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동네 인심이 어떻게 효박해졌는지 염병을 앓는 집과는 이웃과 일가도 수화를 불통하였다. 게다가 경찰이 교통차단을 명한다는 것이 박정한 현대 사람들에게 좋은 핑계를 주었다. 숭은 유 초시 집에서 나와서 한갑 어머니를 데리고 다시 유 초시 집으로 왔다. 한갑 어머니는 그 동안 간호부 모양으로 염병 앓는 집을 다니면서 미음도 쑤어 주고 빨래도 해 주고 부인네의 오줌 똥도 받아 주었다. 숭은 한갑 어머니로 하여금 순의 고모 간호를 하게 하였다.
유 초시는 기어이 제사 때까지 꿇어앉았다가 합문까지 하였다. 그러나 합문을 하고 뜰에 내려서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정신을 잃었다.
유 초시를 방으로 들어다 뉘이고 제사의 남은 절차는 숭이가 대신하였다.
유 초시는 의식은 회복하였으나 병이 대단히 중하였다. 제사를 지내느라고 억지로 몸을 가진 것이 대단히 나빴다. 유 초시의 과수 누이는 영 정신을 못 차렸다.
날이 훤하게 밝자, 숭은 동네 사람을 시켜 읍내에 이 의사를 청하였다. 오정 때나 되어서 이 의사가 왔다. 이 의사는 숭에 대하여 두 사람의 증상이 다 험악하다는 것을 말하고 특히 순의 고모가 더욱 중태라는 것을 말하였다.
유 초시는 이 의사더러,
"죽지나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염려 없으십니다."
하고 이 의사는 환자에게 대한 의사의 으례 하는 대답을 하였다.
"아니, 내야 늙은 것이 죽으면 어떻소마는 내 누이는 대단치는 않사오니까"?
하고 병중에도 점잖은 사람이라는 체면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좀 중하신 모양입니다마는 설마 어떨라구요."
하고 이 의사는 친절하게 위로하였다.
"어떻게 좀 죽지 않게 해 주시오."
하고 유 초시는 힘이 드는 듯이,
"나도 죽고 저도 죽으면, 자식놈은 감옥에 가고 저 어린 것을, 저 어린 딸년을 뉘게 부탁한단 말이오? 집이 가난해서 보수를 드릴 것도 없지마는, 어떻게 이 선생께서 내 누이만이라도 살려 주시오."
하고 유 초시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내 힘이 미치는 데까지는 하지요."
하고 이 의사는 연해 눈을 마당으로 향하여 무엇을 찾았다. 그것은 물을 것 없이 순의 모양을 찾는 것이었다.
유 초시는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더니 고개를 약간 창으로 돌리며,
"순아, 아가, 순아."
하고 불렀다. 그것은 속으로 잡아당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아랫방에 있는 순에게 들릴 것 같지 아니하였다.
그래도 순은 아버지의 부르는 소리를 알아듣고,
"네에."
하고 뛰어나와서 창밖에 서서,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하고 고개를 숙였다.
순의 얼굴에는 잠 못 자고 피곤한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더 어여뻤다.
"그 술, 제주 남은 것, 따뜻하게 데어다가 이 손님 드려. 앓는 집에서 음식을 잡숫기가 싫으시겠지마는 술이야 어떠오. 안주는 과일이나 놓고 다른 것은 놓지 말아, 익은 음식은 놓지 말아. 익은 음식은 앓는 집에서는 손님께 아니 드리는 법이야. 알아들었냐"?
순은,
"네에."
하고 공손하게 대답하고 물러갔다. 이 의사의 눈은 순의 몸을 따라 광으로, 마당으로, 부엌으로 굴렀다. 그리고 오분이나 지났을까, 순이가 술상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염치도 없이 뚫어지게 보았다. 금니 많이 박은 이 의사의 입은 벌어졌다.
순은 술상을 웃목에 앉은 이 의사와 숭의 새에 놓고 아버지가 덮은 이불을 바로잡고 치맛자락이 펄렁거리지 않도록 모아 쥐고 나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