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더 논쟁할 필요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숭은 자기가 서장을 찾아 본 것이 전연 실패라고 생각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첫째 서장이 비록 자기 말을 안 듣는 체하였다 하더라도 자기가 말한 사건의 진상이 서장의 기억에는 남아 있을 것이요, 둘째로는 자기가 장차 그들을 위해서 법정에 설 때에 변론에 쓸 유력한 재료를 얻은 것이다. 그것은 서장과 부장과의 문답에서 황기수의 고소와 증언의 내용을 짐작하게 된 것이었다.

 

서장과 부장의 말을 종합하면 황기수의 주장은, 자기는 농업기수로 공무를 행하기 위하여 정조식을 권장할 때에 맹한갑을 주모자로 한 농민 팔 명의 일단이 공산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자기에게 반항하고 마침내 맹한갑을 선두로 자기를 모욕하고 구타하였다 하는 것이요, 이에 대하여 신 참사는 황기수의 편을 들어서 증언하였고, 의사 공의는 황기수가 이 주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타박상을 받았다고 증명하였고, 이에 대하여 경찰서의 심증은 농민의 반항이라면 의례히 공산주의적, 또 농민의 말과 관리의 말이 있으면 둘째 것을 믿을 것, 이런 모양이라고 숭은 판단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공식적이었다. 숭은 경찰서에서 나와서 공의의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객사(지금은 보통학교) 울퉁불퉁한 넓은 마당(장보는 데) 한편 끝 남문으로 통하는 홍예 튼 돌다리 못 미쳐서였다. 본래는 조선집인 것을 일본식인지 양식인지 비빔밥으로 고쳐 꾸민 집인데, ○○의원이라는 간판이 붙고 또 일본 적십자사 사원 ○○의학사 이 ○○이라는 문패가 붙었다.

 

문안에 들어서니 고무신과 구두가 놓이고 대합실(待合室)이라고 패가 붙은 구석(방이 아니다)에는 안질난 부인과 머리 헌 사내와 다리에 고름 흐르는 농부 하나가 앉았다. 웬 기생인가 갈보인가 한 남 보이루 치마 입고 머리 기름발라 쪽진 여자 하나가 왼편 손 둘째 손가락과 장손가락 새에 연기 나는 궐련을 끼우고 깔깔대고 엉덩이를 휘젓고 나온다. 그것은 보통 환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수부(受付) 약국(藥局)이라고 쓴 구멍을 들여다보니 나이 사십이나 되었을 듯한 궁상스러운 여윈 남자가 오이채 쳐 친 냉면을 먹고 앉았다.

 

"선생님 계시오"?

 

하는 숭의 말에 그 남자는 냉면을 입에 문 채로 눈을 돌리며,

 

"병 보러 오셨소"?

 

하고 묻는다.

 

"네, 병자가 있어서 선생님을 좀 뵈이러 왔소이다."

 

"병자 데리고 오셨소"?

 

하고 그 작자는 냉면 그릇을 놓고 병자 구경을 하려는 듯이 구멍으로 고개를 내어민다.

 

"왕진을 청하러 왔소이다."

 

하고 숭은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수부와 약국을 겸한 이 방은 한 간이 될락말락, 약병이 몇 개 있고 녹쓴 저울이 놓였다. 더울 듯한 방이다.

 

"무슨 병이오"?

 

하고 또 묻는다.

 

숭은,

 

"당신이 의사요"?

 

하고 좀 성을 내었다.

 

"어디서 오셨소."

 

하고 또 묻는다.

 

"어서 선생님을 보게 하시오."

 

하고 숭은 호령조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