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역을 지나서, 굴을 지나서 서울의 전기불 바다가 전개될 때에 정선은 마치 지옥속에서 밝은 천당에 갑자기 뛰어나온 듯한 시원함을 깨달았다. 기쁨을 깨달았다.

 

경성역의 잡답, 역두에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수없는 택시들, 그들은 손님을 얻어 싣고는 커단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이것이 인생이었다. 살여울, 달내, 초가집, 농부들-그들은 정선에게는 마치 딴 나라 사람들이었다. 도무지 공통된 점을 못 찾을 듯한 딴 나라 사람들이었다. 무의미를 지나쳐서 불쾌한 존재였다.

 

"아이, 아씨."

 

하고 집에서는 어멈, 유모, 침모, 유월이(계집애)가 나와 반갑게 맞았다.

 

"어쩌면 이렇게 오래 계셔요? 그래, 영감마님은 아주 나으셨어요? 그런데 어째 같이 아니 오시고"?

 

하고 정선에게 물었다.

 

정선은 반가운 내 집을 돌아보았다. 이것들이 집을 어떻게 거두는고 하고 남편의 병구완을 하면서도, 그것이 맘에 잊히지를 아니하였다. 비록 믿고 믿는 유모가 있지만두, 방에 있는 모든 세간들-장, 의걸이, 양복장, 이불장, 체경, 이불, 책상, 전화, 모든 것이 다 반가왔다. 남편보다도 더 반갑고 소중한 듯하였다.

 

정선은 마치 무엇이 없어지지나 아니했나 하는 듯이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한번 장문들을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자기의 옷도 있고 남편의 옷도 있었다. 마침내 그는 피곤한 듯이 남편의 방안, 안사랑의 책상 앞 교의에 앉았다. 그 방에는 담배내가 있고 책상 위에는 궐련 끝이 재떨이에 수없이 있었다.

 

"이 방에 누가 왔던가."

 

하고 정선은 의심스러운 듯이 따라온 하인들을 향하여 물었다.

 

"저 잿골 김 서방님이 가끔 오신답니다."

 

하고 유월이가 대답하였다.

 

"잿골 김 서방님이"?

 

하고 정선은 눈을 크게 뜨며,

 

"김 서방님이 왜"?

 

하고 정선은 놀란다.

 

"지나가다가 들어오시는 게죠. "아직 안 돌아오셨니"? 하시고 "사랑문 열어라" 하시고는 들어오셔서 놀다가 가시지요."

 

하고 명복어멈이 설명을 한다. 이 어멈은 얼굴도 깨끗하고 말재주도 있는 어멈이다.

 

"어떤 때에는 친구들을 죽 끌고 오신답니다."

 

하고 유월이가,

 

"오셔서는 청요리를 시켜라, 술상을 보아라, 귀찮아서 죽겠어요."

 

하고 입을 비쭉한다.

 

"조것이!"

 

하고 명복어멈은 유월을 흘겨보며,

 

"한번 그리셨지, 무얼 가끔 그리셨어"?

 

하고 꾸짖는다.

 

"무엇이 한번요. 접때에는 자정이 넘도록 지랄들을 아니했수"?

 

하고 유월이는 명복어멈을 책망하는 눈짓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