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시골 가서 병이 나서, 의사를 데리고 갑니다."
하였다. 그리고 정선은 이 대답을 하는 자기의 신세를 순례보다 퍽 행복하게 생각되었다.
정선에게 허숭의 뜻을 들은 순례는 감탄하는 듯이,
"나도 그런 일이나 했으면."
하였다.
그 말이 퍽 간절하였다.
"이애는."
하고 정선은 어린 동생이나, 딸을 귀애하는 듯이 제 손수건으로 순례의 눈물을 씻고, 얼굴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네가 그래 그 시골을 가서 살아? 오줌똥 냄새가 코를 바치고, 빈대 벼룩이 끓고, 도배도 장판도 없는 흙방에서 전등이 있나, 전화가 있나, 아침 저녁 만나는 사람이라곤 시골 무지렁이들인데 네가 그래, 서울서 생장한 애가 그 속에서 살아"?
하고 정선은 순례의 슬픔을 잊게 할 겸 깔깔 웃었다.
"왜 못 사우? 시골사람들이 서울사람보다 더 순박하고 인정이 많다는데- 난 시골에 가서 살고 싶수-할 일만 있으면."
하고 순례는 제 손을 본다. 그것은 세수물도 못 만져본 손이다. 낫자루, 호미자루는커녕 부지깽이 한번도 못 잡아본 손이다. 정선의 손은 더구나 그러하였다. 그들의 손은 노동이라고 하면 끼니 때에 수저 잡는 것, 학교에서 연필 잡고, 피아노 치는 데나 썼을까. 분결같이 희고, 붓끝같이 고운 손이다. 굳은살 하나, 거스러미 하나 없는 살이다. 그 손들은 도회에 있으면 사내들에게 장난감밖에 아니되는 손이다. 오곡이 되고, 백과가 되고, 필육이 되고 하는 농촌여자의 손- 그것은 검고, 거칠고, 크고, 굳은살이 박이고, 모기가 앉아도 주둥이 침이 아니 들어가고, 거머리가 붙어도 피가 아니 나오는 손이다.
"흥."
하고 순례는 기껏 어멈의 손을 상상하여 제 손과 비교해보았다. 도회여자는 손으로 벌어먹지 아니한다. 그는 이쁘장한 얼굴과, 부드러운 살과, 아양으로 사내의 총애를 받아서 벌어먹는다. 이 세 가지만 구비하면 그 여자는 가만히 누워서 보약과 소화약이나 먹고 남편이라고 일컫는 남자의 장난감이 되면 일생 팔자가 늘어진 것이다(만일 그러한 팔자를 늘어진 팔자라고, 늘어졌다는 팔자가 좋은 팔자라고 할 양이면 말이다).
"그럼 언니는 어떡허랴우? 허 선생은 시골 가셔서 농촌사업을 하시는데, 언니는 혼자 서울 있수"?
하고 순례는 아까보다 원기를 회복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억제력, 슬픔과 괴로움을 누르는 억제력만은 회복한 모양이었다.
"그럼. 왜 혼자 서울 못 있니"?
하고 정선도 제 말에 의심이 없지 아니하면서 대답하였다.
"아이 참."
하고 순례는,
"그게 말이 되우"?
하고 가볍게 웃었다.
홀 부인은 순례가 웃는 것만이 기뻤다.
"왜 말이 안돼"?
하고 정선은 여전히 자신없는 항의를 하였다.
"어디 두고 볼까."
하고 순례는 이번에는 좀더 쾌활하게 웃었다.
정선도 웃고 홀 부인도 웃었다.
정선이가 ○○역에 내린 것은 이튿날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아니한 때였다. 이 박사는 어디서 내렸는지 알 수 없고 미스 최만이 눈이 붉어서(울고 잠 못 잔 탓인 듯) 부끄러운 듯이, 그러나 정숙스럽게 정선에게 인사를 하였다. 홀 부인과 순례는 물론 벌써 평양에서 내렸다.
정선은 일본식으로 허리를 굽히는 미스 최의 손을 힘있게 잡으며,
"이 박사와 약혼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아니오. 아버지는 약혼을 하라지마는… 아직 아니했어요."
하고 낯을 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