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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담 딸년은 왈패다. 사내 형제들을 깔고 돌려는 게 좋다. 쌍까풀이 눈딱지도 이 집에서는 귀물이다. 또 단 하나 외갓집 모습을 닮지 않은 것이 좋다. 그 담 놈은 욕심이 많다. 어쩐지 애비 성미에 안 맞는다. 하나 다섯 살밖에 안 되는 놈이 무슨 글자든지 써주면 그대로 받아쓰고 그림도 곧잘 그린다. 그래서 요새 공책 하나를 사주었다.
어쨌든 두루두루 보니 모두 그만그만하다. 그러나 에미를 닮아서 울기를 잘한다. 민우에게는 우는 것이 제일 질색이다. 성격들이 어느 연놈 없이 모두 너무 약하다. 저희들끼리는 씨름도 하고 싸움도 하고 사무라이 놀음도 하고 꽤 영악한 것 같지만 정작 남과 맞서면 그저 베베하고 물러서리라고 애비는 생각한다.
그러게 동리애들과 다투는 소리만 나면 에미가 쫓아나가서 편역을 든다. 그래서 그 때문에 민우는 여러 번 아내와 말다툼을 하였다.
"제 자식 편역 드는 집 연놈 잘되는 걸 못 봤다."
하고 민우는 도거리로 욕하고 다음으로,
"못생긴 놈의 새끼들, 쩍하면 얻어패고 울고… 그따위가 인간질하다 뒈지는 걸 못 봤다. 왜 그놈의 허벅다리라도 물어떼지 못해."
하고 아이들을 나무라는, 한편에는 그따위 약한 자식을 낳은 제 성격에 대한 발악도 다분히 있는 것이나 아내는 그걸 알 택이 없다. 덮어놓고 제 아이 편역이다.
"이애보다 곱절이나 되는 놈인데 당허길 어떻게 당해 낸단 말요. 온, 그놈의 새낄, 목댈 시들궈 놓지 못한 게 분해 죽겠는데 급살 맞을 놈의 새끼."
"듣기 싫어. 힘이 모자라 얻어팼으면 팼지, 울긴 왜 울어. 설사 분해서 울었다 치더라도 남 안 보는 데 가서 울 일이지 울면서 집으로 들어올 건 뭐람. 못생긴 망나니들 같으니라구."
"그래 그놈한테 맞아죽어도 알리지 않어야 옳겠소."
"에미란 게 저러구 주책없이 픽하면 새끼들 역성을 들고 나서니까 그렇지."
"참 답답한 소리 하구 있소. 양같이 순한 애들을 때리는 놈이 나쁘지 그래 얻어맞는 놈이 나쁘단 말요."
"얻어패는 놈이 더 나뻐."
"온 별말을 다 듣겠네. 제 새끼 편역 든다고 나무라는 양반이 남의 새끼 역성은 어째 들우, 온."
"나쁜 놈이면 이로 물어뜯어도 좋고 돌멩이로 대가릴 까도 좋지. 왜 되려 얻어패고 울며불며 집으로 쫓겨 들어오느냐 말야. 맞어죽는대도 불쌍한 꼴 하고 죽는 놈 하나도 불쌍할 거 없어. 기왕 죽을 바이면 우는 대신에 악을 좀더 써보는 게 옳지 울면 무슨 소용이란 말여."
"아이구, 참 답답허우. 당신 같은 사람 분복에 자식새끼 다섯씩 생기는 게 용소."
"그까짓 거, 대구처럼 무럭무럭 낳아서 남의 단밥 만들 거 뭐야. 그따위 새끼들 세상에 내놔 보지 어떻게 되나."
이것도 사실 민우의 뼈저린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는 차라리 자기의 약한 성격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아이구, 그래 남의 새끼만 못 될 줄 알우. 그래두 당신은 자식 덕 입겠다니 걱정이지… 그러나 그따위로 하다가는 말경에 자식들한테 들것에 들려나리다."
"제발 덕분에 그래 달래, 그만침 영악해지란 말야. 그러면 돌꼭대기에 올려논들 살아 못 갈까만 지금 그따위 새끼들은 밤낮 남의 손아귀에 들고 엉뎅이 아래 깔리고 짓밟히고 멸시받다가 마쳐 버리는 거야."
"제가 착하기만 하면 그만이지 누가 뭘 어쩐단 말요, 남한테 못 할 일 안 하니깐 아무 무서운 거 없습디다."
"착하고 악하고 간에 제 하는 일에는 그저 강해야 하는 거야. 극성스리, 악마같이 강해야 하는 거란 말야. 엉거주춤한 놈은 한평생 남에게 놀리다가 우물쭈물 죽어 버리는 법이니 그래 제 새끼가 그 꼴을 해야 옳단 말인가. 그리게 범을 낳아. 양을 낳더라도 범으로 기르란 말야, 범으로."
그전에는 이런 쌈이 며칠 걸러씩 있었다. 그러나 시실 따져 보면 민우의 이 쌈은 그가 약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삼십 년 동안 세상에서 받은 가지가지 체험에서 우러나온 울분에 지나지 않는다.
맘만은 늘 속에서 격분에 타면서도 천생 약한 성격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겉으로는 필요 이상으로 공손히 살아왔다.
맘속에는 도적놈이 두세 놈씩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용케 숨겨 가지고, 그리고 강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제 몸을 남에게 좋게 인식시키고, 그리하여 어진 사람보다 영화롭게 사는 것이다. 약하고 착한 사람은 못난이, 열패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 자식이 그 꼬락서니로 일생을 살아야 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