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애가 여태껏 허 변호사 병 구완을 한다네, 어디 친부모 형제는 그렇게 할 수가 있나."

 

하고 옆의 노인이 유순을 위하여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하고 정선은 유순의 인사에 답례로 고개를 숙였다.

 

유순은 낯을 붉혔다.

 

동네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정선을 맞았다. 그리고 남편의 병을 위하여 근심하고,

 

"가만히 호강을 해도 좋을 사람이 우리를 위해서…"

 

하여 주는 사람도 많았다.

 

정선은 자기 남편의 사업이란 것의 뜻이 알아지는 것 같았다.

 

정선이 남편의 집 마루에 발을 올려놓을 때에는 곽 박사는 벌써 숭의 병을 보고 있었다.

 

숭은 마침 정신이 좀 났다.

 

열은 삼십 구 도. 복부가 상하여 의사는 관장의 필요를 말하였다.

 

정선은 병실 문 안에 들어서서 앓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탄 입술,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것은 차마 못 볼 광경이었다.

 

곽 의사는 정선을 위하여 병자 곁으로부터 물러앉았다. 정선은 곽 의사가 내어준 자리에 앉으며 남편의 여윈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이 울었다. 무조건으로 울었다.

 

숭도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로부터 이주일 후 숭은 정선에게 부축을 받아 마당으로 거닐게 되었다.

 

정선은 전 심력을 다하여 남편을 간호하였다. 병중에 있는 남편에게서 정선은 전에 몰랐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도 적지 아니하였다. 숭도 정선의 속에 있는 아름다운 정선을 발견하였다.

 

"병이 낫거든 서울로 갑시다."

 

하고 하루는 정선이가 달내강 가에 앉아서 늦은 가을의 볕을 쪼이며 이야기하였다.

 

"날더러 서울로 가자고 말고, 당신이 여기 있읍시다."

 

하고 숭은 팔을 들어 정선의 허리를 안았다. 정선은 끌리는 대로 남편의 몸에 기대었다. 남편의 몸에는 벌써 그만한 힘이 생겼다.

 

"그래두."

 

하고 정선에게는 아직도 시골에 있을 결심이 생기지를 아니하였다.

 

"그래, 이 달내강의 맑은 물이 청계천 구정물만 못하오"?

 

하고 숭은 아내의 낯을 정답게 들여다보았다.

 

"그야 달내강이 낫지."

 

하고 정선은 웃었다.

 

"또, 저 벌판은 어떻고, 산들은 어떻고, 대관절 이 공기와 일광이 서울 것과 같은 줄 아오? 당신같이 몸이 약한 사람은 이런 조용하고 공기 일광 좋은 곳에 살아야 하오. 당신 오라버니도 호흡기 병으로 안 죽었소? 여기 있읍시다. 우리 여기서 삽시다. 여기서 농사하는 사람들과 함께 삽시다. 그리고 우리 힘껏 이 동네 하나를 편안한 새 동네로 만들어봅시다. 이 동네 사람들이 서울서 내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인생 가치로는 더 높소. 또 조선은 십분지 팔이 농민이란 말요. 이천만이면 일천 육백만이 농민이란 말요. 나머지 사백만은 농민의 등을 긁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고, 우리도 농민의 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만일 양심이 있다고 하면, 좀 갚아야 아니하겠소. 정선이, 서울 갈 생각 마오, 응."

 

하고 숭은 이번 만나서 처음으로 정선의 입을 맞추었다. 정선은 마치 처음으로 이성에게 키스를 당하는 처녀 모양으로 낯을 붉혔다. 그리고 누가 보지나 않는가 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람은 없고 강 건너편에 아직 코도 꿰지 아니한 송아지가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당신이 있으라면 있지요."

 

하고 정선은 숭을 바라보고 웃었다. 숭의 얼굴에는 살이 부었으나 아직도 병색을 놓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