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나무는 난 지가 몇백 년이나 되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살여울에 배가 올라오던 시절에, 이 나무에 닻줄을 매었다 하나 그 배 올라오던 시절이 어느 때인지는 더구나 아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배 올라오는 데를 가자면 여기서 남쪽으로 시오 리는 가야 한다.
옛날 산에 나무가 많을 때에는 달내강에 물이 깊어서, 배가 살여울 동네 앞까지 올라왔을 법도 한 일이요, 이 동네에 처음 들어온 시조들이 배를 타고 이리로 올라왔을 법도 한 일이다. 그 때에 이 살여울 동네에는 산림이 무성하고 노루, 사슴, 호랑이가 들끓었을 것이다. 그 조상들은 우선 나무를 찍어 집을 짓고, 땅을 갈아서 밭을 만들고, 길을 내고, 우물을 파고, 그리고 동네 이름을 짓고, 산 이름을 짓고, 모든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물이 살같이 빠르니 살여울이라고 짓고, 강에 달이 비치었으니 달내라고 짓고, 달내가 가운데 흐르니 이 젖과 꿀이 솟는 벌을 달내벌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 때에 이 골짜기 그것을 두른 산 달내강, 거기 나는 풀과 나무와 고기와 곡식과 개구리 소리, 꽃향기가 모두 이 사람들의 것이었다. 아무의 것이라고 패를 써 박지 아니하였지마는 패를 써 박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 회나무도 그 나무가 선 땅이 근년에 몇번 소유권이 변동되었지마는, 이 나무는 말없는 계약과 법률로 이 동네 공동의 소유였다. 이 동네에 사는 이는 누구든지 이 나무 그늘의 서늘함을 누릴 수가 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소도 말도 개도 병아리 거느린 닭들도 이 회나무 그늘 밑에서 놀든지 낮잠을 자든지 아무도 금하는 이가 없었고,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이 늙고 점잖은 회나무 그늘을 덥고 아픈 다리를 쉰다 하더라도 누가 못하리라 할 이가 없었다.
이 말이 믿기지 아니하거든 이 경력 많은 회나무더러 물어보라. 그는 적어도 사오백 년 동안 이 살여울 동네의 역사를 목격한 증인이다. 이 동네에서 일어난 기쁨을 아는 동시에 슬픔도 알았다. 더구나 이 동네 수염 센 어른들이 짚방석을 깔고 둘러앉아서 동네 일을 의논하고 잘못한 이를 심판하고, 훈계하고 하는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사무가 처리된 것을 이 회나무는 잘 안다.
비록 제 일조, 제 이조 하는 시끄럽고 알아보기 어려운 성문율이 없다 하더라도 조상적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거룩한 율법이 있었고, 영혼에 밝히 기록된 양심률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어느 한 사람에게 손해를 지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릇 온 동네의 이익이라든지 명예에 해로운 일을 생각할 줄 몰랐다. 그것은 이 회나무가 가장 잘 안다. 개인과 전체, 나와 우리와의 완전한 조화-이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또 이 회나무는 그 그늘에서 일어난 수없는 연회를 기억한다. 혹은 옥수수, 혹은 참외, 혹은 범벅, 혹은 막걸리, 혹은 개장, 이러한 단순한, 그러나 건전한 메뉴로 짚세기를 결어 가며, 새끼를 꼬아 가며, 치?969루을 결어 가며, 꾸리를 결어 가며, 어린애를 달래어 가며, 고양이까지도 참석을 시켜 가며 즐거운 연회를 한 것을 이 회나무는 잘 기억한다.
면할 수 없는 죽음이 이 동네 어느 집을 찾을 때, 이 회나무 밑에서 온 동네의 뜨거운 눈물의 영결식을 하는 것도 아니 볼 수 없었지마는, 정월 대보름날 곱닿게 차린 계집애들이 손길을 마주 잡고 큰 바퀴를 만들어 가지고서,
"어딧 장차"?
"전라도 장차."
"어느 문으로"?
"동대문으로."
하고 추운 줄도 모르고 웃고 노는 양을 더 많이 보았다.
