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에서 빈대가 따끔한다.

 

겨드랑에서 벼룩이 스멀거린다.

 

쑥내를 먹고 어지러워 하던 모기들이 앵앵하고 나와 돌아다닌다. 어디를 뜯어먹을까, 벼르고 노린다. 발등이 갑자기 가려워진다.

 

"이놈의 모기가."

 

하고 숭은 손으로 발등을 때렸다.

 

서울 정동 집의 안방에 생초 모기장, 안사랑 침대에는 하얀 서양 모기장이 걸리어 있는 것을 숭은 생각하였다. 모기장이 없기로니 정동에 무슨 모기가 있나.

 

불의에 남편을 잃어버린 정선은 얼마나 애를 태울까-숭은 모기, 빈대, 벼룩, 더위의 총공격을 받으면서 생각하였다.

 

어젯밤에 숭이가 가방을 들고 다시 이 집에를 아니 들어온다고 뛰어나올 때에, 정선은 비록 분김에 제발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말은 했지마는, 그래도 자정을 땅땅 치는 소리를 듣고는 왜 아직도 아니 올까 하고 기다리기를 시작하였다.

 

"영감마님 사랑에 들어오셨나 보아라."

 

하고 정선은 몇번이나 하인에게 물었다.

 

정선은 눈을 감았다가 뜰 때에는 그동안 자기가 잠이 들지 아니하였던 것을 잘 알면서도 혹시나 곁에 숭이 누워 있는가 하고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비인 베개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금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혼인한 지 일년이 가깝도록 한번도 곁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내외다. 정선은 어쩌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에는 벌써 전깃불이 나가고 동창에는 밝은 빛이 비치었다.

 

"영감마님 아니 들어오셨니"?

 

하고 정선은 저도 놀랄 만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 때는 벌써 숭이가 살여울 동네 우물가에 몸이 있을 때였다. 정선은 남편의 베개에 엎드려 울었다.

 

이튿날 정선은 재판소로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

 

"허 변호사 오셨어요"?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다."

 

하는 급사의 대답이 들릴 때에는 정선은 전화기를 내동댕이를 치고 싶었다.

 

지금 살여울서 숭이가 모기와 빈대와 벼룩에게 뜯기어 잠을 이루지 못할 때에도 정선은 서울 집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석왕사로 간 게지"

 

하고 정선은 억지로 안심을 하려 하였다. 계집애에게도 부끄럽고 하인들 보기도 부끄러웠다. 만일 남편이 아주 달아나고 말았다 하면, 무슨 면목으로 행길에를 나서고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할까 하였다.

 

숭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내를 생각하였다. 밉던 점을 다 떼어버리고 생각하면 정선은 아름다운 아내였다. 얼굴도 아름답고 몸도 아름답고 맘도 아름답고 목소리도 아름다왔다. 다만 숭의 뜻을 알아주지 아니하였다. 정선이가 만일 갑진에게 시집을 갔으면 얼마나 좋은 아내가 될까 하고 숭은 여러 번 생각하였다. 정선의 머리속에는 도저히 민족이라든지 인류라든지 하는 생각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오직 제가 있고 남편이 있고 제 집이 있을 뿐인 것 같았다. 세상을 위해서 제 몸을 고생시킨다든가, 제 재산을 희생한다든가 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듯하였다.

 

숭은 이것이 슬펐다. 숭은 정선에게 이 생각을 넣어주려고 퍽 애를 써 보았으나 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숭의 말이나 행동이 정선이가 인식하는 범위, 동정하는 범위를 넘어갈 때에는 정선은 무슨 큰 모욕이나 당하는 듯이 발끈 성을 내어서 숭에게 들이대었다. 그는 남편인 숭을 자기의 범주에 우겨 넣으려는 듯하였다. 사실 숭이가 정선과 같은 범주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숭과 정선과는 화합한 부부가 되어 행복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숭은, 정선의 말법을 빌면 시골 벽창호가 되어서 정선의 주먹에 들지를 아니하였다. 정선의 인생관은 대체로 오랜 세월을 두고 계급적으로 흘러진 것이 아니냐-이렇게 숭은 생각하였다.

숭은 한갑 어머니가 코를 고는 소리를 들었다. 아들을 잡혀 보내고도, 속에 지극한 슬픔을 가졌으련만도 태연한 여유를 보이는 한갑 어머니를 숭은 부럽게 생각하였다.

 

일생에 너무도 슬픔을 많이 경험하여서 감수성이 무딤인가, 인생 만사를 다 팔자로 여겨서 운명에 맡겨버리고 말음인가, 그보다도 기쁨이나 슬픔을 남에게 보이지 아니하려는 조선사람의 성격인가.

 

숭은 문을 열었다. 약간 서늘한 바람과 함께 모기떼가 아우성을 치고 들어왔다. 마치 이 동네에서 보지 못한 인종 숭을 들어내기나 하려는 듯이.

 

숭은 밖에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