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 마침내 장질부사에 붙들린 것이었다. 아침에는 조금 정신이 나고, 저녁에는 헛소리를 하였다. 팔다리가 쑤신다는 헛소리를 할 때에는 한갑 어머니와 순이가 번갈아서 주무르고, 머리가 깨어진다는 헛소리를 할 때에는 한갑 어머니와 순은 번을 갈아가며 수건을 축여서 머리를 식혀 주었다.
한갑 어머니와 순은 어머니와 누이동생 모양으로 번갈아서 자고 간호하였다.
어떤 때에는 흔히 새벽 두시나 세시가 되어서 숭이 눈을 뜨면 앞에 한갑 어머니가 앉았기도 하고 순이가 앉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는 까맣게 탄 숭의 입술에다가 숟가락으로 물을 흘려 넣었다.
순은 숭이가 이 동네 사람을 위하여, 나중에는 자기의 아버지와 고모를 위하여 제 몸을 잊고 애를 쓰다가 이렇게 병이 들린 줄을 잘 안다.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와 고모 때문에 여러 날을 잠을 못 자고 피곤한 끝에 성치 못한 몸을 가지고 재판소에 가서 삼사 일이나 고생하다가 온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순은 자기의 생명을 끊어서라도 숭의 생명을 붙잡아야 할 의무를 느꼈다.
숭의 병은 열흘이 되어도, 보름이 되어도 낫지를 아니하였다.
이 때에 정선은 남편을 잃어버리고 혼자 화를 내어 집에서 울기만 하였다.
동무를 만나기도 부끄럽고 친정아버지를 보기도 부끄러웠다. 설사 제가 좀 잘못했기로니 어쩌면 저를 버리고 달아나서 수삭이 되어도 소식이 없느냐고 숭을 원망도 하였다.
그 동안에 김갑진이가 가끔 와서는,
"숭이 여태 안 들어왔어요"?
하고 혹은,
"그놈 시골놈이라 시골로 달아났나 보외다."
하고 빈정대기도 하였다.
정선의 맘에도 유순이라는 계집애가 가끔 맘에 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설마 하고 항상 스스로 부인해버렸다. 그러다가 신문에서 숭이가 ○○ 지방법원에서 농민을 위하여 변호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마침내 숭은 김갑진의 말과 같이 그의 고향인 시골에 달아나버린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는 유순에게 대한 질투와 숭에게 대한 반감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래서 정선은 포도주 한 병을 사다가 먹고 혼자 취하여서 고민하고 만일 지금 김갑진이가 오기만 하면 그에게 안기리라고까지 화를 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 밤에 김갑진은 오지 아니하였다.
이러할 때의 어느 날 아침 편에 정선에게 편지 한 장이 배달되었다. 그것은 언제 한번 본 글씨였다. 피봉에도 분명히 유순이라고 서명을 하였다.
정선은 질투와 불쾌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불길에 타면서 그 편지를 내어 동댕이를 쳤다.
"에그, 욕이다, 욕이야!"
하고 정선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정선은 그래도 궁금하여 그 편지를 떼어 보았다. 이번에는 연필 글씨가 아니요 펜 글씨로,
《허숭 선생께서 병환이 중하오니 곧 내려오시기를 바랍니다. 허숭 선생께서는 우리 동네에 오셔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의 병을 구완하시고 모든 어려운 일을 대신 보시느라고 몸이 대단히 쇠약하신데다가 제 아버지와 고모가 병으로 신고하시는 동안에도 여러 날 밤을 새우시고 아버지와 고모가 돌아가신 뒤에 쉬실 새도 없이 또 ○○에 가셔서 재판소에서 변호를 하시고 돌아오셔서는 신열이 높으시고 오후면 정신을 못 차리시고 헛소리를 하시고 앓으십니다. 곧 선생님께 편지를 드리려 하였사오나 놀라실까 보아서 편지를 못 드리다가 할수없어서 제가 지금 편지를 드립니다.
허 선생님은 헛소리로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시고 어떤 때에는 번쩍 눈을 뜨시고 <여보 정선이> 하고 찾으시다가 섭섭한 듯이 다시 눈을 감으십니다. 심히 뵈옵기 딱하오니, 부대부대 이 편지 받으시는 대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내려오실 때에는 고명한 의사를 한 분 데리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허 선생님을 은인으로, 있는 정성을 다하여 구완해 드리려 하오나 어리석은 것이 무엇을 압니까. 다만 다만, 선생님이 곧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유순 상서.》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