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숭은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에게 돈 육원을 주어 수술을 받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였다.
농부는,
"이것을 이렇게 받아서 되겠습니까."
하고 눈에 가득 감사한 빛을 띠우고 그 돈을 받았다.
농부는 돈을 받아 들고는 쓰기가 아까운 듯이 한참이나 보고 섰더니 고름 흐르는 다리를 끌고 절뚝거리며 어디로 가버린다. 손에 육원이나 되는 큰 돈을 들고(일 년에 한번도 쥐어 볼까말까한)는 차마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 돈 중에서 조고약이나 사가지고 집으로 가려고 한 모양이다-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눈이 뜨거워짐을 깨달았다.
숭은 빈대약, 모기장감, 석유유제, 기타 소독 약품들을 사 가지고, 자동차를 얻어 가지고 한 삼십 분 후에 이 의사의 병원으로 돌아왔다.
이 의사는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자동차에 올랐다. 숭은 간호부의 손에서 의사의 가방을 받아서 자기가 들고 차에 올랐다.
살여울 동리에 오기까지 두 사람은 한마디도 말을 아니하였다. 숭의 속에는 오늘 경찰서와 병원에서 보던 일을 생각하고, 의사는 숭이 때문에 불쾌하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너미에서 자동차를 내려 두어 시간 뒤에 맞으러 오기를 명하고, 이 의사는 잠깐 주재소에 들러 무슨 이야기를 하고는 숭을 따라 살여울 동리로 들어갔다.
우물 가에서는 또 유순을 만났다. 유순은 낮물을 길러 왔던 것이다. 숭은 오던 날 아침에 유순을 만나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순은 숭과 의사를 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의사도 유순에게 눈이 끌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숭과 동행하는 것도 잊어버린 듯이 순을 바라보았다. 순은 또아리를 인 채로 사내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문제의 여자지요."
하고 숭은 웃으면서 의사를 돌아보았다.
"네"?
하고 의사는 순에게 마음을 빼앗겨 숭의 말을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여자 때문에 황기수 문제가 났단 말씀이야요."
하고 숭은 이 의사의 안경 뒤에 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네에"?
하고 의사는 어떻게 대답할 바를 몰랐다.
"황기수가 저 여자의 손을 잡는 것을 저 여자가 뿌리치니까 황기수가 저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 이 사건의 시초지요."
"네에."
하고 의사도 할 수 없이 웃었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황기수와 기생과 하던 말을 이 사람이 들은 것을 생각할 때에 의사는 등골에서 찬 땀이 흘렀다.
이 자리에서야 비로소 두 사람은 명함을 바꾸었다. 이 의사는 이 사람이 변호사 허숭인 줄을 알 때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도록 놀랐다. 놀랄 뿐 아니라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변호사 허숭에 관한 말은 신문에서 보았고 말로도 들었다.
"네, 그러세요? 허 변호사세요"?
하고 겨우 놀람을 진정하였다. 그리고는 이 의사의 허숭에게 대한 태도는 갑자기 변하여서 친절을 지나 겸손에 가까왔다.
이 의사는 숭과 같이 온 동리 병자의 집을 돌아보고 농담을 할 지경까지 친하였다.
"치료비는 내가 다 담당할 테니 어떻게 좋게 해 주세요."
하고 숭은 진찰이 끝난 뒤에 강가 정자나무 밑에서 쉬며 이 의사에게 말하였다.
"내 힘껏은 하지요. 이 동리가 경치가 좋은데요."
하고 이 의사는 강을 바라보았다.
숭은 강을 바라보는 곳에 집터를 하나 잡고 초가집 한 채를 짓기로 작정하고 곧 동네에 일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공사를 시작하였다. 임금은 하루에 일원. 그것은 숭이가 자신으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이 회의를 열고 논의한 임금 팔십 전에 숭이가 이십 전을 더하여서 일원으로 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즐겁게 일을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 제일 집 짓는데 경험 있는 노인이 자청해서, 자청이라는 것보다도 자연히 공사 감독이 되었다.
집터는 처음에는 강가 높은 곳, 정자나무 밑으로 하려고 하였으나, 온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쉬는 터를 삼는 곳을 독점하기가 미안해서 그것은 사양하고 동네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등성이 동남쪽에 터를 잡기로 하였다. 여기서 보면 달내강 한 굽이가 바로 문 앞에 놓이고 그것을 주움 차서 동으로 달냇벌을 바라보게 되었고, 달냇벌을 건너서 흰 하늘이 고개, 시루봉 등의 산을 바라보게 되었다.
집터에서 강까지는 이십 미터나 될까, 비스듬하게 언덕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동네 노인들은, 이것은 정자터는 되나 살림집터는 되지 못한다고 반대하였으나 숭은 이것만은 고집하였다.
그리고 숭은 파리잡는 약과 빈대, 벼룩잡는 약과 파리채를 집집에 돌리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손수 두엄 구덩이라고 일컫는 구더기 끓는 곳에 구더기 죽이는 약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