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아침 일찌기 읍내로 갔다.

 

읍내는 여기저기 옛날 성이 남아 있었다. 문은 다 헐어버리고 사람들이 돌멩이를 가져가기 어려운 곳에만 옛날 성이 남아 있고 총구멍도 남아 있었다. 이 성은 예로부터 많은 싸움을 겪은 성이었다. 고구려 적에는 수나라와 당나라 군사와도 여러 번 싸움이 있었고, 그 후, 거란, 몽고, 청, 아라사, 홍경래 혁명 등에도 늘 중요한 전장이 되던 곳이다.

 

을지문덕, 양만춘, 선조대왕, 이러한 분들이 다 이 성에 자취를 남겼다. 일청, 일로 전쟁에도 이 성에서 퉁탕거려 지금도 삼사십 년 묵은 나무에도 그 탄환 자국이 흠이 되어서 남아 있는 것을 본다. 마치 조선 민족이 얼마나 외족에게 부대꼈는가를 말하기 위하여 남아 있는 것 같은 성이었다. 

 

읍내 한 오백 호 중에 이백 호 가량은 일본 사람이요, 면장도 일본 사람이었다. 읍내에 들어서면서 제일 높은 등성이에 있는 양철 지붕 한 집이 아사히라는 창루다. 이것은 숭이가 어렸을 적부터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큰 집은 군청, 경찰서, 우편국, 금융조합, 요릿집 등이었다. 보통 조선사람 민가는 태반이 다 초가집이었다. 그래도 전등도 있고 전화도 있고 수도도 공사 중이다. 전화 칠십 개 중에 조선인의 것이 십 칠 개라고 한다.

 

숭은 먼저 경찰서를 찾았다. 옛날 질청이던 것을 고쳐 꾸민 집이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문 앞에 섰는 순사가 숭의 앞을 막고 물었다.

 

"서장을 만나랴오."

 

하고 숭은 우뚝 서며 대답하였다.

 

"서장"?

 

하고 순사는, "이것이 건방지게 서장을 만나려 들어"?하는 듯이 숭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숭에게 서장을 만나지 못할 아무러한 이유도 없다는 듯이 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다시 따라와서 명함을 내라고 하였다.

 

숭은 명함을 내어 주었다. 그것은, <변호사 허숭>이라고 쓴 명함이었다.

 

이 명함은 그 순사에게 적지 아니한 감동을 준 모양이었다. 변호사가 되려면 판검사를 지냈거나 고등문관 시험을 치러야 되는 줄을 아는 그는 숭에게 대하여 다소의 존경을 깨달았다.

 

"잠깐 기다리시오."

 

하고 그 순사는 서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리 들어오시오."

 

할 때에는 그 순사는 약간 고개까지도 숙였다.

 

서장은 앉은 채로 고개를 숙여 숭의 인사를 받고 의자를 권하였다.

 

"언제 내려오셨습니까"?

 

하고 뚱뚱한 서장은 숭에게 물었다.

 

"이삼 일 되었소이다-나도 여기가 고향입니다."

 

하고 숭은 말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였다.

 

"아, 그렇습니까. 대단히 출세하셨습니다그려."

 

하고 서장은 이 골 태생으로 변호사까지 된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놀라는 빛을 보이고,

 

"학교는? 어디 내지서 대학을 마치셨나요? 동경? 경도"?

 

하고 친밀한 어조를 보였다.

 

"학교는 보성전문이외다."

 

하고 숭은 서장의 표정을 엿보았다.

 

"보성전문"?

 

하고 서장은 한번 놀라는 빛을 보였다. 그러나 그 끝에는 시들하다는 빛이 따랐다.

 

"퍽 젊으신데…어쨌든지 장하시오."

 

하고 서장은 내 관내 백성이라는 의식으로 칭찬하였다. 서장은 아부라는 경부였다.

 

서장은 사환을 불러 차를 가져오라고 분부하고,

 

"그래 어째 이렇게"?

 

하고 부채를 부치며 일을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시탄리(살여울) 농민 사건에 대하여 서장께 청할 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하고 숭은 말을 꺼냈다.

 

서장은 안경 위로 물끄러미 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답은 없었다.

 

"시탄리는 내 고향이외다. 이번 오래간만에 고향에 오던 날에 바로 그 일이 생겼는데, 여기 잡혀 온 사람들은 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외다. 평소에 양같이 순한 사람들이외다."

 

하고 말할 때에 서장은 픽 웃으며,

 

"양? 도우모 아바레루 히쓰지 데쓰나(거 어지간히 왈패 양들인걸)."

 

하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