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은 구두끈을 매다 말고 벌떡 일어서면서 마치 얼빠진 사람과 같은 표정으로,
"미워하시니까 가지요."
하고 물끄러미 정선을 바라본다.
"미워는요"?
하고 정선은 웃어보였다.
"그럼 가지 말고 도로 올라가요"?
하고 갑진은 외투를 마루에 놓는다.
정선은 소리를 내어 웃어버렸다. 어멈과 유월이도 웃어버렸다.
갑진은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정선은 올라오란 말은 하지 않는다.
"글쎄, 그 쑥이 왜 아니 온대요"?
하고 갑진은 마치 숭에게 흥미가 있는 것같이 말한다.
"글쎄, 농촌운동 한다고, 날더러도 내려오라고 그러는걸요."
하고 정선도 문지방에 팔을 걸치고 앉는다.
갑진은 신이 나서,
"농촌운동이라는 게 무어야요? 무지렁이놈들 데리고 엇둘엇둘 한단 말야요? 원, 원, 요새 직업 못 얻은 놈들이 걸핏하면 농촌운동, 농촌운동 하지마는, 그래 그깟놈들이 운동 아니라 곤두를 서보시오. 척척, 경제학의 원리 원칙대로 되어가는 세상이 그깟놈들이 지랄을 하기로 눈이 깜짝하나, 다 쓸데없어요. 숭이놈도 변호사나 해먹지 구구로, 괜히 꼽살스럽게, 오, 깐디 좀 돼볼 양으로.
깐디 노릇도 수월치 않던걸요. 요새도 또 밥을 굶는다나. 밥을 굶으면 잡아 가두었다가도 내놓아 주는가 봅니다마는, 그놈의 노릇을 해먹어! 세 끼 더운밥을 먹고도 눈에 불이 확확 나서 못살 놈의 세상에 감옥이 아니면 밥굶기, 그리고 궁상스럽게 물레질을 왜? 아니, 숭이녀석 물레질은 아니해요? 이렇게, 이렇게 붕붕붕 하고."
하고 오른편 팔을 두르고 왼편 팔을 뒤로 댕기어 물레질하는 시늉을 한다.
"하하하하."
하고 정선은 유쾌하게 웃었다.
"아니, 물레질하는 건 어디서 다 보시었어. 아이, 서방님두."
하고 명복어멈이 뚱뚱한 몸을 주체할 수가 없는 듯이 허리를 굽히락펴락하고 웃는다.
정선은 엄정하게,
"그럼, 농촌운동을 아니하면 오늘날 조선에서 또 무얼 할 일이 있어요"?
하고 남편의 역성을 들려고 한다.
"돈 벌지요."
하고 갑진은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뜬다.
"돈은 벌어서"?
하고 정선은 다시 농담 어조로 변한다.
"우리처럼 술 먹고 카페 다니구요."
"또"?
"또 할 일이 많지요. 남자 같을 양이면 계집애들도 후려내고, 맘나면 아편쟁이 아편도 사주고, 압다, 함, 이렇게 인단도 사 먹구요."
이런 소리를 하다가 열시나 되어서 갑진은 집에서 나왔다. 갑진을 보낸 정선은 갑자기 텅 빈 듯한 생각을 가지지 아니할 수 없었다.
갑진이라는 생각은 정선을 못 견디게 괴롭게 하였다. 그는 마치 갑진이가 정선에게 무슨 마취약을 먹여서 갑진만을 그리워하도록 술을 피운 것 같았다.
집 처분, 재산 처분을 해가지고 살여울 남편에게로 가려는 생각은 자꾸 스러져버리려고도 들었다. 정선은 이에 반항하려고 했으나 그 반항은 도무지 힘이 없는 반항이었다. 정선의 몸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동아줄에 얽히어 더욱더욱 갑진에게로만 끌려가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