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변할 줄을 모른다. 물로 치더라도 좔좔 흐르는 물이라야 맑고 씨원하다. 그래도 남의 말을 들으면 남편은 퍽 재미나는 사람이라는데 집에 들어서는 가타부타 쇠통 말이 없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불을 돌돌 감고 돌아누웠거나 그렇지 않으면 책과 씨름이다. 그래서 아내는 그놈의 책 죄다 살라 버리고 싶은 때가 적지 않다. 책이 아무리 좋다기로서니 온 아내까지 모르고 살게 할 말이면 그따위 것을 그대로 둘 수 있으랴 싶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민우는 그리로 갔다 온 후 성미가 변한 것도 적지 않다. 첫째 식성이 변했다. 김치깍두기만 먹고 제삿날에도 입쌀과 핍쌀을 섞고 게다가 콩팥을 둔 밥이라야 먹던 남편이 인제는 흰밥도 그만이요 길짐승, 물고기도 고작이다. 평생 국을 안 먹어서 허리가 한줌만하더니 인제는 제법 국맛도 아는 속이다. 식성 좋고 지방질적인 아내에게는 우선 이것이 저으기 기뻤다.

    그리고 자식에게 대한 태도도 많이 변했다. 그전에는, 어려서 다리를 앓아서 끝내 한쪽 다리를 살룩거리는 맏놈은 물론, 그 다음 아이들 이름조차 잘 부르려고 안 하고 무슨 잘못이 있든가 울든가 하면 당장 욕하고 때리고 했는데 지금은 그 버릇이 없다.

    민우는 무엇보다 우는 것이 제일 질색이다. 그래서 맏놈이 세 살 때엔가는 우는 아이를 앞 개천에 팡개친 일이 있고, 둘째 놈은 한번 무슨 책장을 찢어 놓아서 마당 김칫독 파낸 구덩에 절반이나 파묻은 걸 아내가 파낸 일이 있고, 셋째 놈은 방에다 잉크를 엎지르고 따귀를 맞아 코피 터진 일이 있고, 제일 귀염을 받는 것이 그 담 딸인데 그도 에밀 닮아서 울길 잘 하기 때문에 여러 번 휘태손이를 먹었다.

    그 다음 다섯째 놈은 민우가 그리로 가던 바로 그날 새벽에 낳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안에서 이름을 지어 보내고 자주 안부를 물었는데 거기서 나와서 첨은 안아 보는 일도 없더니 다섯 살밖에 안 되는 놈이 제법 형놈들을 따라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흉내를 내어서 못내 만족해하는 속이다.

    막내 놈 말고는 모두 학교에 다니는데 말로는 그까지 학교성적 같은 거야 나쁘면 어떠냐고 심상한 체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따금 아이들 몰래 아내에게 학교성적을 묻고 어느 놈이 제일 재주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또 요새는 회심이 들어서 취직운동을 하는 중이다. 그전에는 "내가 왜 무직업쟁이란 말이냐,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게 직업인 줄을 모르니 답답하지 않으냐"하고 말하여 아내가 "그까짓 가난뱅이 되는 연구!"하고 비꼬아도 끝내 직업 같은 데는 구미가 없었다.

    그런데 요새는 별말 없이 취직운동을 다닌다. 더구나 그 취직운동은 예전과 달라서 재판소 판사니 검사니 하는 사람들이 배후에 있어 힘써 준다는 말을 민우에게서 직접 들은 건 아니로되 풍편에 들은 아내는 이런 별세상 별시대가 있느냐고 못내 놀랐다.

    그러나 알고 보니 사실은 사실이다. 보호관찰소라는 것이 생겨서 직업을 주선해 준다는 말을 아내는 남편이 나와서 얼마 만에야 딱히 알았다.

    또 오늘 낮에 민우가 그리로 갔다 온 것도 아내는 잘 안다. 민우는 딴 데 놀러갔다 온 체하지만 그건 집안에서 너무 조급해할까 봐서 위정 시치미를 떼는 거요 사실은 잠시 지나는 길에라도 들기는 꼭 들었으리라 싶었다.

    "그래 만나 봤소?"

    아내는 넘겨짚듯이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누굴 말요?"

    "거기… 왜 요전부터…."

    "응, 거기 말이지… 들르나마나 하지. 말은 다 해뒀으니까."

    "그렇지만…."

    아내는 이렇게 말하다가 민우의 동정을 살피며 더 묻지 않고 저녁상을 차리었다. 육중한 몸이 행결 개가워진다. 밥도 수둑이 담고 국도 남상남상이다.

    민우는 그러한 아내의 성미가 비위에 맞지 않아서 때로는 좀 담박하게 해보라고 일깨워 주고 때로는 국을 조금 떠 마시고 삭은 코를 찌푸려 불쾌한 빛을 보이며 국그릇을 통으로 집어 내려놔도 아내의 타고난 지방질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저 수북수북 담아 놔야 맘이 놓이는 거다.

    그런데 마침 오늘 저녁은 배가 몹시 고파서 아내의 떡심이 그다지 맘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오늘 밤 대단히 기분이 좋다.

    ***

    정주에 모여 온 아낙네들이란 거의 다 민우의 아내와 처지가 어슷비슷한 사람들이다. 한때는 그 남편들이 역시 민우와 같이 나랏밥술이나 좋이 얻어먹은 일들이 있으나 지금은 대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옛날에는 어깨를 살리고 모여들 다니고 고작 형이니 아우니 하다가도 금시 핏줄을 세우고 말쌈질을 하고 직업 잡고 돈벌일 하라면 무슨 파문(破門)이나 당하듯이 꺼리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어찌 된 바람인지 하다못해 단돈 이삼십 원 벌이라도 잡고 들었다. 그래서 아낙네들은 사람이란 나이 먹으면 지각이 드는 것이라는 옛사람 말을 여기서 또 한번 참답게 되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