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자기도 없고, 더구나 남편도 없는 빈 집에 갑진이가 사람들을 끌고 와서 밤이 깊도록 놀았다는 것이, 그것도 한두 번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심히 불쾌하였다. 큰 모욕을 당한 것 같았다.

 

그날 밤 정선은 남편과 같이 자던 자리에 혼자 누워보았다. 그리고 시골에 있는 남편을 그립게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웬일인지 애를 쓰면 쓸수록 남편이 점점 멀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도리어 갑진의 소탈한 모양이 눈에 어른거리고, 그뿐만 아니라 갑진에게 대하여 억제할 수 없는 어떤 유혹을 깨달았다.

 

정선은 갑진과 숭을 비교할 때에 숭의 인격의 가치가 갑진의 그것보다 높은 것을 의심없이 인식한다. 그렇지만 숭이 정선에게-아무 일반적으로 젊은 사랑에 주린, 취할 듯한 애욕에 주린, 여성에게 만족을 주는 남편이 아닌 것같이도 인식되었다.

 

정선은 숭의 인격을 노상 사모하지 아니함은 아니다.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가슴의 비임을 깨닫는다. 그 비임은, 정선이가 아는 한에서는 갑진일 것 같았다. 갑진은 무척 재미있는 남편-적어도 성적으로는-일 것 같았다. 이것은 정선이 그 아버지의 호색한 피를 받음일는지는 모르나, 어느 젊은 여자든지 다 그러하리라고 정선은 스스로 변호하였다.

 

하루 종일 차속의 피곤과 자리속의 번민과 공상과 오뇌로 정선은 퍽 늦게야 잠이 들었다가, 늦게야 잠이 깨었다.

 

이튿날 정선이 친정에를 다녀서 저녁을 먹고 밤 아홉시나 되어서 집에 돌아온 때에 유월은 대문에 마주 나와 서서,

 

"마님, 저 잿골 서방님이 또 오셨어요. 안방에 떡 들어가 드러누웠겠지요."

 

하였다.

 

정선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갑진은 마루 끝에 나서며 동네방네 다 들어라 하는 듯이,

 

"아, 돌아오셨어요! 나는 어떻게 기다렸는지요. 또 정선씨도 숭이 놈같이 미쳐서 시골 무지렁이가 되어버리셨나 했지요. 그렇다 하면 그것은 서울을 위하여 슬퍼할 것이요, 전 인류를 위하여 슬퍼할 것이란 말야요. 더구나 이 갑진을 위해서는 통곡할 일이란 말씀야요."

 

아주 갑진은 무대 배우의 말 모양으로, 농담 같기도 하고 진담 같기도 한, 아마도 농담속에 진담을 섞은 말이었다.

 

정선은 불쾌한 듯이 새침하고,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는 갑진을 뒤에 두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갑진은 좀 무안한 듯이, 이번에는 점잖게,

 

"숭이는 아니 온대요"?

 

하고 정당하게 물었다.

 

"안 온대요."

 

하고 정선은 시들하게 대답을 하였다.

 

"아 그놈이 시골에 웬 때 묻은 계집애 하나를 사랑을 한다니, 정말야요. 어디 유력한 증거를 잡으셨어요"?

 

하고 갑진은 다시 기운을 얻었다.

 

"모르지요, 누가 알아요"?

 

하고 정선은 여전히 뾰로통했다.

 

"그런 쑥이 글쎄 뭣하러 시골 구석에 가 자빠졌어. 그놈이 그 무에라든가 하는 계집애의 때 냄새에 취하지 아니하면 무얼하고 거기 가 있어요? 미친 자식, 그 자식 암만해도 쑥이라니까."

 

하고는 정선이가 멍하니 앉았는 안방에 들어가서 모자와 스프링을 집어 들고,

 

"갑니다, 실례했습니다."

 

하고 나와 구두를 신는다.

 

갑진이가 무안하게 나가는 것을 보고 정선은 미안함을 깨달았다.

 

그래 따라서 마루 끝까지 나가며,

 

"왜 어느새 가세요"?

 

하고 어성을 부드럽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