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 압니다. 한 선생 이 박사를 믿고 사랑해서 이 박사에게 심순례 소개하였고, 이 박사 한 선생께 말씀하기를 그 여자 심순례 맘에 든다고 혼인한다고 말하여, 이 박사, 심순례 두 사람 밤에 같이 놀러 나가고, 혼인식 아니했으나 혼인한 부부 모양으로 팔 끼고 다니고, 심순례 마음에 이 박사 내 남편이라고 믿게 하고, 그러하나 다른 여자-그 여자 나 잘 아오. 내 학생이요마는 나 이름 말 아니하오. 다른 여자 부자집 처녀 욕심나서 심순례 교제 끊고, 또 다른 여자 둘, 아니 셋, 심순례 한가지로 사랑하는 줄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가 또 미스 최."

 

하고는 미스 최를 바라보며,

 

"용서하시오, 나 미스 최 누구신지 잘 알므로, 미스 최 듣는 데서 이 말씀하오."

 

하고 미스 최에게 변명을 한 후에 다시 이건영 박사를 대하여,

 

"또 미스 최 돈 보고, 이 박사 사람 보고 사랑 아니하오, 돈 보고 사랑하오. 내가 잘 아오. 미스 최 돈 보고 또 사랑하오. 그러할 수 없소. 하느님, 하느님 보시고 있소. 사람 속여도 하느님,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 도무지 속일 수 없습니다. 나 심순례 딸같이 사랑하오. 심순례, 참으로 좋은 여자요. 그 심순례, 이 박사 때문에 병났소. 병나서 공부 못하고 불쌍해서 내가 평양으로 데리고 가오. 당신 만나는 것 심히 무서워하오. 당신 서울 돌아다니니까 만날까 무서워하므로 내가 집에 데리고 가오. 이 박사 회개하시오. 하느님 믿고 예수 말씀 잘 생각하시오."

 

하고는 이 박사의 대답도 안 듣고 일어나버렸다.

 

홀 부인은 일어나면서 이 박사와 미스 최를 한번 돌아보았다. 이 박사의 낯빛은 파랗게 질리고 입술은 보랏빛이 되어 떨었다. 미스 최는 이마를 창틀에 대고 우는 모양이었다.

 

"오해요. 오해요."

 

하는 뜻을 이 박사는 영어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목 밖에 잘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오해"?

 

하고 홀 부인은 돌아섰던 몸을 다시 돌려서 한 걸음 이 박사의 곁으로 다시 가 서며,

 

"오해요? 내가 이 박사 오해했습니까. 대단히 기쁜 말씀입니다. 이 박사 그렇게 악한 사람 아니라고 내가 믿게 되기 바랍니다. 이 박사가 젠틀맨이요, 크리스찬이요, 조선 동포의 리더-지도자 되어야 할 양반이요. 나 이 박사 그렇게 인격 없는 사람이라고-그렇게 남의 집 딸 유혹이나 하고 그러한 사람으로 믿고 싶지 아니합니다. 내 생각 다 오해라고 하시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오해 풀리도록 심순례와 나 있는 앞에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이 박사는 따라오려고 아니하였다. 그는 다만 힘없는 소리로,

 

"홀 부인, 전혀 오햅니다."

 

한마디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오해라는 말씀만으로 오해 도무지 풀리지 아니합니다. 지금 오해 푸실 기회, 마지막 기회 드려도 그 기회 아니 쓰시면 이 박사 변명할 아무 재료 없는 것을 내가 알 것입니다."

 

하고 홀 부인은 자리에 돌아와버렸다.

 

이등 차실에는 손님이 없었다. 만주가 뒤숭숭하고 또 병이 든다고 하여 객이 적은데다가 있는 이도 침대로 들어가버리고 남은 것은 홀 부인, 정선, 순례, 이 박사 일행 밖에는 두어 사람밖에 없었다.

 

홀 부인이 이 박사와 말하는 동안에 정선은 순례에게 여러 가지로 위로하는 말을 주었다.

 

"글쎄, 그까짓 녀석을 왜 못 잊어버리니? 그 녀석이 사람이냐 개지."

 

이렇게도 정선은 말해보았다. 그러면 순례는,

 

"그래도 어디 그렇소. 나는 안 잊히는데."

 

하였다.

 

"무섭다면서"?

 

"무섭긴 해도 안 잊히는 걸 어찌하오? 세상 사람들이 그이를 숭보면 듣기가 싫어."

 

하고 순례는 웃는 듯 우는 듯 낯을 감춘다. 그는 웃는 체 우는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그 녀석이 너한테 다시 오려든"?

 

"그야 그렇지, 언니, 그래두."

 

"도로 오기로 네가 받자 하겠니"?

 

"도로 오면 받지 어떡허우? 내가 이제 다른 데로 시집 못 갈 바에야."

 

"시집은 왜 못 가니? 혼인했다가 이혼도 하는데, 무어 어쨌다고, 너 그 녀석께 몸은 아니 허했지? 처녀는 아니 깨뜨렸지"?

 

"처녀란 어디까지가 처녀요, 언니? 나 처녀 같지가 아니하고, 꼭 그이의 아내가 다 된 것만 같은데."

 

"이애도. 처녀가 무엇인지, 우먼이 무엇인지 모르니"?

 

"난 모르겠어. 난 이만하면 벌써 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하우. 내 맘이 그런 걸 어떡허우."

 

하고 순례는 또 운다.

 

이러한 때에 홀 부인이 돌아왔다. 홀 부인은 우는 순례를 본 체 만 체하고 창을 바라보나 그의 눈에도 눈물이 있었다.

 

홀 부인은 일부러 화제를 돌리느라고,

 

"정선이 어디 가오"?

 

하고 물었다. 이 박사 사건 때문에 정선이가 어디 가는 것도 물을 새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