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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한테 일러 놀 테야. 점은 왜 치라 갔어. 아갸갸 죽겠지."
"저년 저 거짓말하는 것 봐. 너 어디 이따가 보자."
아내의 말을 민우가 차갔다.
"망할 놈의 새끼들, 밖에 나가선 찍소리 못 하는 주제에 집에만 들면 쌈굿이야. 쩍하면 울구."
아이들의 쌈도 울음도 딱 그쳤다. 민우의 화닥닥하는 손택을 잘 아는 것이다.
"저 못난 놈의 새끼들, 꼴에 그래도 사무라이 노릇만 하지. 거 체격허구 훌륭허다."
민우는 한편으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하나 영실한 게 없다. 모두 피들피들한 편편약질들이다. 아내의 설명을 들으면 맏놈은 먹성이 적어서 약하고 둘쨋 놈 셋쨋 놈은 어려서 젖이 모자라는 관계로 우유와 그도 없어서 설탕물을 먹여서 그렇고 딸년과 막냇놈은 어릴 적, 민우가 나랏밥 먹는 사이에 굶기를 부자 이밥 먹듯 해서 그렇다는 거다.
"저놈의 새끼들 암만해도 죄인의 간을 좀 뼈 멕여야겠어."
민우는 이렇게 말하며 아내에게 웃는다. 그리고 나서 또,
"글쎄 그러면 말야, 아무리 쪼무래기 시라소니라도 담이 커진다는 구려."
"아이규, 끔찍끔찍한 소리 그만 허우."
아내는 대번에 기급할 상이다. 그런 소리 듣는 것부터 무섭고 끔찍하다는 상이다. 그리고 아내의 속은 들여다 안 봐도 지금 "말해 먹는 것만 봐도 잘되기는 애당초 틀렸다. 돈 안 드는 말이사 푼푼히 못 해"하고 있는 것이 민우에게는 정녕 들리는 듯하였다. 그것이 민우에게는 밉성이기도 하고 또 재미성도 있는 일이다.
"아니 그러니까 살인 죄수의 간쯤 뼈 먹었으면 어쩔 거야. 그러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초라한 꼴은 안 하겠지."
민우의 눈에는 정말 아이새끼들이 너무 성질이 약해서 걱정이다. 그놈들이 범광장다리처럼 날쳐도 지금 세상에 나가서 가엾은 꼴 안 하고 살아가기가 나나한데 지금 보는 바로는 어디 가서 어떻게 곯아떨어질지 알 수가 없다.
아이새끼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도 그렇다. 하나 민우 자신은 그래도 부모 덕에 공부깨나 착실히 했으니까 하다못해 대서쟁이 서사 노릇이라도 하겠지만 이놈의 새끼들이란 돈 없는데다가 외눈에 안질로 몸까지 약하고 보니까 어느 학교가 두드리라 열어 주리라 하고 받아 줄 것인가.
그러니 겨우 소학교나 마친 놈들이 낮거미 같이 약한 팔다리로 이 산 눈 뺄 세상을 어떻게 걸어가랴. 그나마 타고난 배리들이나 영악했으면 하련만 그것조차 은혜 받지 못했으니 그놈들 눈물이 오줌같이 흔한들 누가 불쌍히 생각해서 도와 줄 것이랴.
민우는 밥상을 탁 밀치고 다 떨어진 외투 주머니에 책 한 권을 찌르고 총총히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맨 첨으로 만나노라 만나니 보는 때마다 고연히 불쾌한 인상을 주는 돈비 입은 그 사내다. 요새는 뉘게 붙어먹는지 되지 않게시리 목도리에 가짜 수달피까지 달고 무슨 대단한 소사나 있는 듯이 분주히 싸댄다. 그런데 여기 또 걸음을 어떻게 늘게 떼는지 낭자가 땅에 닿을 것 같은 느릉태가 지나간다. 중절모자를 사서 고대로 주름도 안 잡은 채 쓰고 다니는 무슨 관청에 스물 몇 핸가 다닌다는 치가 지나간다.
그 담 사람들은 또 어떤가. 오고 가는 사람이 모두 바보와 같다. 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지… 저 퀭한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대가리가 돌멩이처럼 굳어 버린 치가 아니면 호박 속같이 서벅서벅한 축들이다.
좀 무얼 안다고 하고 뜻 있는 구실을 하려는 사람들도 기실은 모두 머리가 새대가리만치 줄어들어서 양심도 비판도 없이 뉘 집 늙은이 상사인지도 모르고 진종일 어이퍼이를 부르는 강개 의사가 아니면 그저 남 좋다는 대로 덩달아 따라가는 친구들이다. 그 담 대부분의 인간들은 말하자면 기왕 살아 있으니까 그저 그런대로 할 수 없이 살아가는가 싶다.
촌사람들까지도 요새는 무슨 회장이니 위원이니 직원이니 또는 무슨 족보 편집이니 하고 동떠다닌다.
대체 그 오고 가는 사람들의 옷매무새와 걸음거리만 보아도 밉성이다. 아무 광채도 영리함도 사람다움도 찾을 수 없는 그런 따위 바보의 그림자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범 잡아먹는 주지와 같이 사나웁고 솔직하면 어떨까. 맹수도(猛獸島)가 그리울 지경이다.
차라리 보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놈의 눈은 어떻게 된 놈의 것인지 보지 말려면 더 똑똑히 본다. 민우는 급기야 제 눈을 미워해야 할 지경이다.