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회복되었다. 정선은 서울을 떠나기 전 사흘 동안 비로소 남편과 한자리에서 잤다. 그들은 마치 신혼한 내외 모양으로 새로운 정을 느꼈다. 정선은 숭에게 서울까지 동행하기를 청했으나 숭은 듣지 아니하였다. 정선은 혼자 식전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숭은 앓고 나서 처음 정거장까지 먼 길을 걸었다.

 

"이렇게 걸음을 걸어도 괜찮을까요."

 

하고 정선은 정거장까지 가는 동안에도 퍽 여러 걱정을 하였다.

 

"괜찮지."

 

하고 장담은 하면서도 숭의 이마와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정거장에는 한갑 어머니와 유순이와 기타 동네 사람 남녀 십여 명이나 전송을 나왔다.

 

"내 아버지더러 집이랑 다 팔아 달래 가지고 오리다."

 

하고 정선은 남편의 싸늘한 손을 꼭 쥐면서 맹세하였다. 정선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코와 눈과 입의 근육이 씰룩거렸다. 어찌된 일인지 정선은 참을 수 없이 슬펐다.

 

차가 떠날 때에 정선은 창을 열고 내다보려 하였으나 겹창이 열리지를 아니하였다. 정선은 앉아서 울었다.

 

정선은 지나간 오십 일이 십년이나 되는 것 같았다. 그동안에 숭이가 죽을 뻔한 일도 두어 번 당하고 감정과 의견의 충돌도 무수하였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정선은 숭을 좀더 알았다. 숭은 뜻이 굳고 맘에 그리는 생활이 자기의 사상과는 달라서 적어도 전 조선을 목표로 삼고, 정은 있으면서도 정에 움직이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든 점을 발견하였다.

 

그 결과로는 숭이가 결코 못 생긴 시골뜨기만이 아니요, 존경할 여러 가지, 정선으로는 믿지 못할 여러 가지가 있는 것도 발견했지마는, 또한 숭은 정선이가 마음으로 원하는 남편의 자격이 없는 것도 발견하였다. 정선이가 마음으로 원하는 남편은 이 세상 많은 사람, 상류계급의 많은 사람과 같이, 이기적이요, 아내만 알아주는 사람(정선 자신은 이렇게 이름을 짓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그 생각을 사정없이 해부한다면)이었다. 숭은 위인이 될는지 모르거니와, 좋은 남편은 될 것 같지 아니하였다. 정선은 어떤날 달냇가에서 하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래, 당신이 혼자서 그러면 조선이 건져질 것 같소"?

 

이렇게 정선이가 물을 때에,

 

"글쎄, 나 혼자 힘으로 온 조선을 어떻게 건지겠소? 나는 살여울 동네 하나나 건져볼까 하고 그러지. 살여울 동넨들 꼭 건져질 줄 어떻게 믿소. 그저 내 힘껏 해보는 게지. 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지 아니하오"?

 

이렇게 숭은 대답하였다.

 

"그러니깐 말요, 그렇게 될뚱말뚱한 일을 하느라고 어떻게 일생을 바치오? 그것은 어리석은 일 아니오"?

 

하고 정선이가 항의할 때에 숭은,

 

"정선이 말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겠지. 그러니까 약은 사람들은 이런 일은 아니하지요."

 

하고 숭은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숭이가 하려는 일은 공상이었다. 어리석은 공상이었다.

 

"왜 당신 배운 재주론들."

 

하고 정선은 다시 숭의 어리석은 생각을 돌리려고 애를 써보았다-

 

"변호사론들 조선사람을 위하여 얼마든 좋은 일을 할 수가 있지 아니하오. 이런 시골 구석에서 고생 아니하고도, 돈 벌어가면서 일류 명사 노릇 해가면서도 좋은 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소"?

 

할 때에도 숭은,

 

"변호사 노릇을 아무리 잘하기로 굶어 죽는 농민을 도와줄 수야 없지 않소? 기껏 부자집 비리송사 대리인밖에 할 것이 무엇이오. 차라리 불쌍한 농민들의 대서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오? 면소나 경찰서 심부름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도움이 되겠소"?

 

하고 듣지 아니하였다.

 

정선의 귀에도 아니, 양심에도 숭의 말은 진리에 가까운 듯하고, 종교적 거룩함까지도 있는 듯하였다. 정선도 이 진리감과 정의감을 학교에서 배양을 받기는 받았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 누가 그런 "묵은 진리와 정의를 따른담. 베드로와 바울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들은 정선과 뜻을 같이할 것같이 생각되었다. 숭은 분명히 어리석은 공상가였다. 남편으로 일생을 믿고 살기에는 너무도 맘 놓이지 아니하는 사내였다.

 

기차가 숭이가 있는 곳에서 차차 멀어갈수록, 서울이 가까와 올수록, 정선은 숭의 모양이 자기의 가슴속에서 점점 희미하게 됨을 깨달았다.

 

<인생의 향락!>

 

이 절대명령이 정선에게 저항할 수 없는 압력을 주었다. 정선은 그 아버지, 오빠, 모든 일가 사람들, 또 모든 동무들, 그들의 가정, 어느곳에서나 숭과 같이 어리석은 공상가의 본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정선은 한 선생을 안다. 정선의 삼종숙 한은 선생이 이 한민교라는 선생을 위인처럼 칭찬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한 선생이 다 무엇이냐. 그 궁하게 생긴 얼굴, 초라한 의복. 만일 숭이가 한 선생과 같이 된다면? 싫어! 싫어! 누가 그 아내 노릇을 해! 나이 오십이 넘도록 셋방살이가 아니냐. 한 달에 백 원 내외의 월급을 받아 가지고. 아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것이 사람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