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집의공 제사(유초시가 가장 존경하는 조부의 기일)는 유 초시 집에서는 가장 중대한 일이었다. 집의공 제사날에도 며느리가 아니 온다고 유 초시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었다. 이 때에는 유 초시는 반드시 광 속에 몰래 술 한 항아리를 빚었다. 집의공 제사에 사온 술을 써서 쓰느냐 하는 고집에서였다. 유 초시는 열 있는 몸을 가지고 일어나서 술 항아리를 꺼내어 손수 청주를 떠서 제주를 봉하고, 순을 지휘하여 제물을 차리게 하였다. 유 초시의 눈은 붉고 몸은 가누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유 초시는 허둥허둥하는 걸음으로 아랫방에 내려가 앓는 누이동생을 들여다보았다.
"웬만하면 좀 일어나 보려므나. 순이년이 무얼 할 줄 아니." 하였다.
이것은 억지였다. 그러나 조부의 제사에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도 좋았다-유 초시의 생각에는.
숭이가 저녁을 먹고 유 초시네 집에 문병을 왔을 때에는 유 초시는 소세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망건을 쓰고 앉았고, 순도 새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웬일이세요. 어쩌자고 일어나십니까."
하고 숭은 유 초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늘이 집의공 기일이야."
하고 유 초시는 행전을 치고 떨리는 손으로 끈을 매고 있었다.
숭은 유 초시의 손을 쥐어 보고 맥을 짚어 보았다. 노인의 맥이건마는 세기가 어려울 만큼 빨랐다.
"이렇게 밤바람을 쐬고 몸을 움직이시면 병환이 더하십니다. 좀 누워 계시지요."
하고 숭은 앞에 꿇어앉아서 간절히 권하였다.
"어, 그럴 수가 있나. 내 집에서는 제사날 눕는 법이 없어.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몰라도, 내 정신이 있으면서 제사를 아니 지내어."
숭은 유 초시의 지극한 정성과 꿋꿋한 의지력에 눌려 더 말할 용기가 없었다.
"에그, 아주머니가 왜 나오시어"?
하는 유순의 소리에 숭은 앞뜰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틀거리는 순의 고모의 모양을 보았다. 숭은 그가 삼십 구 도 이상의 열을 가진 줄을 잘 안다.
그 부인은 부엌을 향하고 서너 걸음 비틀거리다가 순의 어깨에 매달려 쓰러졌다.
"응, 젊은 것이."
하고 유 초시는 창으로 내다보며 혀를 찼다.
숭은 뛰어 내려가 병자를 붙들어서 아랫방으로 인도하였다.
"제사를 차려야 할 텐데."
하고 병자는 기운없이 숭에게 몸을 던져버렸다. 그는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숭은 병자를 번쩍 들어서 누웠던 자리에 뉘었다. 그의 몸은 불이었다.
"냉수하고 수건하고."
하고 숭은 순에게 명령하였다.
"대단한가"?
하고 유 초시가 마루 끝에서 외쳤다.
"대단하십니다."
하고 숭이 대답하였다.
"그렇거든 누워 있거라. 순이더러 다 하라지."
하고 유 초시는 가래를 뱉었다.
"이거 큰일났소."
하고 물과 수건을 가지고 온 순에게 숭은,
"아버지도 대단하시오. 이거 큰일났소."
하고 말하였다.
"어떻게 해요"?
하고 순은 울음이 터졌다.
"일가 댁에서 누구를 한 분 오시라지요."
하는 것은 숭의 말.
"누가 오나요"?
하고 순은 억지로 울음을 삼켜버리고 부엌으로 간다.
순의 고모는 헛소리를 하고 앓는 소리를 하였다.
"나도 같이 가요. 나는 싫어요!"
이런 소리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