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은 고개를 수그리고 섰을 뿐이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순은 숭의 말이 무슨 말인지를 짐작하였다. 그러나 숭은 벌써 아내 있는 사람이 아니냐 하고 생각하면 의아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숭은 순의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 온지 아시오"?
하고 다시 물었다.
"제가 압니까. 아마 우리 동네 사람들 때문에 오신 게지요."
하고 발자취에 놀라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순의 집 개가 자다가 깨어서 순을 찾아 나오는 것이었다. 그 개는 낯선 숭을 보고 두어 마디 짖다가 순이 한번 손을 들매, 짖기를 그치고 순의 치맛자락에 코를 비빈다. 그것은 얼굴이 길고 눈이 크고 순하게 생긴 조선식 개였다.
"네,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왔다면 왔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순씨가 없으면 나는 여기 오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저 집을 지으면 무얼합니까."
하고 숭은 있는 속을 다 털어놓았다.
"부인께서 오시겠지요. 그리고 댁에서 삯 주고 시키실 일이 있으면 가서 해 드리지요."
하고 순은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개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버리고 만다.
숭은 비통한 생각을 가지고 일터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흥이 나서,
"아하 아허 당달구야!"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숭의 귀에는 그 소리가 잘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마치 귀도 막히고 눈도 막히고 오관이 다 막힌 듯하였다. 머리속도 가슴속도 꽉 막힌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자기를 위하여 힘써 주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아니 보이려고 쾌활한 태도를 강작(强作)하였다.
하루 이틀 지남을 따라서 주춧돌이 놓이고 기둥이 서고 보가 오르고 서까래가 걸렸다. 가늘고 둥근 나무를 그대로 재목으로 쓰는 일이라 치목에도 품이 안 들고, 흙이 붙고 영을 올리는 일이라 지붕이 되는 것도 쉬웠다. 방도 놓이고 마루도 깔렸다. 치석할 필요도 없이 산에서 메주덩어리 같은 돌을 주워다가 축대를 쌓으니 그것은 하루 안에 다 되어버렸다. 문, 미닫이는 장에서 미리 사다가 그것을 겨냥해서 문얼굴을 들였다. 뒷간은 바자를 두르고 봇돌 두 개를 놓으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동네로 통하는 길과 강으로 내려가는 길도 순식간에 되었다. 도배, 장판도 이틀에 끝났다. 집터를 다진 지 보름이 다 못 되어서 집은 완성되었다. 담까지도 둘렀다. 담은 길다란 싸리와 참나무 가지로 돗자리 겯듯 결은 것이었다. 이런 것은 저녁 먹은 뒤에 담배 두어 대 태우는 동안을 이용해서 사흘에 다 완성하였다. 우물까지도 하나 팠다. 집은 방 둘, 마루 하나, 부엌 하나, 광 하나, 장독대, 우물, 담, 마당, 뒤꼍, 널찍널찍하게 훤칠하게 해 놓고 돈든 것이 모두 이백 원이 못 되었다.
"선화당 같다."
하고 새로 지어진 집을 보는 사람들은 이 집이 깨끗함을 칭찬하고 부러워하였다.
숭은 트렁크에 빈대 묻은 것을 말끔 잡아가지고 칠월 그믐날 새 집으로 떠나 왔다. 마루에서는 나무 냄새가 나고 방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동네 사람들이 다 돌아간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숭은 혼자 방에 앉아서 망연히 지나간 일, 올 일을 생각하였다. 생각이 벌레 소리에 끊기우고 벌레 소리는 생각에 끊기웠다. 부모를 잃고 집을 잃은 지 오년 만에 제 손으로 돈을 벌어 제 집을 짓고 들어앉은 것이 대견도 하였다.
그러나 혼인한 지 일년도 다 못 되어 파탄이 생기고, 사랑하여서는 아니될 여자를 사랑하여 가슴을 태우는 자기가 밉기도 하였다. 외람되이 힘에 부치는 일(농민운동)을 시작하여 몸과 맘이 어느새에 피곤한 것을 느낌이 막막도 하였다. 벌레 소리는 빗소리 같고, 어지러운 생각은 벌레 소리와 같았다. 숭은 앉으락누우락, 들락날락하며 첫밤을 새웠다. 그것이 숭의 일생의 모형인 것만 같았다.
숭은 집을 짓기에, 동네 사람들의 병을 구완하기에, 서울에 두고 온 아내에 대한 뉘우침, 유순에게 대한 새 사랑의 괴로움, 아직 자리 잡히지 아니한 생활과 사업에 대한 불안과 초조, 동네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더러는 비웃음과 악의로 자기를 훼방하고 방해함에 대한 분한 마음, 이런 시름, 저런 근심으로 몸과 마음이 심히 가빴다. 몸이 노곤하고 눕고는 싶으면서도 누우면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이따금 자기의 결심에 대하여 의심까지도 생겼다. 그러나 숭은 이 모든것을 의지력으로 눌렀다. 한 선생을 생각하고 참았다.
동네 사람들의 병도 한 사람만 죽이고는 다 나았다. 뼈와 껍질만 남은 병자들이 귀신같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의사는 약속대로 사흘에 한번씩 한 일 주일 동안 와서 치료해 주었다. 이 의사가 이 동네에 부지런히 오는데는 순을 보고 싶은 맘이 반 이상은 되었다. 그는 병을 다 보고 나서도 동네로 휘휘 돌아다니며 어떻게 해서든지 순을 한번 보고야 돌아갔다.
그러나 그 동안에 숭은 장질부사 치료하는 법을 대강 배웠다. 해열제를 써서 안되는 것, 땀을 내려고 애쓰는 것, 약이라고는 소화제와 강심제와 지갈하는 것을 먹일 뿐인 것, 오줌 똥을 잘 소독해야 하는 것, 미음과 비타민을 먹여야 되는 것, 장출혈을 주의해야 되는 것, 안정해야 되는 것, 위험이 어디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대강은 배웠고, 관장하는 것, 피하주사 놓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간호부가 가질 만한 지식은 가지게 되었다.
병자의 집에서는 밤중에라도 겁이 나면 숭에게 뛰어 왔다. 그러면 숭은 집에 준비해 두었던 약품과 기구를 가지고 달려갔다. 병이 위태한 경우에는 숭은 병자의 곁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가끔 있었다. 이런 일이 숭의 건강을 많이 해하였다.
다른 병자들이 거의 다 완쾌할 때가 되어서 순의 고모(과부로 와 있는 이가)가 발병하였다. 한참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신열이 높았다.
숭의 소견에 그것도 티푸스였다.
유 초시는 자기 손으로 처방을 내어서 한약을 몇첩 지어다 먹였으나 물론 효과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유 초시 자신도 열이 나서 머리를 동이고 드러눕게 되었다. 이 때 전후하여 난봉으로 돌아다니던 순의 오라버니가 읍내에서 황기수를 때리고 잡혀서 갇히었다. 황기수를 때린 것은 물론 그 누이에게 한 폭행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러한 소식이 유 초시의 맘을 더욱 불편하게 하였다. 유 초시는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앓는다 칭하고 오지 아니하였다. 이 며느리는 남편에게는 소박을 맞고 시집에 먹을 것은 없고 한 데 화를 내어서 먹기는 넉넉한 친정으로 달아나 버린 지가 반년이나 되어도 시집에는 발길도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