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별로 무안해 하지도 아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숭은 진찰실(診察室)이라고 써 붙인 방을 들여다보았다. 거기는 빈 의자와 테이블이 있을 뿐이었다.

 

"의사 계시다오"?

 

하고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가 숭에게 묻는다.

 

"당신은 언제 오셨소"?

 

하고 숭이 물었다.

 

"우리는 온 지가 보리밥 한 솥 질 때나 되었는데,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이 대답도 아니합니다."

 

하고 부스럼에 붙은 파리를 날린다.

 

"되물어 대답을 아니해요. 우리네같이 촌에서 온 사람이야 성명 있나요"?

 

하고 농부는 분개한다.

 

"우리 온 댐에도 몇 사람이 댕겨 갔게."

 

하고 안질난 부인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애를 쓴다.

 

"돈이 없는 줄 알고 그러지마는 나도 이렇게 돈을 가지고 왔다오."

 

하고 농부는 꼬깃꼬깃한 일원박이 지전을 펴 보인다. 그는 그 지전을 손에다가 꼭 쥐고 있다.

 

의사가 슬리퍼를 끌고 나와서 숭을 보고 의복과 태도에 놀란 듯이,

 

"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경의를 표한다. 그는 가무스름한 얼굴에 콧수염이 나고 금테 안경을 코 허리에 걸어서 보기는 안경으로 안보고 안경 위로 본다. 지금 술과 고기를 먹다가 나오는지 얼굴이 붉고 길다란 금 많이 박은 잇새를 쭉쭉 빨고 있다.

 

"선생님이세요"?

 

하고 숭은 고개를 숙였다.

 

"예, 제가 이 ○○올시다."

 

하고 의사도 답례를 한다.

 

깔깔대고 저쪽 복도로 가던 여자가 와서 의사와 숭을 번갈아 보더니,

 

"황 주사 안 가셨지"?

 

하고 의사에게 추파를 보낸다.

 

의사는 눈을 끔적해서 그 여자를 책망한다.

 

"글쎄, 황 주사가 옆구리를 이 주일이나 치료해야 된다는 양반이 술이 글쎄 무슨 술야"?

 

하고 그 여자가 깔깔대고 웃는다.

 

"병원에서 먹는 술은 약이 되지."

 

하고 의사는 참다 못해서 그 여자의 농담에 끌려 들어가고 만다.

 

"비켜요! 나 황 주사 좀 놀려먹게."

 

하고 여자는 의사의 와이샤쓰 입은 팔을 꼬집고 떼밀고 진찰소 다음 방으로 들어간다.

 

"요년! 어디 가서 또 서방을 맞고 왔어"?

 

하는 남자의 소리가 들린다.

 

"여보, 서방은 그렇게 일분도 못 되게 맞는답디까."

 

하고 깔깔댄다.

 

"그럼. 오, 이년, 너는 서방을 맞으면 밤새도록 맞니"?

 

하는 남자의 소리가 또 들린다.

 

"이년은 누구더러 이년이래, 아야, 아파! 황 주사도 계집이라면 퍽 바치는구려. 그러하길래 벼 모내는, 땀내 나는 계집애를 다 건드리려다가 무지렁이들한테 경을 쳤지. 에, 더럽다! 여보, 비켜라! 아야 아야, 남의 사타구니를 왜 꼬집어. 숭해라!"

 

하고 어디를 때리는 듯한 철썩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야, 요것이 사람을 치네."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다.

 

"치면 어때, 맞을 일을 하니깐 맞지. 하하하하."

 

"아, 요런 맹랑한 년이 안 있나"?

 

"맹랑함 어때, 또 이 의사더러 진단서 내달래서, 이번엔 한 삼 년간 치료를 요함 하고 고소를 해 보구려."

 

하는 여자의 종알대는 소리.

 

"그렇게만 해? 이리 와, 입 한번 맞추자."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

 

"싫소, 그 시골 모내는 계집애 입 맞추던 입에서는 똥거름 냄새가 난단다."

 

하는 것은 여자의 소리.

 

"얘, 입 한번도 못 맞추고 봉변만 했다마는 이쁘기는 이쁘더라, 네 따위는 명함도 못 들어. 내 언제라도 고것을 한번 손에 넣고야 말걸."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

 

"흥, 잘 손에 들어오겠소. 이제 고소까지 해 놓고, 괜히 칼 맞으리다, 그 동네 사람들한테."

 

하는 것은 여자의 소리.

 

이러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 의사는 대단히 맘이 조급한 듯이 연해 뒤를 돌아보며,

 

"왜들 이리 떠들어"? 하였다.

 

그러나 숭은 아무쪼록 의사를 오래 붙들었다.

 

그것은 의외의 소득이 있는 까닭이었다.

 

"환자는 누구세요"?

 

하고 이 의사는 숭을 바라본다.

 

"환자가 한 칠팔 명 되는데요. 모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선생의 왕진을 청하러 왔습니다. 바쁘시겠지마는 좀 같이 가시지요."

 

하고 숭은 이 의사의 맘을 떠 보았다.

 

환자가 불쌍한 사람들이란 말에, 이 의사 눈에는 지금까지 보이던 존경의 빛은 싹 없어지고 조소하는 빛이 보였다.

 

"왕진은 일체 선금입니다. 아시겠지요."

 

하고 이 의사의 말은 빳빳하였다.

 

"선금이요"?

 

하고 숭도 분개하여,

 

"선금이라면 선금 내지요. 왕진료는 얼마 받으시나요"?

 

하고 물었다.

 

"매 십 리에 오원이지요. 차비는 환자가 부담하고, 자동차가 통하지 못하는 곳이면 갑절 받지요."

 

이 때에도 진찰실 다음 방에는 황기수하고 기생하고 가닥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돈을 많이 내고도 왕진을 청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허숭은 공격하는 어조로 물었다.

 

"왕진료 안 받고 왕진 가는 의사는 어디 있습니까"?

 

하고 이 의사도 곧 대항한다.

 

"그러면 가난한 농민들이 병이 나면 어떡허나요? 급한 병이 나도 안 가 보아 주십니까? 와서 청해도 안 가십니까"?

 

하고 숭은 이 의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거 할 수 없지요. 나는 자선 사업으로 병원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원래 촌 사람들의 병은 그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합니다. 촌 사람들이란 진찰료 약값 낼 줄도 모르고 도무지 인사를 모르고. 한약첩이나 사다 먹으라지요. 돈도 없는 것들이 의사는 왜 청해요? 건방지게."

 

이 의사는 아주 전투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