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마는 환자가 청하면 진찰을 거절할 수는 없을 걸요, 의사법에 있으니까. 나는 선생께서 거절을 하시려고 하더라도 진찰료 선금 안 내고 왕진을 청하려고 합니다. 환자가 한 사람뿐 아니라, 칠팔 명, 근 십 명 되니까요. 환자들 중에는 중병 환자도 있으니까 곧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동차는 내가 불러 오지요."
하고 숭은 명령적으로 말을 끊었다.
이 의사는 다른 정신으로 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분이 대올라옴을 깨달았다. 술 기운도 오르기 시작하였다.
"웬 말씀이요. 노형이 이를테면 누구와 트집을 잡으러 온 심이요, 어떤 말이요.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싫으면 안 가는 게지. 노형이 무엇이길래 날더러 가자 말자 한단 말이요. 온 별일을 다 보겠네. 그래 내가 안 간다면 어떡헐 테요"?
하고 이 의사는 휙 돌아서려 한다.
숭은 이 의사의 팔을 붙들며,
"나는 급한 환자를 위하여 의사를 청하러 온 사람이요. 만일 선생이 가기를 거절한다면 나는 부득이 경찰의 힘을 빌 수밖에 없겠소."
하고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앉았는 눈 앓는 노파와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와 머리 헌 아이를 가리키며,
"저들이 수십 리 밖에서 선생을 찾아 온 지가 오래다고 하니 저들 병을 얼른 보아 주시고, 그 동안에 내가 자동차를 부를 테니 나하고 같이 가실 준비를 하시지요."
하고 숭은 어조를 좀 부드럽게 하여 타이르는 듯이 말하였다.
큰 소리가 왔다갔다하는 것을 듣고 간호부, 황기수, 기생도 나오고 수부에 앉아서 냉면 먹던 말라깽이 친구도 나와서 의심스러운 듯이 염려되는 듯이, 이 의사와 허숭을 번갈아 보았다.
숭은 황기수라는 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 검은 얼굴, 찌그러진 머리, 교양 없는 얼굴에도 교활한 빛을 띤 것, 게다가 눈초리 가늘게 처진 것이 색욕이 많고 도덕심이 적은 것이 보였다.
이 의사는 숭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는 것보다도 법률에 맞는 숭의 말에, 또 아무리 보아도 시골뜨기 같지는 아니한 숭의 모양에 겁이 나서 간호부를 보고,
"저 환자들 무슨 병으로 왔나 물어 보고, 차례차례 진찰실로 불러 들여."
하고 명령을 내리고, 자기는 숭에게는 인사도 아니하고 진찰실로 들어간다.
황기수와 기생은 일이 심상지 아니한 줄을 눈치채고 숭을 힐끗힐끗 돌아보며 방으로 들어간다.
간호부는 환자들을 향하여 퉁명스럽게 몇 마디의 말을 묻고는,
"누가 먼저 왔소"?
하고 차례를 묻는다.
"이 아주머니 먼저 보시죠."
하고 농부가 안질난 부인에게 차례를 사양한다.
"아이그, 내가 나중 왔는데. 어서 가 보슈."
하고 늙은 부인이 사양한다.
"누구든지 어서 와요."
하고 간호부가 화를 낸다.
"그럼 내가 먼저 봅니다."
하고 농부가 아픈 다리를 끌고 진찰실로 들어간다.
간호부는 의사에게 수술복을 입히고 등 뒤에 끈을 매어 주었다.
"왜 이렇게 되었어."
하고 의사는 농부의 고름 흐르는 다리 부스럼을 들여다 본다.
"모기가 물었는지 가렵길래 긁었더니 뻘개지면서 그렇게 되었어요. 좋다는 약은 다 발라 보아도 도무지 낫지 아니해요."
하고 농부는 애원하는 소리를 한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도 못 들었어? 긁기는 왜 해"?
하고 의사는 부스럼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마구 눌러 본다.
"아야 아야!"
하고 농부는 소리를 지른다.
"커다란 사람이 아야는 다 뭐야"?
하고 의사는 더 꾹꾹 눌러 본다.
"째지 않고는 안 나아요"?
하고 농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안 째고 날 수 있나."
하고 의사는 숭 때문에 난 화풀이를 농부 환자에게 하고 앉았다.
"조금 스치기만 해두 아픈데."
하고 농부는,
"아니 아픈 주사가 있다는데 그것이나 놓아 주세요."
"주사 한 대에 이원인걸. 돈 얼마나 가지고 왔어"?
하고 의사는 흥정을 시작한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이것만 가지고 왔습니다. 추수만 하면야 모자라는 것은 그때에 드리지요."
하고 손에 꼭 말아 쥐었던 일원박이 조선은행권을 이 의사의 눈 앞에 내어 보인다.
이 의사는 그 돈을 받아 간호부의 손에 쥐어 주고,
"돈 일원 가지고 무슨 주사를 해 달래? 진찰료밖에 안되는 걸 째기만 해도 수술비가 삼원야."
농부는 수술비 삼원, 주사료 이원이란 말에 눈이 둥그레진다.
<벼 한 섬>하는 생각이 번쩍 머리속에 지나간다.그렇지마는 이 다리를 아니 고치고는 농사를 할 수가 있나,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일원만 내께 그럼 수술을 해 주세요. 수술비는 추수 때에 드리께요."
하고 농부는 겨우 결심을 한다.
"수술은 내일 해도 괜찮으니, 수술비만이라도 변통해 가지고 오지."
하고 의사는 일어나 소독물 대야에 손을 씻는다.
"다른 환자 불러. 돈 가지고 왔느냐고 묻고. 안 가지고 왔거든 내일 오라고."
하고 이 의사는 황기수 방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