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집에는 밤마다 여자들이 모여서 놀았다. 그들은 대개 정선의 동창이나 동무들이었다. 혹 직업을 가진 이도 있지마는 대개는 이것이라고 내어놓을 만한 직업이 없는 여자들이었다. 나이로 말하면 이십 이삼으로부터 삼십 세 안팎, 간혹 삼십 사오 세 된 여자도 있었다. 정선이 모양으로 혼인한 이도 있으나 대개는 혼인 아니한 여자들이요, 그 중에는 소박데기, 이혼당한 이도 한둘 있었다.

 

먹을 걱정은 없고 별로 바쁜 일도 없는 그들은, 정선의 집 같은 데를 좋은 놀이터, 이야기터로 알아서 모여들었다. 정선도 마음의 적막과 괴로움을 이것으로 잊으려 하였다.

 

그들이 모여서 하는 말은 잡담이었다. 가장 많이 나오는 화제는 고십과 연애 이야기였으나, 가끔 직업 이야기도 나왔다. 이를테면 이른바 에로, 그로, 넌센스에 사는 종교는 조선의 인텔리겐차 여성까지도 완전히 정복하고 말았다.

 

십년 전 여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애국이니 이상이니 하는 도덕적 말들은 긴 치마, 자주댕기와 같이 영원한 과거의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말았다. 가끔 이 자리에 오는 심순례까지도 이러한 에로, 그로, 넌센스에 한 마디 두 마디 대꾸를 하게 되었다. 그것이 현대인의 비위에 맞는지도 모른다. 또는 이것이 병균이라고 하면, 현대인은 현대의 시골인 조선 여성도 거기 대한 저항력을 잃어버렸나 보다.

 

이 여자들의 고십거리에 나오는 인물은 교사, 의사, 신문기자, 총각, 여자 꽁무니 따라다니는 사람, 첩으로 간 여자, 사내들과 같이 다니는 여자, 이러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무슨 서적이나 학술이나 예술에 관한 화제는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연애도 십년 전의 <연애 신성>이라던 연애와는 딴판이었다. 그들이 문제삼는 연애는 모든 봉건시대적 의식, 예절과 떼어버린 악수, 포옹, 키스, 랑데부, 동거, 별거 등등을 프로세스로 하는 단도직입적인 연애였다. 실로 과학적이요 비지니스적인 연애였다.

 

"혼인"?

 

하고 입을 비쭉하는 그들인 듯하였다. 만일 혼인을 한다면 시부모는 재산만 남겨놓고 죽고, 돈 있고, 몸 건강하고, 이야기 재미있게 하고, 누구 하면 사람이 알아줄 만하고, 그리고 총각이요, 이러한 신랑이 소원인 듯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신랑은 현모양처식 여자가 드문 모양으로 드물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들은 시집을 못 가고, 아마 아니 가고 소위 남자 교제라는 방법으로 이 남자에서는 얌전을 맛보고, 저 남자에서는 시원시원의 내를 맡고, 또 다른 남자에서는 육체의 미를 감상하고, 그리고 또 다른 남자에서는 자동차값과 저녁값의 재원을 찾았다.

 

이렇게 여러 남자에게서 분업적으로 부분적으로 이성에 대한 만족을 찾았다. 남자들도 그러한 이가 많았다. 이렇게 여러 남성에게서 조각조각, 부스럭부스럭의 만족을 얻는 오늘날 조선의 여성은 자연히 맘이 가라앉을 날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네온사인의 불줄기 모양으로 늘 흔들리고 늘 움직이고 있다. 밤이 늦도록 무엇을 구하고 헤매던 그들은 새로 한시나, 두시에 자리에 누워도 꿈이 편치 못하고, 이것저것 불규칙하게 집어먹은 그들의 장위는 마치 산란한 그들의 머리속, 가슴속 모양으로 편안치를 못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아침 늦게야 잠을 깨는 그들의 입은 쓰고, 눈은 텁텁하고, 입술은 마르고 그리고 수없이 하품이 나온다.

 

정선의 집에 모이는 여자들은 대개 이러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심순례의 가슴에 박인 못은 갈수록 더욱 깊이 박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마음에는 없으면서도 동무들과 같이 밀려다니면서 시름을 잊으려는 생각을 내었다. 더구나 이건영 박사가 이 여자를 따라다닌다, 저 여자와 약혼을 한다, 할 때마다 마음에 폭풍우가 일어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순례는 스스로 이 마음이 옳지 아니한 맘이라 하여 누르려 하였으나 그것이 잘 눌려지지를 아니하였다. 그럴 때마다 순례는 자기의 마음이 착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내가 이를 사랑할 양이면 왜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지 못할까."

 

이렇게 순례는 혼자 애를 썼다.

 

"질투는 추한 것"

 

이런 말을 순례는 어느 책에서 보고, 그 말이 순례의 마음을 몹시 괴롭게 하였다. 순례는 이 추한 마음을 뽑아버리려고 많이 애를 썼으나, 그는 마침내 자기의 약한 것에 절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