간혹 이 그늘에서, <이놈, 저놈>하고 싸우는 소리도 날 때가 있지마는, 그러한 충돌은,
"아서라."
하는 동네 어른의 점잖은 소리 한마디에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숭은 이러한 공상을 하고 있었다.
"글쎄, 이놈들아, 왜 불장난을 하느냐."
하고 <든덩집 영감님>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가 짚세기를 삼으면서 모깃불에서 불붙은 쑥대를 뽑아서 내두르는 웃통 벗은 아이들을 보고 걱정한다.
"이놈들아, 불장난하면 오줌 싸."
하고 젊은 사람 하나가 주먹을 들고 아이들을 위협한다. 위협 받은 아이들은 빨갛게 타는 쑥대를 내어둘러 어두움 속에 수없이 붉은 둘레를 그리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깨르륵깨르륵 웃는 소리만 남기고. 그러나 그 애들은 쑥대에 불이 꺼지면 다시 모깃불 곁으로 살살 모여든다.
"어떻게 될 모양인고"?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한편 발뒤꿈치에다가 신날을 걸고 꺾꺾 힘을 써서 죄면서,
"다들 무사하기는 어렵겠지"?
한다. 누구를 지명해 묻는 것은 아니나, 허숭을 향해서 묻는 것이 분명하다.
"아 관리를 때렸는데 무사하기를 어떻게 바라오."
하고 깨어진 이남박을 솔 뿌리로 꿰매고 앉았던 이가 대답을 가로챈다.
"아무리 관리기로 남의 처녀의 손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법이야 어디 있나."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손 뼘으로 신바닥을 재면서,
"옛날 같으면 될 말인가. 그놈의 정강이가 안 부러져"?
하고 분개하였다.
"옛날은 옛날이요, 오늘은 오늘이지요. 관리라는 관짜만 붙으면 남의 내외 자는 안방이라도 무상 출입을 하는 판인데, 처녀 팔목 한번 쥐고 뺨 한번 붙인 것이 무엇이야요"?
하고 이남박 깁는 이도 아니 지려고 한다. 그는 나이가 사십 가량 되고, 머리도 깎고 세상 경력이 많은 듯한, 적어도 고생을 많이 한 듯한 말법이다.
"때린 것이 잘못이지."
하고 어디서 점잖은 음성이 온다. 구장 영감이다. 그는 회나무 밑동을 기대고 앉아서 담배를 빤다. 냄새가 정말 담배다.
"어디 때리는 법이야 있나.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때리면 구타거든. 황기수가 잘못했더라도 말로 승강이를 하는 게지 손질을 해서 쓰나. 한갑이가 잘못했지."
하고 심판하는 어조다.
"누가 먼저 때렸는데요? 황가 놈이 한갑이를 먼저 때려서 코피가 쏟아지니까 한갑이가 황가 놈의 목덜미를 내리 누르고 두어 번 냅다 질렀지요. 아따, 어떻게 속이 시원한지, 나도 이가 득득 갈리드라니."
하고 약고 약해 보이는 무슨 병이 있는 듯한 청년이 구장의 말에 항의를 한다.
"그래도 손질을 한 것은 잘못이야."
하고 구장은 불쾌한 듯이,
"내가 모르겠나. 이제 한갑이는 몇 해 지고야 마네. 아까도 주재소에 들르니까 소장이 그러데. 공무집행 방해죄와 폭행죄로 한갑이랑 단단히 걸리리라고. 왜 손질을 해! 어디다가 손질을 해, 백성이 관리에게 손질을 하고 무사할 수가 있나.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다들 조심해."
하고 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번 크게 가래침을 뱉고 어디론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아니꼽게시리."
"구장이면 큰 벼슬이나 한 것 같아서."
"되지못하게."
하고 젊은 패들이 구장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 들릴 때가 되어 한마디씩 흉을 본다.
"숭이,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자네야 변호사니까 잘 알지 않겠나. 한갑이랑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죄를 질까."
하고 든덩집 영감님이 묻는다.
"글쎄요,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고 숭은 이러한 경우에 만족한 대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
"그렇지마는 별로 큰 죄 될 것은 없겠지요."
하고 위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