니다. 인제는 서울 안 가구요."
하고 다지었다.
"그럼 댁네도 이리로 오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반신반의로,
"왜 벼슬이 떨어졌나"?
하고 근심하는 빛을 보인다.
"아내가 따라오면 할 수 없겠지마는 웬걸 오겠어요."
하고 숭은 아내에 관한 말을 길게 하기가 싫었다.
"아니, 댁네가 아주 부자집 양반집 따님이라든데. 또 순이가 그러는데 아주 예쁘게 생긴 사람이라든데. 그리고 처가댁에서 좋은 집도 사 주고, 땅도 여러 천 석 하는 것을 갈라주었다두구먼. 오, 그럼 여기 땅을 사러 왔나. 오 그렇구먼, 살여울 논을 사러 왔구먼. 베노사가 논을 사거든 우리 한갑이도 좀 주라고. 지금 논을 사려면 얼마든지 산다네. 모두 척식회사라든가, 금융조합이라든가에 잡혔던 것이 경매가 되게 된다고 다만 몇 푼이라도 남겨 먹게만 준다면 팔아버린다구들 그러는데, 한 마지기 둘 셋 나는 것을 삼십 원이니, 사십 원이니 부르고 있다네.
그렇게라도 팔아야 단돈 십원이라도 내 것이 된단 말야. 머 금년까지나 팔면 이 동리에 제 땅 가진 사람 별로 없을 걸세. 그러면 작까지 떨어지거든. 왜 금 같은 돈 주고 산 사람이 이전 작인 붙여둔다든가, 제 맘에 드는 사람 떼어주지. 그러니깐 이 동리에서는 사람 못 산다니까 그러네그려. 모두 떼거지 나구야 말지. 다른 데서들은 다들 서간도로 간 사람도 많지마는, 우리 살여울 동리야 어디 고래로 타도 타관으로 떠난 사람이야 있었나.
다들 그래도 제 집 쓰고 제 땅 가지고 벌어먹었지. 몇 해 전만 해두 살여울 땅을 놓으면 맘을 놓는다고 안했나. 우선 베노사네 집은 작히나 잘 살었나. 부자 아니었나. 베노사는 명당손이니까 또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마는, 다른 사람이야 한번 땅을 팔면 모래 위에 물 엎지르는 것 아닌가, 다시는 못 주워담지, 우리 집도 베노사네만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지는 않지 않었나…."
이날 밤 숭은 저녁을 먹고 초시네 회나무 밑으로 갔다. 이 회나무는 본래 숭의 집 것이었다. 지금은 집 아울러 초시라는 사람의 것이 되었다. 이 회나무 밑은 여름이 되면 밤이나 낮이나 동리 사람의 회의실이요, 휴식소요, 담화실이었다. 오늘 저녁에도 모깃불을 피워놓고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늙은이, 젊은이, 아이들, 여러 떼로 모여 앉았다.
숭도 그 틈에 끼었다. 끼이자마자 숭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